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린의 작은 음악상자]

무대의 막이 오르면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나도 같이 돌면서 춤을 춘다. 나는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수석 무용수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 기괴할 만큼 빨라지고, 사람들도 그에 맞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돈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느끼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바닥이 내게 가까워지는데 지금이라도 나를 일으켜 주려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기 춤에 집중하느라 딴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결국 딱딱한 무대 바닥이 내 등에 닿으며 척추를 강타한다. 음악 소리가 희미해진다.

다시 음악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나를 깨운 것이다. 최근까지 더웠던 날씨가 이제 조금 시원해진 것 같다. 눈을 뜨면 익숙한 내 방 풍경이 보인다. 책장을 가득 채운 영어 서적이며 온갖 외국어 문제집, 노트북, 벽에 걸어 놓은 재학 증명서와 시계와 이번 달 달력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매일 매일이 정말 빠르게 가는 것 같다. 그 다음엔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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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 통역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올해로 2학년이 되었다. 관심사는 글쓰기, 패션과 캘리그라피. 외국어 공부하는 것도 좋아해서 이것저것 시간이 날 때마다 배우고 있다. 장래 희망은 아직 고민 중이다. 어렸을 때 외교관이 되거나 UN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대학에 와서야 나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느껴 약간 주눅이 들어 있다.

나는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환경이 좋은 친구들은 많았지만 나보다 더 열심히 언어를 공부한 친구는 없었다. 학창 시절엔 언어 과목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건 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게 생긴 믿음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깨져 버렸다. 내가 십 년 넘게 공부한 실력은 같은 시간 동안 해외에서 살다온 동기들에 비하면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술도 자주 마시고 놀러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시험을 보면 내가 더 성적이 낮았다. 음, 내가 공부를 잘못했다거나 그 친구들이 열심히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영어 스크립트 없이 즉석에서 발표하는 능력이나 막힘없이 영어로 토론하는 능력은 내가 공부한다고 해서 간단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학점은 생각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 그게 처음으로 내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으니 열심히 했다. 그냥 전략도 없이 단순히 열심히. 열심히 하려고 보니 집에 돈이 없었다. 대학 등록금은 고등학교 학비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쌌다. 부모님의 벌이는 그대로인데 내가 쓰는 돈은 늘었다. 등록금이며 교재비에 교통비와 식비까지 더해지니 내가 일하지 않고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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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순탄했다. 운이 좋아 학원 몇 군데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소중히 여길 줄 몰랐다. 그 일이 얼마나 보람 있고 복지가 좋은 일이었는지 알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사회를 잘 몰랐다. 그래서 건방지게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점도 잘 안 나오는데 일에 열정을 쏟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더 좋은 보상을 원했다. 그 일을 그만두고 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되어서야 그때가 편하고 좋았다는 걸 알았다. 일을 구해본 적 없던 나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때처럼 좋은 일을 구하는 건 많이 힘들고도, 과거의 나를 원망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간략하고 덤덤하게 ‘힘들었다’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정말 많이 힘들었다.

면접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만큼 불합격하는 횟수가 또 늘어갔다. 그렇게 대단한 일자리도 아니었다. 그래 봐야 카페, 음식점 일이었는데도 경력이 없어 잘 시켜 주지 않았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결국에 합격한 카페 일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공부 말고는 잘 하는 것도 딱히 없으니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그럴 때마다 적잖이 서러웠다. 그런 시간을 거쳐 나는 좀 더 단단해졌다. 언제까지고 편한 생활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나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회는 고등학교처럼 나를 보듬어 주기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가치는 최저 임금이 아니라는 것. 그런 것들을 배웠다.

나는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았고 면접을 볼 수 있는 만큼 다 보았다. 대외 활동도 하고 외국어 자격증 공부도 예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는 시간을 쪼개 독일어 공부를 했고, 버스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영어를 들으며 조금 더 발전하고자 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는 단순히 자격증이나 더 나은 일자리, 학점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나태했던 예전을 지나 한 번 삶에 제대로 던져진 후에야 지금처럼 노력하는 사람으로 되돌아왔으며 힘든 일에 꺾이지 않고 희망을 갖는 청춘이 되었다.

언젠가 웃게 될 거야   
15일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 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한 참가자가 거울을 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환경이 어쨌든 내가 가진 게 얼마나 적든 상관없다. 아직 좀 더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가능성도 희망도 있으니까 지금 조금 힘든 건 괜찮다.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그래, 처음부터 많이 가진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나보다 앞에서 시작하는 것도 맞고 나보다 좋은 기회를 더 쉽게 가질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투하지 말자. 비교하지 말자. 초조해말고 내 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자.

인간으로서 가장 큰 가치는 스스로의 고난을 극복하는 데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게 잘 안 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갖고 있는 욕심, 20대의 열정은 서로 뒤섞여 초조함을 낳는다. 아침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고. 차분히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득 정신이 든다. 아침에 나를 깨운 알람을 끄지 않았다. 나는 슬슬 꺼야겠다는 생각에 휴대폰 홀드 화면을 해제한다. ‘여름의 끝’(End of the Summer)이 흘러나오는 중이고 문득 한 소절이 들린다. ‘It’s the end of the summer, it’s end of it all. Those days are gone, it’s over now and we are moving on.’ 여름이 끝났어. 모두 끝이야. 그랬던 날들은 가버렸어. 이제 끝이 났고 우리는 나아가고 있어. 나는 알람을 종료한다. 아까의 질문을 떠올린다. 오늘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느냐고? 나는 자답한다.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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