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아하!]

‘앞집 색시 믿고 장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앞집 예쁜이가 당연히 내 마누라가 되어 주리라 잔뜩 기대하며 살았는데, 예쁜이는 훌쩍 딴 데로 시집을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노총각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다. 앞집 예쁜이가 내 팔자를 고쳐주려니 하고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적극적으로 개척하라는 말이리라.

©픽사베이

민족의 갈 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선 미국 흑인들의 경우가 생각난다. 아브라함 링컨은 흑인들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준 위대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룬 주목적이 결코 흑인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다. 링컨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싸움에서 나의 최대의 목적은 유니온(북미연합)을 살리자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유지하려거나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를 한 명도 해방시키지 않아도 유니온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더러는 해방시키고 더러는 그대로 둠으로 유니온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도 하겠다.

흑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의 다음 발언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흑인종과 백인종의 사회적, 정치적 동등권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에 찬성할 마음도 없고 찬성한 일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흑인들에게 투표권이나 배심원이 될 자격을 준다거나 그들에게 공직을 감당하게 한다든가, 백인들과 결혼하게 한다는 생각에 찬성할 마음도 없고 찬성한 일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하는 바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흑인종과 백인종 사이에는 차이점이 너무나도 커서 내가 믿기로는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 동등권을 유지하면서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인종이 함께 살 수 없지만 함께 살아야 할 경우라면 반드시 지위의 우열이 구분되어야 하겠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백인종에 부여된 우월권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감하는 바이다.(James Cone,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에서 인용)

©포커스뉴스

놀라운 사실이다. 가만히 죽치고 앉아 있는데 누가 와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처리해주리라는 기대는 지나친 것이라는 역사적 실례라 하겠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흑인들이 오늘 미국에서 그래도 이 정도의 권리를 지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백인들의 선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흑인들 스스로가 노력해서 쟁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 우리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 나라가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리라는 기대를 너무 크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군사작전권까지 맡기고 우리를 지켜주길 기대하는 것은 자주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일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어느 나라가 우리 땅에 무슨 특별한 무기를 설치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조치라 믿으라고 강요당하기까지 한다. 작게는 개인의 장가가는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이르기까지 앞집 색시만 믿고 사는 의타적 태도를 버리고 모두 자주적으로 계획하고, 결정하고, 해결해 나갈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지 않는가.[오피니언타임스=오강남]

 오강남

서울대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캐나다 맥매스터대 종교학 Ph.D.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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