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말수가 굉장히 적은 사람이다. 질문보다 대답을 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고, 그 대답마저 굉장히 딱딱한 자기검열을 거쳐서 한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상처 받을 만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말도 철저히 금하는 편이다.그렇다고 해서 착한 척을 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착하지도 않다. 다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타인에게서 오는 말 한 마디가 어찌나 성가신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자리에서 타인이 내게 아무렇지 않게 뱉은
0. 지극히 개인적인 통계올해 6월, 상반기가 끝날 무렵에 퇴사를 했다. 휴식기를 가지게 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책 없이 논 것은 사실 일주일 정도였다. 무더운 7월이 되어서는 땀 차는 엉덩이로 자리를 지키며 글 쓰는 일에 집중했다. 각종 문학상과 공모전에 출품할 생각이었다. 재밌었다.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여름에 내가 정했던 출품 원칙은 아래와 같다.1. 전국 규모의 문학상, 공모전에 출품한다.2.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낼 수 있는 곳은 다 낸다.3. (당선 가능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겨울은 저도 추운지 창 어귀를 기웃거리다 문풍지를 뚫고 집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공과금 고지서를 헤아리는 새벽, 새끼 밴 개가 진통으로 헐떡였다. 어림짐작 걱정하던 생활비보다 더 치열한 산통이 시작됐다.어미개는 안절부절 못하며 깔아둔 요를 오르내렸다. 전기요의 보온 숫자를 하나 더 올리자 겨우 안정을 찾은 듯 구석에 누웠다. 주인 냄새 물씬한 외투를 목덜미까지 올려주고 한동안 조바심을 내다 시집을 찾아 읽었다.사각사각, 첫눈처럼 써 내려진 활자들 사이로 새 생명을 품은 어미개가 아른거렸다. 한참 뒤에야 죽은 것과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혁명은 언제나 뜨거운 것이다. 석탄에 불을 붙여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이 영국 산업혁명의 시작이었고, 프랑스에선 민중의 가슴에 뜨거운 불이 붙어 시민혁명을 이뤄냈다. 그러나 여태껏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빙하처럼 차가운 혁명의 움직임이 북극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일 먼저 접근하고 싶은 북극의 테마는 자원이다. 자원의 보고라는 이름에 걸맞게 북극에는 미개발 원유의 25%와 천연가스의 45%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한국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8번째 북극 탐사에 나섰다. 아라온호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인간이란 과연 자격이 요구되는 존재인가. 윤리나 법, 문명 따위가 만들어진 지는 불과 수천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최초의 인류는 300만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태초의 아침부터 시작된 인간의 본성이 과연 제도에 의해 재단될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자격이란 것이 인간에게 적용될 만한 것일까.나는 여태껏 살아오며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이 없다. 비주류라는 꼬리표가 이름 석 자보다 더 선명하다. 그러나 내가 비관의 영역에 가까이 있었다고 해서 쉽사리 염세주의적인 사고에 빠진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진웅, 송승헌 주연의 라는 영화가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창수는 백범 김구 선생이 수차례 개명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옛 이름이다. 배우 조진웅이 김구 선생의 역할을 맡았다. 김구(金九)는 김창암, 김창수, 김구(金龜)에 이은 선생의 마지막 이름이기도 하다.지금껏 숱한 시대극이 나왔건만, 김구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없었다. 