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지의 코스모스.mp3]

작년 이맘때쯤, 주변의 친구들이 가만있다가도 줄곧 ‘아버지!’를 외치곤 했다. 이들이 애타게 아버지를 찾은 이유는 송민호의 ‘겁’이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인기 힙합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노래 겁의 한 소절이 마치 유행어처럼 청년들 사이에서 번졌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어른이 되기엔 어리고 여렸던 그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이 세상의 모든 어른이 떠올랐다.

©픽사베이

얼마나 어릴 때였을까. ‘너도 늙는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과의 차이는 어린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도 극명해서 어른들은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인 듯했다. 그들의 성숙함은 어리숙한 나에게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나 같은 아이는 영영 어른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른에게서 제한받는 동시에 보호받았다. 울타리는 답답했지만 편안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 아마 스무 살 때 즈음이었을 거다. 정신을 차려보니 울타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주변에서는 갑자기 내게 ‘책임’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부담감에 그저 당황스럽고 어떡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사회는 냉정했다. ‘이제 어른이잖아. 네가 알아서 해야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마법 같은 일이다. 성인이 되는 기점은 신체적 발달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을 뿐인데 19살까지는 울타리 안에서 자라다가 20살이 되는 순간 어른으로 변신해야 하다니. 머리도, 옷도 다른 사람이 정한 규칙에 맞춰 입던 사람이 하루를 기점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책임을 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사회는 그 누구든 어른이 된 순간 마치 번데기에서 변신한 나비처럼, 순식간에 성숙해지길 기대하나 보다.

그러나 어른은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고 여리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어른이 되고 싶어 노력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살다보니 정말, ‘어쩌다’ 어른이 된 거다. 부딪히고 상처 입었지만 어른이니까, 겁나지 않는 척 눈을 부릅뜨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이며 강한 척하는 것이다.

19살까지는 울타리 안에서 자라다가 20살이 되는 순간 어른으로 변신해야 하다니. ©픽사베이

뒤돌아봤을 때 생각보다 멀리 와 있었어
난 혼자였고 문득 겁이 났지
내가 날 봤을 때 지쳐 있단 사실을 몰랐었어
난 외로웠고 문득 겁이 났지
송민호의 ‘겁’ 가사 일부

어른이 되었지만 학생 때와 변함없는 것,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학생 때 가사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대학입시 공부를 하며 막연한 미래를 준비할 때 문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길에 너무 깊게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쳐있었는지 몰랐고 지친 나를 발견했지만 어떠한 방법도 취할 수 없었다. 너무 외로웠고 겁이 났지만 가고 있던 길 외에는 방향이 없었다.

어른인 나는 여전히 앞을 향해 달리고 있다. 주변의 대부분이, 어쩌면 모두가 앞으로 무작정 움직이기만 한다. 아마 학생 때의 내가 그러했듯이,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겁이 나지 않는 척, 성숙한 척 하지는 말자. 어른은 아직 어리고 여리다. 지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는.[오피니언타임스=유현지]

 유현지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푸른 봄을 기다리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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