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그 시절 그노래]

인간이 즐기는 여러 기호품 중에서 오늘은 담배에 관한 성찰을 해봅니다. 한국인의 민족사에서 담배라는 박래품(舶來品)이 들어온 이래로 우리는 얼마나 천국과 지옥을 숨 가삐 넘나들었던지요. 오랜 옛날, 담배는 ‘핀다’고 하지 않고 ‘먹는다’고 했습니다. 마시는 연기로서보단 먹는 식품으로 간주했던 듯합니다. 모두들 ‘담배 먹기’에 너도나도 심취했던 터라 ‘담배를 즐기면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추울 때 몸이 따뜻해지며, 더울 때는 몸을 서늘하게 해 준다’고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담배를 자주 먹으면 기침과 가래를 제거해준다는 놀라운 기록까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서 복통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치료약으로 장죽(長竹)을 물리는 광경마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도입 초기 담배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기던 기호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담배를 일컫는 또 다른 멋스런 이름들이 많았는데요. 담바고,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망우초(忘憂草), 심심초, 상사초(相思草) 등등의 명칭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옛 소설 ‘춘향전’에는 농사꾼들이 봉당에서 새끼를 꼬다가 담배 피는 장면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대목이 보입니다.

가죽쌈지 빼어놓고 담배에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이 자빠라지게 비빗비빗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양 볼 때기가 오목오목, 콧 궁기가 발씬발씬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조선 중엽 이후로 접어들며 담배는 이미 민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반서민의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별칭 ‘대꼬바리’라고도 일컫는 장죽(長竹)의 골통에 담배를 꽉꽉 재어 넣는 광경과 화로의 짚불에다 그 담배를 불붙이는 모습이 참 흥미롭습니다. 어린 시절, 큰댁 안방에서 백모님이 담배 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자들은 색채가 아름답고 윤기가 있으며, 다른 오죽에 비하여 질기고 대나무까지 그려진 값비싼 소상반죽(蕭相斑竹)을 썼지요.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는 장죽을 뻐끔뻐끔 빨아대는 농사꾼들의 얼굴 모양새를 표현함에 있어서 두 볼이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오목오목’이라 한 것과 입안의 연기를 콧구멍으로 내보내는 품새를 ‘발씬발씬’이라 한 부분을 읽으며 우리는 저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그 멋스런 여유와 배포를 느끼노라면 이게 바로 우리 조상님들의 담배 먹던 정겨운 모습이고 멋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담배 필 때 사용하던 장죽. 쌈지에 든 잎담배를 엄지손가락으로 꽉꽉 눌러 담아 한입 맛나게 빨아먹는 노인의 모습은 정겹다. ©이동순

담배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1920년대의 대표시인 중 한 분인 오상순(吳相淳) 선생은 아호가 공초(空超)였습니다. 담배꽁초에서 힌트를 얻어 공초가 되었겠지만 꽤 철학적 여운이 향기롭게 감도는 아호란 생각이 듭니다. 이분은 참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애연가로서 선생이 남긴 어떤 사진을 보더라도 항시 한 손에 담배를 쥐고 있습니다. 삶을 초탈한 표정으로 서있는 모습을 보면 선생에게 있어서 담배는 그 험난했던 식민지와 전쟁의 세월을 아슬아슬 지탱해주던 가파른 삶의 지팡이가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1930년대 가요 중에는 작곡가 김해송이 자신의 아내 이난영에게 헌정했던 재즈 스타일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이란 멋스런 작품이 있습니다. 이 노래 서두는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에서 보듯 담배를 피우는 분위기로 풀어가고 있네요.

