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우리 어머님은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을 기르면서 하나하나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쏟으셨다. 하나라도 혹 아프거나 하면 “내가 대신 아프자”고 하시며 스스로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려 하셨다. 특히 어릴 때 관절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막내 누나에 대해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면서 항상 속담을 인용하셨는데, 우리는 이런 소박한 말씀에서 알게 모르게 형제들이 모두 손가락과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겨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손가락과 같은 유기적 관계다. ©픽사베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국가 유기체도 마찬가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이다. 어머니들이 여러 자식들을 골고루 다 사랑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쓰는 말이다. 어느 자식이라도 아프면 똑같이 아픔을 느낀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식들은 부모와 형제자매들의 관계가 모두 손가락과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기게 된다.

이런 관계를 좀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이른바 ‘유기적(有機的)’ 관계라는 것이다. '콩가루 집안'이 아닌 이상, 가정이란 가족 성원이 모두 상관관계를 가진 유기적 단위인 것이다. 마치 우리의 신체 각 부분이 서로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눈, 코, 입, 귀, 팔, 다리, 허리, 배, 손발, 오장육부, 어느 하나라도 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없다. 모두 서로 돕고 도움받으며 각각의 기능을 발휘할 때 하나의 온전한 단위로 존립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아프면 모든 부분이 다 같이 고통스럽고, 어느 한 부분이라도 없으면 하나의 완전한 단위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가정 뿐 아니라 국가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유기체라 볼 수 있다. 국가가 일종의 유기체라는 설은 특히 헤겔학파에 속하는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헤겔식으로 전체주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 유기체설이 아니다. 헤겔의 학설은 유기체가 각 부분을 초월해 존재하듯 전체로서의 국가도 개체로서의 구성원을 초월하므로 국가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하나하나의 불가결성, 각 구성원의 존엄성, 구성 상호간의 불가분적 유대관계 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몸의 일부가 아프면 몸 전체가 아픔을 느끼듯이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픽사베이

팔다리만 움직이고 눈 멀고 입 봉해져선 안 돼··· 약자들의 고통 함께 나눠야

국가를 유기체로 파악한다면 우리로서 몇 가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몸의 일부가 아프면 몸 전체가 아픔을 같이 하듯이 국가의 어느 계층이 고통을 당하면 우리는 그 고통을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한 쪽 팔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무관심한 몸이 정상적일 수 없듯이 구성원의 일부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상관하지 않는 사회도 정상적인 사회일 수 없다. 배만 잔뜩 부르고 머리가 텅 빈 몸이 건전한 몸일 수 없듯 경제적으로만 살찌고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허탈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국가도 건전한 국가일 수 없다.

특히 눈과 입의 역할을 담당한 언론매체, 혹은 지도적 사회단체나 개인이 자의든 타의든 눈이 먼 상태, 입이 봉해진 상태로 고통을 당하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모두의 안녕에 관계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다리가 튼튼해서 걷기는 잘 하지만 눈이 멀고 입이 막힌 몸이 제 기능을 다하는 몸일 수 없듯 눈이 멀거나 입이 봉해진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일 수 없다. 응급치료 같은 비상사태도 아닌데 사시장춘 입이 봉해지고 눈이 가려진 채 몸에 살만 뒤룩뒤룩 찌게 된다고 기뻐할 수 없다. 입이 봉해지고 눈이 가려진 채 자유롭게 팔다리만 움직일 수 있다고 하여 자유를 누리는 몸이라 주장할 수도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모든 기관이 다 제 기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조화롭게 성장해야 한다. 국가도 국가다워지려면 구성원 각자가 그들의 다양한 기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국가 전체가 균형 잡힌 발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금수저는 흙수저의 고통을, 갑은 을의 억울함을, 힘있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절망감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열 손가락 하나라도 깨물리는 일이 없이 모두가 서로 보살피며 살아가야겠지만, 만에 하나 한 손가락이라도 깨물리는 일이 있으면 모두 그 고통을 함께 나누자. 그리하여 열 손가락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자.[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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