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최근 미국의 한 방송에서 흥미로운 몰래카메라가 진행됐다. 현직 군인처럼 군복을 입은 연기자가 마트 계산대에서 몇 달러가 부족해 결제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연기자는 금액을 맞추기 위해 계산대에 올려놓은 물건 몇 가지를 빼려했다. 그때 누군가 다가가 그를 막아서고 부족한 금액을 대신 계산해 주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그의 뒤에서 계산 순서를 기다리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후 제작진은 시민에게 다가가 연출된 상황임을 알렸고 군인(연기자)을 도와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군인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명예로워야 할 이가 그런 상황에 처해선 안 됩니다.”

미국 방송이 진행한 몰래카메라에서 시민이 돈이 부족한 군인을 대신해 계산하고 있다. ©ABC뉴스 캡처

이날 하루 진행된 몰래카메라에서 군인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연 시민은 수십 명에 달했다. 개중에는 자신조차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도 있었다.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을 존중할 줄 아는 미국 사회의 선진의식이 완연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한국에도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 존재했던 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이들을 공익희생자라고 칭한다. 순직 소방관, 순직 경찰관, 의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1년에 무려 30~40명의 공익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거룩한 희생이 열흘에 한 번꼴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할까. 공익희생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을 꺼내면, 그게 무엇이냐는 물음이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인식의 현실이다.

관심이 부족한 이유를 마냥 시민에게만 물을 순 없다. 관의 행보를 면밀히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일회성에 그치는 추모행사가 적지 않고,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순직경찰관 사이버추모관이 마련되어 있지만 아주 작은 글씨의 배너를 찾아 클릭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순직자에 대한 공적은 기껏해야 2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또 어떠한가. 망자의 죽음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 뿐, 공익희생자와 관련된 제도 마련은 뒷전이고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마땅히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곳에서 공익희생자에 대한 선양을 등한시하고 있으니 그들을 기리는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세태에서도 외로운 등대처럼 빛을 발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지난 2013년 희생자들을 위한 선양 사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공익희생자지원센터가 출범했다. 그리고 지원센터는 지난해 11월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라는 제목을 내건 휴먼북을 발간했다. 공익희생자들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재조명한 내용을 유가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설의 형식으로 펴낸 것이다. 휴먼북은 그들을 알리는 시발점이 될 귀중한 텍스트다. 살아가다 우연히 읽게 된 몇 줄짜리 텍스트에도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인생 아니던가. 그 선한 영향력이 희생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과 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곧 추모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픽사베이

지원센터의 대표는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선양 사업을 위해 정부 차원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공익희생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알리고 그 가치를 높이 제고하는 것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관(官)이다. 그런 의무를 지니고 있기에 공익희생자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 단체 출범과 함께 휴먼북 발간으로 먼저 발을 내딛은 민(民)에 못지않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알을 깨고 나가려면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도 밖에서 깨뜨려야한다는 말이다. 알 속에 갇힌 병아리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안과 밖의 움직임이 두루 필요하다. 희생이 기억되고 존경받으며 선양될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선 관과 민의 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를 통해 너무 많이 바래지고 너무 빨리 잊힌 의로운 죽음들을 지켜나가야 한다. 훗날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공익희생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숭고했던 마지막 순간을 존경어린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 민관이 함께 이뤄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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