1950년대 부산 피난시절의 담배는 아무래도 낱개비 담배가 아닐까 합니다. 임시수도 부산의 광복동, 남포동 국제시장 부근에는 다방도 많았고, 그 주변으로는 작은 상자에 ‘양담배’란 이름의 수입담배와 포장을 뜯어서 낱개비로 가지런히 재어놓은 모습으로 팔러 다니던 소년들이 많았습니다. 이따금 축음기 바늘도 그들의 단골 판매용품 목록 중 하나였지요. 당시의 가요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박재홍 노래) 가사에는 ‘담배장사 하더래도 살아 보세요’란 대목이 들어가 있질 않습니까? 한정무가 불렀던 ‘에레나가 된 순이’의 2절 가사 끝부분은 농촌소녀 순이가 에레나란 이름으로 바뀌어 밤늦은 카바레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양담배 피우는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는 담배를 처음 접한 나이가 중학교시절, 친구네 집 다락방이었습니다. 평소 모든 면에서 악동기질이 찰찰 넘치던 친구는 자기 어머니 방에서 몰래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왔습니다. 친구어머니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었지요. 친구가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서 건네 준 담배를 조심스레 빨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 연속으로 터져 나오던 기침은 이 광막한 세상에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파도처럼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가를 소스라치게 일깨워준 충격적 첫 경험이었지요. 이후로 담배는 체질에 맞질 않아서 곧 그만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체질에 맞질 않으니 여전히 고통과 시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애연가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 담배는 생의 필수품으로 자신의 삶과 완전한 통합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반려(伴侶)로 함께 살아가는 단란한 경우를 여럿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담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일심동체였습니다. 노름방에서 도박으로 밤을 새다가 새벽녘이 되어 담배가 떨어지면 방안 재떨이와 쓰레기통을 거꾸로 쏟아 부어 남이 피다 버린 꽁초를 발굴해냅니다. 그 꽁초에 불을 댕기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니코틴 애호가들의 모습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 깨자마자 밥보다 담배를 먼저 더듬어 찾는 부류들이었지요.

소설가 나도향(羅稻香)의 수필 ‘그믐달’에 보면 노름꾼이 새벽녘 마당귀의 담벼락에 오줌 누러 나왔다가 바라보는 달이 그믐달이라 했고, 그 그믐달을 ‘독부(毒婦)의 눈썹’에 비견했습니다. 그런데 필시 그 방뇨하던 노름꾼의 입가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렇듯 담배가 인간의 삶에서 거의 필수적 기호품이 되다보니 노래 속에도 담배가 등장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담배와 관련된 노래를 찾아보니 가장 먼저 확인되는 작품이 1912년 닙폰노홍(일본축음기회사)에서 발매된 조선잡가 ‘담바귀타령’입니다. 이후로도 ‘담바귀타령’(예술좌합창단, 콜럼비아, 1932)과 기생 김향, 이소홍이 함께 부른 ‘담바귀타령’(태평, 1933) 등 두어 종류가 보입니다. 민요로 자리를 잡은 ‘담바귀타령’의 문맥을 김옥심의 창에서 더듬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시작일세 시작일세
담바귀타령이 시작일세

귀야 귀야 담바귀야
동래나 울산의 담바귀야

너의 국은 어떻길래
대한의 국으로 뭐 하러 왔니

우리 국도 좋거니와
대한의 국으로 유람을 왔네

은을 주려 나왔느냐
금이나 줄려고 나왔느냐

은도 없고 금도 없고
담바귀 씨를 가지고 왔네

저기 저기 저 산에
담바귀 씨를 솔솔 뿌려

낮이면은 태양 받고
밤이면은 찬이슬 맞아

-김옥심의 민요 ‘담바귀타령’ 전문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래된 담배가 부산 동래와 경남 울산 등지의 민간으로 들어가 점차 그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이 은연 중에 나타나 있네요. 담배테마 노래는 이후로도 이어져 1936년 김복희(金福姬)가 신민요 ‘담바구야’(빅터)를 불렀고, 1938년에는 한성권번 소속의 기생 이옥란(李玉蘭)이 ‘담배를 물고’(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콜럼비아)를 데뷔곡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말인 1939년, 이난영(李蘭影)의 ‘담배집 처녀’(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오케)가 나왔습니다.

