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이상은 힘든 거죠? 샘.”어느 봄날, 이제 막 고 3으로 진급하는 학생이 말했다.“그래, 그 이상은 아무래도 힘들지. 그렇다고 정시로만 해보자니 문이 너무 좁다.”그의 과외선생인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질문에 묻고 답하는 우리는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고 안타까운,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눈빛. 눈동자를 가득채운 ‘때 이른 좌절’의 먹구름이 때로는 패배감으로 뚝뚝 방울이 되어 떨어지곤 했다.그는 고등학교 1학년, 그리고 2학년 1학기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었다. 어찌어찌 정신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잊고 싶어 하는 사람과 잊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누가 더 간절할까?후자일 것이다.잊지 않으려고 얼마나 간절하게 노력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에게 요즘 세상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인지 모르겠다. 드라마, 영화, 다큐, 그 무엇을 만들어 내든 인터넷의 세상은 대부분의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작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연출은, 연기, 원작의 형태나 시나리오는 또 어떠한가? 굳이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잔잔하게 감동과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정부가 국정과제로써 반려동물산업육성법(가칭)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7월 7일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 가운데 포함된 이 법안은 동물생산 및 유통업을 이른바 ‘신산업’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유기견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반려동물 생산·유통을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목소리가 동물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특히 국가가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백 마리가 넘는 보호소에 직원은 공무원 두 명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은 ‘
“암행어사 출도야!”옳거니! 속이 시원하다.춘향이를 괴롭힌 변사또는 벌을 받겠구나.그래야지.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고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춘향이를 성희롱 및 협박, 감금한 변 사또는 옥살이를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암행어사 이몽룡이 짠하고 나타날 적에 왜 우리 속이 뻥 뚫렸을까. 그건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변사또가 마침내 그가 지은 죄 만큼의 벌을 받을 받으리라는 것을.그런데 만약 변사또를 저 멀리 귀향 보내거나 옥살이시키지 않고, 변씨의 업무가 과중하여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인 바람에 이런 일을
사랑은 김밥 한 줄.일곱으로 나뉜 걸네 개, 세 개로 갈라먹는 것.붕어빵은 다섯 개 천원.너 세 개, 나 두 개.아니아니!나 두 개, 너 세 개.마주친 손가락이 오고가며 조물조물길바닥에 뽕 하고 떨어지는 걸 둘이서 멍하니 바라보던 사랑.김밥만 봐도 목메어 울던 사랑.붕어싸만코 광고만 봐도 코 끝 시리던 사랑.옛날 옛적 그 사람.그 사랑.P.s 당신의 ‘그 사람’은 누구였나요?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아야! 이리와. 이리오라고! 그 뭐한다고 처 쌓인데로만 올라가니?”“넘어지지말고 찬찬~히 올라가라고!!”“찬~찬~히. 찬~찬히, 그래도 조심해라!”“야 임마야 뛰지 마! 뛰어오지 마라. 오늘 지각 안 잡는다!”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손에 쥔 커다란 빗자루를 장군님의 칼자루마냥 휘두르면서. 안타깝게도 장군님 휘하에는 여고 1,2,3학년 철부지 부하들뿐이었지만.부하들은 선생님의 독특한 억양을 흉내 내면서 히히 웃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은 사투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생한 그 목소리를 떠올려보니 사투리와 표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소설 ‘태백산맥(조정래)’을 읽었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중학생이 뭘 알고 읽었겠는가?‘아, 불쌍해. 소년의 아빠가 돌아가셨어...’‘아, 왜 괴롭히나요, 당신은 나쁜 사람’‘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사람이었군. 아니 그런데 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이 사람도 불쌍해, 저 사람도 불쌍하고, 아, 뭐야 다 불쌍하잖아..’