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아차상]

속옷까지 다려서 입혀주던 사람이었다. 손수건부터 겉옷에 이르기까지 다림질을 하다보면 한나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또래들 중 주머니에 하얀 손수건이 들어있고, 잉크 물에 담근 교복 셔츠가 항상 풀을 먹인 것처럼 푸르스름하니 바짝 날이 서있는 나는, 이 시대에 흔하지 않은 “아~ 그 학생”이 되었다. 학창시절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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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집에 세탁기 고치러 온 수리기사, 과외 선생, 친척들에게 “밥 먹고 가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식사를 차려주곤 했다. 왜 다들 항상 배고플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항상 말이 아니라 차려서 고봉밥을 들이밀면서 그랬다. 밥 먹고 가라고.

나에게도 항상 그랬다. 치킨 한 마리를 사이좋게 그녀와 둘이서 나눠먹고 자는 나를 깨워 밥 먹고 자라고 권했다. 치킨이 무슨 요기가 되냐고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날개와 목뼈만 좋아하던, 다른 부위를 먹으면 두드러기 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어느 날 그녀의 특이 체질이 고쳐졌다. 닭다리도 맛있게, 닭 한 마리도 모두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어느 날은 밥을 먹고, 간식도 먹고, 또 밥을 먹고 나서 먹은 것을 잊었다. 새벽부터 엄마를 기다렸다. 밥은 언제 주냐고 아기처럼 떼를 썼다. 간식을 강아지가 먹어버리면 강아지랑 아이들처럼 싸웠다. 얼마 전까지 말 못하는 짐승이라 불쌍하다고 십년 째 챙겨 먹이고 한낮이면 둘이 기대고 앉아 함께 꼬박꼬박 졸던 강아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 동안 그녀는 이름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책 읽는 법도, 우리들의 집이 어디인지도 다 모르는 특이체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젠 한때 그렇게 좋아하던 밥을 못 먹게 되었다. 죽은 넘길 수 있지만 쌀알은 씹어 넘길 수 없을 만큼 늙었다. 그녀는 아흔 살이 넘었다. 속만 썩인 영감이 먼저 간 것도 모르고, 평생을 함께 살아 온 큰아들이랑 며느리랑 손자 손녀는 알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건 남매의 이십 때 초반까지. 온전하게, 또 유일하게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건 큰 아들,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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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심해졌고 조바심이 났다. 우리 남매는 둘 다 그녀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추억을 늘어놓았다. 슬플 때도, 외로울 때도, 정말 괴로울 때도, 뭔가 이대로 끝은 아닐 것 같다는 이상한 용기로 버텨왔다. 하지만 흐린 눈동자, 사탕을 오물거리는 그녀는 나에게 매번 누구냐고 묻는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어린 나만이 산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서, 촌스럽게 궁상스럽게 돌봄을 받아서, 그것들을 언젠가는 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받은 것들은 지금도 힘들고 코너에 몰릴 때마다 힘이 됐다. 그러나 그걸 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더 무서운 건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평소 낯부끄러워 사랑한다고는 말 못해도 고마웠다, 착하게 살아라, 뭐 이렇게 이별해야 하는데 맞벌이 엄마, 아빠 대신 학원도 데려다 주고, 간장에 참기름 넣고 밥 비벼주던 그와 그녀들이 사라져 간다.

우리 집 그녀처럼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살가운 작별인사 나누기도 전에 그들이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미뤄뒀던 안부전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용기내길 바란다. 다만 갑자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너무 폼을 잡으면 황당할 테니 주의하시길.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시간이 사라지기전에 더 많이 대화하고 안아주길. 나는 그녀가 내 목소리를 듣지도, 내게 더 이상 말을 걸지도 않게 됐지만, 매일 매일 말할 것이다. 할머니, 잘 가. 다음에 꼭 다시 만나.[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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