‘담배집 처녀’는 서울의 어느 네거리 잡화상에서 담배를 팔던 한 처녀가 늘 담배 사러 오던 핸섬한 청년을 은근히 기다리는 심리묘사 장면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늘 오던 청년이 보이지 않을 때 담배집 처녀가 속으로 안달하는 모습까지 담아내고 있네요. 노래가사에는 그 시절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어 공급했던 ‘하도(はど)’ ‘가이다(かいた)’ ‘미도리(みどり)’란 담배이름도 등장하고 있어서 생활사적 자료로서도 흥미롭습니다.

일제시대 담배 ‘하도’와 ‘가이다’(왼쪽), 그리고 ‘란’, ‘가찌도끼’ ©이동순

특히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 만들었던 미도리 담배는 식민지시절에 불렸던 정선아라리 가사에도 등장하고 있어서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말 못하는 미도리 한 갑도 요 내 속을 푸는데/ 말 잘하는 대장부 요 내 속을 왜 못 푸나” 미도리 담배는 열 개비가 들어있는 12전짜리 고급담배였는데, 담배갑 표면에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통치이데올로기였던 ‘황도선양(皇道宣揚), 직역봉공(職域奉公)’ 따위의 식민지구호가 인쇄되어 있어서 고달팠던 세월의 씁쓸한 잔영을 느끼게 합니다.

男대사) 저 담배 한 갑 주십시오.
女대사) 아이 저 어떤 것을 드릴까요?
아침이면 아홉시 저녁이면 네 시 반
날마다 찾아오는 핸섬보이
오늘은 웬일일까 오늘은 웬일일까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를 않네
(아마 어데가 아픈 게지 그렇지 않으면 늦잠을 자나?)
나는 나는 나는 그리워 보고 싶어
(아이 어서 오세요 하도를 드릴까요?)
나는요 네거리 별명 있는 딸이야

女대사)아이고, 문에 바람소리. 저기 오는 이가 그이지?
분명 그렇다면 어쩌나, 아이구 부끄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는 시간에
파이프 입에 물고 지나가며
공연히 싱글벙글 공연히 싱글벙글
슬며시 보는 사람 왜 아니 올까
(아마 볼일이 있는 게지 그렇지 않으면 내 시계가 틀렸나?)
나는 나는 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아이 어서 오세요 가이다는 떨어졌는데요)
나는요 꿈꾸는 아름다운 장미화

男대사)저 담배 한 갑 주십시오.
女대사)아이, 저 어떤 것을 드릴까요?
아니 보면 그립고 만나보면 수집어
이틀에 한번 오는 싸라리맨(샐러리맨)
이 밤은 웬일일까 이 밤은 웬일일까
저 달이 저물도록 오지를 않네
(아마 담배를 끊은 게지 그렇지 않으면 돈이 없나?)
나는 나는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
(아이 어서 오세요 네 미도리를 드릴까요?)
나는요 웃으며 서비스를 한데요

-이난영의 ‘담배집 처녀’(1939) 전문

이 노래 이후로 담배테마 노래는 일제말까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워낙 경색된 시절이라 가요 자체가 금지되던 시절이었지요.

드디어 광복 이후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산연초 아리랑’(김용만)이란 제목의 노래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는 ‘아리랑’ ‘파랑새’ ‘풍년초’ ‘진달래’ ‘파랑새’ ‘사슴’ ‘백양’ 등 당시에 판매되던 담배 이름들이 가사 속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양담배 피는 마을 눈물이 오고, 풍년초 피는 마을 웃음이 온다’는 식으로 수입담배에 대한 배격이 강하게 등장합니다.