그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무슨 명칭이나 지명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그냥 ‘으흥~’하고 건너뛰었다. 그러다가 도통 이해가 안가 진척이 없는 부분에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나는 오늘부로 다시는 단골 가게에 갈 수 없게 되었다.그곳은 맛있는 식사를 호젓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고, 거의 모든 종류의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며, 정해진 용량의 두 세배 쯤 되는 생크림과 미니깍두기도 마구마구 퍼주던 소중한 곳이었다.게다가 아르바이트 직원의 친절함은 또 어땠는가? “자주 오시니까...”라고 언제나 말끝을 흐리며 내 컵 위로 웃돈 없는 생크림을 정량의 두 배가 넘도록 항상 퍼올려주지 않았던가? 고용되어 있는 그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혹시나 그가 난처해질까 싶어 이에 대한 돈을 더 지불하려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김유신이 대의를 위해 소중한 말의 목을 벤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신을 모시는 신녀, 혹은 기생이었다고 전해지는 천관녀를 사랑하여 자주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제 막 화랑들을 이끄는 낭도가 되어 집안을 번성의 길로 이끌 것이라 여겼던 아들의 일탈을 걱정한 어머니 만명부인이 이를 만류하자 결국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어느 달 밝은 밤, 김유신은 술에 취한 그를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갈 만큼 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던 애마의 목을 쳐내고야 만다. 그것도 문만 열면 버선발로 달려 나와 저를 반겨줄 바로 그
병사가 출정할 적에,나는 보았다.화려한 꽃다발과 수많은 환송인파의 물결.꽃처럼 내리는 네 어머니의 눈물은 어느새 불경한 것이 되어버린 것을.너의 충성.조국은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병사가 귀환할 적에,나는 보았다.종전도 아닌 휴전.난리통에 얼어 죽었다던 병사의 어린동생을 닮았다는 흰나비 한 마리가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줄도 모르면서 마냥 기쁘기만 한 모양인지주춧돌만 남은 너의 집터에 날아와 앉아 하루 종일 너를 기다리는 것을.꽃처럼 내리는 어머니의 눈물만이 병사, 너를 찾아 헤매는 것을.병사는 빈 상자가 되어 돌아왔다.너의 충성.조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난생 처음 보았다. 이런 동물병원은. 그때까지 내가 알았던 모든 병원은 깨끗했다. 수의사들은 앞 순서 강아지의 진료가 끝나면 소독약을 가져다 진료대가 있는 책상 위를 닦았다. 냄새도 없고 더러움도 없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도 했다.A동물병원은 유별났다. 입구부터 유기견이 들어있는 케이지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애초에 손님을 위한 대기석이었을 법한 소파들과 테이블은 이미 벽 끝까지 밀려나 소형 유기견 케이지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청결하고 세련된 동물병원을 만들어 수입을 극대화하겠노라는 노력은 전혀, 모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나는 조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애는 아주 희귀한 무엇이다. 세상에 반짝하고 등장한 것이 겨우 만 사년이 넘었을 뿐이지만 벌써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는지 모른다.식사 장면을 보자. 먼저 밥을 다 먹고 거실에서 만화영화를 보던 조카가 신비의 사이렌을 에~엥 울려대자마자 식탁에 있던 아빠가 구르듯 달려나간다. 이리저리 달래서 금방 헤헤 웃게 하는 것이 여간 재주가 아니다. 참 용한 재주로구나! 하고 들여다보는데 미식축구 파이널에서 뛰다온 것 같은 나의 남동생은 터치다운을 해낸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와
신호대기에 걸렸다.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하루는 무거운 짐과 같았다.아직 온전한 퇴근조차 하지 못한 내가 출근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세어본다.여섯 시간 이십칠 분.한숨 같은 분노, 체념과도 같은 한숨.나는 아직 견딜 수 있다.이 사거리 건너편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동물병원이 있었다.로디가 죽고 나서는 어떻게든 그 병원을 보지 않으려 멀리 돌아다녔었다.그러다 내가 잊었나? 아니면 그 동물병원이 이사 간 것이 먼저였나?눈앞이 환하여졌다.늦은 밤,쓸쓸하고 어두운 자동차 운전석에 관객처럼 앉아,한때는 찬란했던 너의 여름을 본다.영화처럼,건
