[김형진의 법으로 사는 세상]

민족이 싸우고 정당과 정당이 싸우고, 정부와 반대세력이 싸우며, 세대와 세대가 싸우고, 지역과 지역이 싸우며, 심지어 정당 내부에서도 파벌이 싸운다. 싸우는데 금도나 예절, 봐주기는 없다. 지면 몰락, 이기면 다시 등장할 적수와 싸워야 한다. 화해와 타협을 꿈꾸어본 적도 없다.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플리커

죽기 살기로 싸울 뿐··· 화해와 타협은 없어

우리나라 얘기다. 식자라면 누구나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쪽의 뒤에 숨어 서서 상대편의 무지와 몰지각과 파렴치, 단견을 비난한다. 그의 존재를 잊을 만하면, 사회의 이슈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번씩 튀어나와 마치 세상의 지혜를 혼자 갖추고 있는 듯한 고고한 자세로 한마디의 복음을 설파하고 들어간다.

리차드 도킨스에 의하면 한 사회, 한 국가는 생물체의 유전자가 복제를 통해 형질과 특성을 후세로 이어가듯이 밈(meme)이라는 복제자를 통해 그 사회, 국가의 형질과 특성을 이어간다고 한다. 다시 말해 밈은 모방이나 동조화 같은 비(非)유전적 방법을 통해 대를 이어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라는 것이다. 밈이론의 타당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지만, 나는 확증 여부에 상관없이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우는 것이고,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를 따라 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동일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공동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의식주를 조달하는 법, 타인과 어울리는 법, 위기와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 등등을 익히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으로서, 일개인의 체험과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일괄하여 교육, 문화로 지칭할 수 있겠으나,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률, 예절, 윤리, 도덕 같은 규범적 측면이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자세, 태도와 가족, 주변인, 국민, 외국인과 같이 인간을 대하는 입장, 경향과 같은 비교육적, 비계량적, 불가산적 측면으로, 원한다면 하드웨어에 대비되는 소프트웨어라고 불러도 좋다.

한 집안의 가풍은 곧 사회집단으로 확장되며 나아가 국가로 까지 외연을 키울 수 있다. 그리하여 한 국가는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된다. 신분, 성별, 종교 등의 차별적, 억압적 파워가 약화된 현대 사회에 있어 국경은 가장 여전히 남아 있는 큰 장벽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국경에 따라 크게 다르다.

하나의 국경선 내(內)라면 그 나라의 땅덩어리가 아무리 거대하고 문화가 다양하더라도 국경 밖의 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그 국가만의 독특한 풍습, 심성, 경향을 지닌다. 각 나라마다 독특한 이슈가 있고, 갈등과 분쟁의 종류가 다르며, 문제해결의 경험과 전통이 다르다. 나는 이것을 국가마다 별개의 밈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중언부언이 되겠지만, 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영국이나 거의 늘 제국이었던 중국, 현대의 제국이라할 미국 등의 국가적, 사회적 밈과 우리나라의 밈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관심이 있는 것은 국가간의 밈의 비교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밈의 모습과 오늘의 현실이다.

염소들의 힘싸움은 생존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의미한 힘겨루기가 반복되고 있다. @픽사베이 

헬조선과 수저론 등 국가적 질병의 진단과 치료법 놓고도 치고받기만 할 뿐

헬조선이라고도 하고, 금수저, 흙수저라고도 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거나 이는 현재 나라의 현실과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는 경고음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이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물론 진단과 처방,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개 병원의 진단, 처방, 치료와 국가적 질환의 진단, 처방, 치료는 다르다. 그렇지만 처방, 치료는 고사하고 아예 진단부터가 차이가 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지금의 상태가 전혀 질병이라 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용케 뭔가 잘못되긴 잘못되었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각자 한 말씀씩 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 이외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고려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국가란 각종 이질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고, 세대와 배경도 다르므로 사건이나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도 각기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적 질병의 진단 및 치료는 의학과 같은 과학과 달리 현미경이나 측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합의와 타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만 보여도 바로 변절과 배신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가열차고 비타협적인 투쟁만이 순수성의 징표이다.