그는 한국 근대사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출생하여 1948년 단독정부 수립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의 딱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한국의 총 전력생산량 중 석탄화력발전 비율은 48%에 달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6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의 절반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탈원전 문제를 두고 각계각층에서 찬반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주목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탈원전의 선결과제인 신재생에너지 문제를 선진국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봤다.70년대 한국은 낮은 단가의 화력발전에 힘입어 대대적인 산업화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약 반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11만km를 달린 벗님의 마티즈를 타고 드라이브 내내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세 청춘은 흡사 한 무리의 불한당 같다. 신호 대기 중인 차에서 옆 차선 외제차를 보고 신세한탄 좀 하다가 역사와 이념까지 논하며 썰전을 찍는다. 이러다가 언젠가 다음 의제는 세계평화가 되지 않을까.각자의 하루 일과를 성실히 마친 우린 야밤에 한 번씩 이유 없이 모여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를 한다. 수동식 창문을 손으로 돌려 내리면 불어오는 바람은 마티즈에게도 평등하게 선선하다. 그러다 문득 배가 고프면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거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동료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불법주차에 대해 작은 실랑이를 벌인 적 있다. 과태료 10만원에 속 쓰려 하는 동료의 푸념이 그 시작이었다.“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신고까지 해야 했을까. 관리사무소에 말해서 경고조치를 부탁하든지 아니면 나한테 빼 달라고 전화를 하지. 처음으로 잠깐 댄 건데.”“근데 당사자는 한두 번 겪은 게 아닐 거야.”“무슨 말이야?”“처음에 그분도 신고 대신 차주에게 전화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을 거야. 그 이후론 조심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개중에는 반복해서 주차하는 사람도 많지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애국이란 개념이 희미해진 요즘이다. 현충일 등 각종 기념일에 태극기 건 집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역사란 것은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워 넣기 위해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국민들이 늘면서 의식은 죽어가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큰 구국의 현장들도 조상의 호국정신을 담아낸다는 본래적 취지를 벗어나 영리 추구의 관광지로 전락한지 오래다.역사란 과거의 사실에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투영시키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는데 의미가 있다. 문득
오래 전 개 한마리 집으로 들였다. 할매는 염소 같다 했고 부친은 시골 똥개 같다 했다. 나는 사슴 같아 데리고 왔다. 개는 유기견 때 버릇이 남아 마른 것을 온이 씹지 않고 넘겼다. 끼니때마다 밥을 줘도 저에겐 늘 기약 없는 마지막 음식처럼 허겁지겁 했다. 습관이었다.2번 찍은 할매에겐 운동권의 교정을 노닐던 아들이 있다. 개가 거실 바닥에 차진 똥을 쌀 때면 둘은 꼭 9시 뉴스로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더 거슬러 올라 집구석 전설을 헤아리면 이 몸뚱아리에도 좌우의 피가 두루 흘렀다. 개의치 않았다 마냥 자연이고, 습관이었다.지난
알파치노,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인사이더’는 담배 제조회사와 관련된 내부고발 실화를 다룬 영화다.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제프리 위건드는 미국의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라운 앤드 윌리엄스’의 부사장이었다. 회사 측이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을 담배에 넣는 것을 알고 이를 저지하려던 제프리는 졸지에 ‘의사소통 능력 미달’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해고당하고 만다.그 무렵, 각종 사회비리를 낱낱이 고발해 온 CBS의 언론인 로웰 버그만은 유해성의 비밀이 담긴 담배회사 내부 자료를 입수하고, 자료의 전문적 해석이 필요하자 제프
