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프리미엄코리아]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한 순간이라도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한 가지 선택에 해당한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사항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 인생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갈림길 중 어디로 갈 것인가. ©픽사베이

삶은 선택의 연속··· 경제학은 합리적 선택 가정해 이론 구축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은 과거에 있었던 많은 선택들이었으며, 미래의 자신 또한 앞으로 이루어질 선택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지금까지 올바른 선택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선택 과정에는 유전자, 노력, 습관, 운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선택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들의 조합에 따라 다른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는 어떤 특정한 황금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의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어왔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서 하나의 유일한 원칙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는 오직 합리적 선택만을 가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모형을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도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이론모형을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에 고육지책으로 합리적 선택의 가정에 매달리는 것이다.

매번 올바른 선택지를 고르는 건 쉽지 않다.©픽사베이

심리학·사회학에서는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

한편 심리학을 비롯해 사회학이나 철학 등 다른 분야에서는 인간은 결단코 늘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특히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경제학에서는 선택의 대안들이 많아질수록 유리하다고 주장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주장한다. 즉 선택의 대안이 많아질수록 선택의 주체는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포기해야 하는 다른 대안들로 인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여러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하는데 대부분 수긍이 간다. 그만큼 우리는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장경제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시시각각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하는 불안감과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표준적인 경제이론은 선택에 관해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을 강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선택이라는 중요한 문제와 관련해 경제학이 정녕 쓸모없는 공리공론이나 펼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개인적 선택(individual choice)과 사회적 선택(social choice)을 구분하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선호(選好)에 따라 대안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주체다. 반면 수많은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는 사회 선호에 입각해 여러 대안들을 비교해 그 가운데 사회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등장한다. 사회라는 비인격체가 어떻게 독자적인 선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서 여기서 상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법인이라는 법적 인격체를 인정하듯이 경제이론에서는 각 사회는 나름대로의 사회 선호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문제는 사회 선호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생략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다수결원칙에 의한 투표를 통해 사회 선호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자로 A, B, C가 입후보한 경우 투표 결과 A > B > C의 순으로 득표했다면 다수결원칙에 의해 A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다. 이것은 다수결원칙에 따른 자명한 결과이고, 우리 모두 이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사회 선호를 파악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 선호를 근거로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항상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포커스뉴스

다수결 원칙, 투표자 성향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해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다수결원칙에 의한 투표제도에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다수결원칙이 사회 선호를 파악하는 금과옥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콘도르세 역설(Condorcet paradox)와 보르다 역설(Borda paradox)이라는 두 가지 역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시사하는 바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여기 인용한 사례는 다카하시 쇼이치로의 ‘이성의 한계’(2009)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혀둔다.

몇 명의 친구가 외국의 유명 도시로 관광을 가려고 한다. 그런데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투표로 여행지를 결정하려고 한다. 이 경우 몇 가지 투표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친구는 유권자로, 여행지는 후보자로 간주하면 된다.

■ 토너먼트 투표방식

세 명의 친구 A, B, C가 뉴욕, 파리, 빈 세 도시를 놓고 어디로 여행을 갈지 결정하려 하는데 각자 선호하는 도시가 다음과 같다고 하자.

A: 뉴욕 > 빈 > 파리
B: 빈 > 파리 > 뉴욕
C: 파리 > 뉴욕 > 빈

이제 뉴욕과 빈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다수결로 정한다면 2대 1로 뉴욕이 선택될 것이다. 다음 뉴욕과 파리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다수결로 정하면 2대 1로 파리가 선택될 것이다. 여기서 투표를 끝낸다면 이들은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 B가 이의를 제기해 빈과 파리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다수결로 정하자고 하면 이번에는 2대 1로 빈이 선택된다. 이것은 명백히 모순이다. 그리고 어떤 순서로 두 도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이런 모순이 반복된다. 이와 같이 세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투표를 하는 경우 다수결의 원칙은 합리적 선택방법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의 이름을 따 콩도르세 역설이라 하며 투표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 복수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

앞에서 두 도시씩 비교하는 것은 일종의 토너먼트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비교대상인 모든 후보들을 놓고 한 번의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는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보르다 역설로 알려진 것이 있다. 다시 앞에서와 같이 여행지를 선택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번에는 7명이 투표에 참가하는데 각자 다음과 같이 선호한다고 하자.

A: 뉴욕 > 빈 > 파리 E: 빈 > 파리 > 뉴욕
B: 뉴욕 > 빈 > 파리 F: 파리 > 빈 > 뉴욕
C: 뉴욕 > 빈 > 파리 G: 파리 > 빈 >뉴욕
D: 빈 > 파리 > 뉴욕

이제 이 집단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를 하나 고르는 투표를 하면 뉴욕(3표), 빈(2표), 파리(2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가장 가기 싫은 도시를 하나 고르는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 빈(0표)이 되어 이번에도 뉴욕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 =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된 결과를 얻게 된다.

■ 상위 두 후보 결선 투표방식

콩도르세 역설이나 보르다 역설을 피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는 경우 상위 두 후보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방식은 여러 경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시 7명의 친구가 여행지를 놓고 투표하려는데 각자 다음과 같이 선호한다고 하자.

A: 뉴욕 > 파리 > 빈 E: 파리 > 빈 > 뉴욕
B: 뉴욕 > 파리 > 빈 F: 파리 > 빈 > 뉴욕
C: 뉴욕 > 파리 > 빈 G: 빈 > 뉴욕 > 파리
D: 파리 > 빈 > 뉴욕

20대 국회의원 선거 주요 일정. 이번엔 제대로 된 인물을 뽑을 수 있을까.©포커스뉴스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장 싫어하는 후보’ 모순도 발생

이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도시를 놓고 일차 투표를 하면 뉴욕(3표), 파리(3표), 빈(1표)이므로 뉴욕과 파리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놓고 일차 투표하면 뉴욕(3표), 빈(3표), 파리(1표)가 되어 뉴욕과 빈을 놓고 결선 투표를 하면 뉴욕(4표), 빈(3표)이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이와 같이 이차 결선 투표방식을 도입하더라도 ‘가장 가고 싶은 도시 =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여기 인용한 사례들과 같은 투표의 모순이 늘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결원칙이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투표란 이와 같이 불완전한 제도인 것이다. 다수결원칙이 이러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원칙에 의거해 공직에 선출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데 조금 더 신중해지리라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선호하는 후보 = 가장 선호하지 않는 후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여러 번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바이지만, 상당수 국회의원들의 경우 개개인의 자격이나 능력은 훌륭해 보이는데 정작 이들이 속해 있는 정당, 나아가 여야로 구성된 국회는 전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혹시 투표 방식을 달리하면 이런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앞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좋아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동시에 당선되어서는 안 되는 후보에게도 투표하는 방식을 채택해 ‘가장 선호하는 후보 = 가장 선호하지 않는 후보’로 판명된 사람은 탈락시키고 다시 투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나은 후보들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방식 채택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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