아리랑 연기 속에 사랑이 피고
아리랑 피워 물면 행복이 오네
아리랑 고개에 사슴이 놀고
쓰리랑 고개에 백양이 논다
파랑새 우는 마을 오곡이 익어
풍년초 연기마다 얼씨구 절씨구
에헤요 풍년이 온다

아리랑 연기 속에 사랑이 피고
아리랑 피워 물면 행복이 오네
아리랑 고개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꽃 위에 나비 춤춘다
양담배 피는 마을 눈물이 오고
풍년초 피는 마을 얼씨구 절씨구
에헤요 웃음이 온다

아리랑 연기 속에 사랑이 피고
아리랑 피워 물면 행복이 오네
진달래 고개에 사슴에 백양
파랑새 진달래 나비 연기는
피우는 사람마다 슬픔을 잊고
내일의 새 희망이 얼씨구 절씨구
에헤요 찾아온다네

-김용만의 ‘국산 연초 아리랑’(1966) 전문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가사에 등장하는 ‘풍년초(豊年草)’는 거칠게 썰어서 봉지에 담은 담배를 말합니다. 턱수염이 허연 노인이 쌈지에 든 풍년초 잎담배를 꺼내어 손가락 한마디만큼 담아 엄지손가락으로 꽉꽉 눌러 다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성냥불로 불붙일 때 줄곧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셨지요 장죽을 쓰지 않던 중장년층은 신문이나 잡지를 주로 썼는데, 이런 종이조차 귀하던 시절에는 이따금 자녀들의 교과서, 공책, 심지어 상장까지도 찢어 풍년초를 담고 손가락 굵기 정도로 돌돌 침 발라 말아서 피워대었지요. 참 경우 없고 무지한 아버지들이었습니다. 당시엔 이런 말도 돌았습니다. 주간지 한권이면 풍년초 잎담배를 한 달 내내 말아 피울 수 있다며 자랑삼아 해대던 해괴한 언사 말입니다.

1960년대 이래로 담배테마 노래들은 제법 여러 곡이 발표됐는데요. ‘담배불 타는 역사(조신일, 1968), ‘담배연기’(최양숙, 1968), ‘담배’(서유석, 1972), ‘마지막 담배’(이상열, 1973), ‘담배’(윤형주, 1974), ‘담배꽁초’(김정미, 1974), ‘담배’(김애리, 1985), ‘담배 가게 아가씨’(송창식, 1986), ‘담배연기처럼’(임병수, 1986), ‘담배 한 개비처럼’(박경, 1990), ‘담배연기’(한대수, 1991), ‘담배 한 모금’(윤종신, 2002) 등으로 시대가 바뀌면서도 줄기차게 이어져 왔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담배테마 노래에서 담배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물질이나 도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허파와 기관지 등 호흡기 전반에 독한 부담을 주고 건강을 해치는 담배의 상식적, 규범적 해석에 대하여 일단 비판적, 부정적 태도를 나타내 보입니다. 하지만 담배란 도구가 단지 해로운 물질만이 아니라, 억압 속에 고통 받는 정신의 행복한 일탈과 짧은 자유를 위한 유익한 기능도 지니고 있다는 양면적 해석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담배의 두 얼굴을 나타낸 것이지요.

먼저 최양숙의 노래 ‘담배연기’를 살펴봅니다. 이 노래는 196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를 하나의 어둡고 흐릿한 음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대한 전환기의 흐름과 그 육중한 굴레 속에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청년기세대의 내적 고뇌와 암투가 문맥 속에 어렴풋이 드러나 보입니다. 그 빛깔은 대체로 암담한 빛깔로 불투명하게 그려집니다. 젊은 패기로 넘실거려야 할 청년세대와 그들의 문화가 오로지 담배연기와 꽁초에 매몰되어 허약하고 패배주의적인 자세로 위축돼가고 있네요. 시름과 사랑, 한숨과 눈물을 자아내도록 했던 담배, 끝내 성냥개비나 꽁초처럼 덧없이 타서 소멸되어버린 당시 청년들의 낙망, 허무감 등 내적인 좌절심리 따위를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구시대적인 한숨과 눈물이 20세기 중반까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광경은 당시 한국사회에서 분명히 병적인 위험성을 담보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시름이 타오르는 자색 연기
사랑이 타버리면 뿌연 연기
앉았다 일어선 그 자리엔 그 자리엔
이리저리 뒹구는 담배꽁초 꽁초
가슴이 타 오르는 자색 연기
쓰러진 사념 속에 흩어진 채
누웠다 일어선 그 자리엔 그 자리엔
이리저리 뒹구는 성냥개비 개비