아버지는 울면서 염을 했다. 20년 넘도록 암만 주물러도 곧게 펴질 줄을 모르고 영영 굳어버린 할머니의 왼쪽 무릎을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할머니는 결국 세상에 처음 나올 때처럼 곧고 가지런한 다리로는 떠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종내 서러워하며 떼쓰는 아이마냥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장례지도사 자격증이 그의 본업이 아닌 부업에 추가 된 날을 기점으로 늙어가는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생업과 할머니를 돌보는 일 외에 성당 연령회(성당 내 돌아가신 분의 장례절차를 돕고 그를 위해
철모가 조금 숙여져 있을 뿐이었다.어깨에는 새까맣고 커다란 군장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웅크리지도 않았고, 고개를 수그리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 약간 “기울었다”라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마치 그 트럭이 완성되던 그 순간부터 거기에 앉아있던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내리지 않을 사람들처럼 그렇게 미동조차 없이 앉아있었다.비가 퍼붓는 아주 늦은 밤에.자유로의 일산과 파주 사이 구간에서 나는 그들을 보았다. 고속도로 출구가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랬는지 4차선으로 미리 차선을 바꾼 뒤였다. 비도
무공의 깊이가 태산과 같다는 도인이 있었습니다.그 노인이 어찌어찌하여 제자를 들였는데, 제자가 된 젊은이 또한 엄청난 도력을 가지고 태어난 데다 이를 갈고 닦아와 그 일대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널리 소문난 자였습니다.“네가 청소를 깨끗이 하면, 너에게 내가 그동안 쌓은 모든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제자는 매일매일 스승과 함께 기거하는 거처의 모든 곳을 쓸고 닦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스승은 항상 빙그레 웃으며 “청소를 해주어서 참 고맙구나”라는 인사와 “참 잘했구나”라는 칭찬을 할 뿐 가르침을 주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
방에서 네 발로 기어 나와, 거실바닥을 열심히 굴렀다.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어느 순간부터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삼일 전 싸운 동생이 업고 뛰었다. “누나 내가 다 잘못했어”하면서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아파서 기절하느라 그 장면을 놓친 것이 가장 아쉬웠다.급성 장염이었다. 이틀을 꼬박 굶은 후 퇴원 길,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당분간 죽을 드시는 것이 좋고, 기름기를 피하며 이후에도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셔야한다고.나는 이틀을 굶었지만 엄마가 끓여준 죽은 맛이 없었다. 동네 피자집의 감자피자가 간절했다. 자꾸만 침이 고였다. 시
할머니는 소학교 교실에 딱 한 번 앉아 보았다. 그날로 평생 학생 노릇은 꿈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글을 깨치고, 한자도 잘 알았다. 조그마한 남색 수첩에 시를 적어 손녀에게 읽어주는 낭만도 있었다. 머리가 하얀 낭만 소녀는 손녀를 살뜰하게 챙겼다. 교복도 다려주고 식사도 차려줬다. 특히 좋아하던 일은 책상 정리였는데 ‘무조건 종이에 적힌 것은 공부에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이라는 평소 지론에 따라 작은 종이조각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구겨 버린 종이도 네 귀퉁이를 곱게 펴서 무슨 국가 기밀문서라도 되는 양
3년 8개월이 넘는 긴 항해였다.우린 모두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원래 가진 것이 없는 마을이라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맨손으로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들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들이 아파 밤새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 컸다. 아픈 건 차라리 나았다. 산에서 나무에 깔리거나, 톱질을 하다가 다리나 손가락을 영영 잃어버린 어른들도 있었다.그렇게 만든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 고기를 이웃 마을에 팔면 돈이라는 걸 벌 수 있을 거라고 한 건 선장의 아버지였다. 돈을 벌면 우리가 배를 곯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나는 직감했다. 그의 남은 수명이 곧 다하리라는 것을. 신을 찾았고, 엄마를 찾았지만, 제발이라고 백번을 외치기도 전에 그 때가 왔다.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첫 눈에 반해 그의 남은 여생을 함께 하리라 다짐했다. 매일 그를 보살펴야한다는 전 주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행으로 달려가 900불을 인출하며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를 위해 운다. 우리를 위해 운다. 2010년 여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1991 연식의 빨간색 두 개의 문을 가진, 그 자동차가 3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