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기원전 6세기 노자가 썼다고 알려진 도덕경은 본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한 매뉴얼이었다. 이 책 제8장에 보면 그 유명한 ‘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란 뜻이다. 왜 물처럼 되는 것이 그렇게 훌륭하다는 것일까? 물의 특성을 나열한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물은 도(道)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이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물의 특성을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 제78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란 말은 정치지도자를 위한 매뉴얼이다. 온갖 것을 섬기고, 남들과 겨루지 않고, 가장 낮은 곳을 향하는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했다. ©픽사베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합니다.
“나라의 더러운 일을 떠맡는 사람이 사직을 맡을 사람이요,
나라의 궂은 일을 떠맡는 사람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바른 말은 반대처럼 들립니다.

물은 부드럽고 여리고 약하기 그지없지만 단단하고 힘세고 굳센 것을 물리치는 데 물을 대신할 것이 없다고 한다. 물이 바위도 뚫고, 쇠도 녹이고, 산도 옮기고, 배도 들어올리고, 더러운 것들을 씻어주고, 그러면서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생수가 되기도 한다. 물의 이런 특성을 모르는 이 없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라면 이런 ‘부드러움과 여림의 진리’를 실천해 보라고 타이른다.

여기서 특히 물의 정화작용, ‘더럽고 궂은 일’을 떠맡아 깨끗이 하는 일을 강조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나라의 더러운 때(垢)를 씻어낼 수 있는 사람, 나라의 상스럽지 못한 일(不祥)을 떠맡아 처리할 수 있는 너그럽고 부드럽고 열린 마음, 겸허한 자세가 있을 때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요즘 지도자 중에는 믿음직한 리더가 안 보인다. 물처럼 부드럽고 자기를 희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일이다. ©픽사베이

유교 경전 논어 마지막 편에 보면 상(商)나라를 창건한 탕(湯)왕이 했다는 말이 전해내려 온다. “제게 죄가 있다면 백성에게 그 해가 돌아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백성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모두 제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20:1). 공자님 자신도 “군자는 책임을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그것을 남에게서 구한다”(15:20)고 하면서 책임지는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인 지도자 모세도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배도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32:31~32) 하고 기도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성전에 의하면 예수님을 두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1:29)이라고 했다.

물처럼 부드럽고 약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를 튼튼히 하고,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일반 상식인의 눈으로 보면 더 할 수 없이 손해 보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바른 말은 반대처럼 보이기(正言若反)’ 때문이다. 이른바 역설(逆說)의 진리다. 모름지기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식의 세계를 넘어서 이런 역설의 진리를 체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금도(襟度)를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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