한국인의 내면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분노 DNA가 숨어있는 걸까.@픽사베이

타당파 멸절을 통해 자신만 보전하려 한 조선시대 당파 싸움 떠올라

이 대목에서 조선의 당파에 대해 길게 인용하고 싶지 않다. 인격수양을 금과옥조로 삼은 주자학이 어떻게 타 당파의 멸절을 통해서 자신을 보전했는지에 대해서도 다들 잘 안다고 생각할 테니 덧붙일 것도 없다. 다만 조선은 구 소련 등에 의한 마르크스주의 실험에 앞서 몇백년 전에 이미 사상을 현실에 적용, 시행했던 희귀한 사례였다. 주자학의 종주국 중국에서도 없던 일이었다.

주자의 적전제자(嫡傳弟子)를 자처했던 소(小)군자들은 자신의 일파가 정통이면, 타파는 사문난적이 된다는 점에 한 톨의 의문도 없었다. 세상에 유래 없던 군자의 나라가 혹독한 민란과 반항의 시대를 거쳐 어떻게 멸망에 이르렀는지에 관해서도 첨가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다만 사단칠정 운운하는 학설의 대립은 실은 적나라한 권력투쟁의 진면목을 감추기 위한 당의정(糖衣錠)과 같은 것이었다는 일본학자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 조선의 유학; 소나무刊)의 뼈아픈 지적에 대해서 씁쓸하지만 별로 반론할 자료가 없다는 것만 부기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조상들이 직접 권위적 정권에 맞선 투쟁과 시행착오를 통해 일구어낸 가치와 제도는 아니다. 물론 4·19나 6월항쟁과 같은 소중한 경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사적 맥락을 말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그의 역사적 기원은 서구에 있지만, 인류의 보편적 이상으로서 당연히 우리 국가체제에 수입 적용되었다. 민주주의의 정신적 이상, 배후는 자유이고, 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화된 제도로서는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분립, 독립적인 언론, 비판적인 시민사회 등의 제 구성요소가 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상으로서의 자유는 한번 성취되면 손상되지 않는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역사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환을 거듭하는 동태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모든 구성원은 이상의 타락과 훼손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이 노력은 다른 구성원의 무지와 몽매를 매도하고 질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는 언제까지 상대방에 삿대질만 할 건가. 왜 국민이 국회를 불신하고 걱정해야 하나 @픽사베이

민주주의 상징인 국회는 언제까지 상대방에 삿대질만 할 건가

갑작스럽지만, 논의를 무한정 확장할 수 없으므로, 범위를 줄여 국회를 보기로 하자. 국회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구이다. 의회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의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각 정파의 이익을 조정하고, 갈등과 이해대립을 조정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다. 환언하면 서로 말하고 대화하라고 만들어진 기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당하다. 대통령이 경제위기라 하면 한쪽에선 영혼없는 기계처럼 경제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허언하고, 다른 쪽에서는 북풍에 빗대어 괜한 경풍을 불러일으키지 말라고 한다. 북한이 수폭실험을 공표하자, 한쪽은 우리도 핵무장하자고 하고, 다른 쪽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문외한은 나라의 경제가 정말로 위기인지 아닌지, 위기라면 어떤 종류의 위기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도 핵무장을 하면 만사여의(萬事如意)라는 것인지, 앞으로 핵보유국인 북한이 사용할 것을 위협하는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 지도 의문이다. 이들이 차라리 어떤 일에 앞뒤좌우도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댓글을 다는 정도의 사람들이었다면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일국의 국회의원이다. 그들이 법이 정한 시한을 어겨가면서까지 선거구 획정 협상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은 그 편이 현역의원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암묵적으로 양해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이렇게 철저하게 묵계하면서도, 정말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극단적인 생각을 표출해내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삿대질을 해대는 현실은 우리를 너무 절망케 한다.

이런 연유으로 해서 타협과 절충 없이 싸우기만 하는 습성은 멀리 옛날 조선으로부터 내려온 국가적 밈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암담한 밈을 뜯어고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과연 성공할 수나 있을까. 만약 실패한다면? 잠깐 동안의 가정조차 끔찍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다까하시 도오루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올라서?

[오피니언타임스=김형진]     

 김형진

  변호사

  전 대우전자 법률고문

  전 대한주택공사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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