시 한 편 써보려 주제 넘는 단절로 며칠을 굳게 닫고 살았다. 안타까이 불러도 열리지 않는 비애에 바람은 그리도 창을 두드렸던 것일까. 쇠창살 같던 골방 창의 격자가 비로소 빈 원고지처럼 보이던 날, 나는 앞이 막힌 창을 열었다.삭은 가지 같은 팔 뻗어도 온이 피지 못할 그 거리에 적갈색 벽, 넓은 등짝처럼 서있건만 그 좁은 틈으로 부스럭 부스럭 바람 타고 흘러오는 공사쟁이들 마른 빵 먹는 소리, 주린 입들 비닐과 맞닿아 다투는 소리. 생의 일렁임은 기어코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창과 벽 사이를 찬찬히도 훑으며.거짓글 쓰는 이 앞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운명이나 인연은 믿지 않지만 낭만은 믿는다. 그런 낭만에 부응하듯 예비신부와 나의 생일은 10월 21일로 같다. 마침 올해 그날이 토요일이라 아예 결혼기념일로 정해버렸다. 이번 대선에선 볼 수 없었던 단일화가 우리 두 사람의 기념일 달력에서 시원하게 이뤄졌다. 그날 하루의 의미는 세 배로 깊어지고, 앞으로 들 기념비용의 지출은 삼분의 일이 되었으니 이 낭만의 선택이 백년해로의 가능성에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리라 믿어본다.우리는 과감히 결혼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가족, 친지만 불러놓고 하는 작은 결혼식도 하지 않
아직 이른 하늘, 다음 장을 넘는 악보처럼 어제의 잎이 지고 전신주를 지나는 바람이 찬찬히 현을 켠다. 차창에 닿는 새벽의 풍현(風絃). 흙먼지 묻은 승합차로 하나 둘 박자 타듯 오르는 노동의 발들.지하철역으로 들어서는 입구, 은박지 싼 밥덩이 한 줄씩 쥔 아낙은 손에 들린 것 맞닿아 치며 종이돈 부르는 타악(打樂)을 낸다. 열리지 않은 공원 그 앞 대리석 화단에 앉아 오는 밤잠 없는 노인들. 오래전 새끼가 맞춰 준 틀니, 높이 어긋난 불협을 달그락 달그락 무던히도 조율한다.이제는 허름한 빵집 영세의 네온만이 서너 개의 조명으로 거
평소 출퇴근길을 한번 생각해 보자. 무심코 지나쳤던 그 거리에 편의점, 치킨집, 카페 등 수많은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심지어 반경 50미터도 안 되는 골목에 같은 프랜차이즈 점포가 나란히 있는 것도 부지기수다. 개인의 생활반경만 둘러봐도 국내 자영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이 실감난다. 최근에 발표된 통계수치를 보면 더 공포스럽다.무려 660만명, 국내 경제활동인구 중 4분의 1 이상이 자영업자다. 이 비율은 OECD 가입 국가 중 최상위권 수준이다. 그리스, 터키가 한국보다 높은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두 나라 모두 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내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에 속했다. 자랑은 아니다. 오히려 꺼내면 아프기만 한 과거다. 지금의 내 삶은 어떠한지 나열해보면 극명히 비교된다. 자퇴생, 검정고시 출신, 장애인 그리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면서 밤엔 여러 형태의 글을 쓰는 비루한 인생….자연스레 멀어져 연락을 자주 주고받진 않지만 그 당시 나와 비슷한 성적을 받던 친구들의 소식이 틈틈이 들려오곤 한다. 명문대 진학은 기본이고 수련의, 교원, 대기업 사원이 되어 건실한 청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다른 인생으로 살게 된 이유
2016년 1월 20일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심사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만 스물셋이었던 나이를 고려하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정상인 좌안(左眼)에 비해 내 우안(右眼)의 시력은 사실상 의학적 실명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몹시 나빴다. 우안의 장애등급 판정에 대해 공단과 다툼이 발생한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시각장애 6급 기준은 나쁜 눈의 시력이 0.02 이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0.02 또는 안전수지(眼前手指, 50cm 정도의 거리에서 손가락 개수를 알아맞히는 경우로 통
공무원시험 열풍, 무한 스펙 경쟁과 같은 사회현상부터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라는 신조어의 탄생까지 다양한 목소리의 진원지는 고용불안이다. 고용시장 침체는 그간 무수한 신문 지면을 통해 누누이 언급되며 시급한 의제로 떠올랐다. 청·장년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고용 불안의 원인을 짚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사회 움직임 속에도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고령자, 결혼이주여성, 장애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의욕이 있음에
최근 행정부가 저지른 비위로 온 나라가 아프다. 기성세대의 한탄과 신세대의 환멸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요즘의 아픈 세태 탓일까.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의 공기는 더욱 창백하다. 한해의 끝에 다다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문득 올해의 시작을 되돌아본다. 올해는 1997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스물의 청년이 된 해였다. 97년은 광복 후의 최대 비리로 점철됐던 한보철강 부도사태가 일어났던 해다. 그때의 신생아들은 스물의 청년으로 장성했건만, 이 나라의 청렴도는 그날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슬프다. 의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