한숨이 타오르는 자색 연기
눈물이 타버리면 뽀얀 연기
끊기 즐거운 그 얘기가 그 얘기가
이 밤 저 밤 불꽃을 피웠던 그 밤 그 밤
입술이 타 오르는 자색 연기
눈망울 희미하게 매운 연기
모두가 타버린 그 연후에 그 연후에
이렇게도 매웁게 타는 가슴 가슴

-최양숙의 ‘담배연기’ 전문

서유석의 노래 ‘담배’는 197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의 부담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청년세대의 삶과 내면 풍경이 실감나게 드러나 있는 듯합니다. 시대적 빛깔에 강한 중압감을 느끼는 그 무렵 청년들의 고통스런 내면이 마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고통의 현실은 삶과 죽음의 두 바탕에서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자꾸만 강박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허무(虛無)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삶의 시간은 결코 순탄하거나 원만하지 않습니다. 미래시간은 항시 불투명하고 소년시절의 벅찬 희망과 포부는 어느 틈에 덧없는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네요. 중심을 잃어버린 청년의 꿈은 마침내 색동저고리를 벗고 흰 상복을 입게 되었다는 격렬한 좌절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건강하고 튼튼해야할 청년기적 감성이 비극적, 자조적(自嘲的,) 허무적 표현으로 떨어지고 말았음을 증언해주는 대목입니다.

전체가사의 흐름 속에서 시적화자는 담배가 ‘두 손가락에 끼어/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르쳤다’거나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우도록 했을 뿐이라며 직정적(直情的) 토로를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생의 막다른 극한상황에 다다른 청년은 오로지 담배에 의존하며 자기 앞의 시간을 어둡고 우울하게 견디어 갑니다. 그것은 극히 무의미하고 비겁하며 소모적 시간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당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사회로 옮겨가던 한국사회의 엄청난 격변과 갈등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손가락에 끼어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리켰다
삶과 죽음의

두 입술에 물려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
사랑과 미움의

멍히 그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너 함께 너 함께 이루어지던 날
내 삶은 색동저고리를 벗고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멍히 그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너 함께 너 함께 이루어지던 날
내 삶은 색동저고리를 벗고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서유석의 ‘담배’(1972) 전문

김정미의 노래 ‘담배꽁초’는 사랑이라는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골몰하다가 일상적 삶의 틀과 규범을 번번이 놓쳐버리고 있는 일탈(逸脫)의 과정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담배(꽁초)는 정신 줄을 놓고 있는 시적 주체자(청년세대)로 하여금 냉엄한 현실로 다시 복귀시켜주는 각성(覺醒)의 매개물로 기능하고 있네요.

성냥불을 당겨서 담배를 붙여 물고
이 궁리 저 궁리 천장을 바라보고
찾아서 가볼까 여기서 기다릴까
아이구 뜨거워 놀래라 꽁초에 손을 뎄네
헤어지면 보고 싶고 그리워지네
이것이 사랑일까 정말 모르겠네

-김정미의 ‘담배꽁초’(1974)

한국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런 담배테마 노래는 낙천성, 유희성, 조화성, 서사성, 풍자성 따위의 미덕을 골고루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송창식(宋昌植)의 노래 ‘담배 가게 아가씨’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의 1절은 연모하는 담배 가게 아가씨에게 헌화(獻花)하는 장면입니다. 청년은 평소 새침하고 도도한 담배 가게 아가씨의 환심을 얻는 일에 일단 성공합니다. 2절은 불량배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한 담배 가게 아가씨를 용감무쌍한 헌신적 행동으로 구출해주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아름다운 결실을 맺습니다. 이후로 사랑을 쟁취한 청년은 기쁨과 행복감으로 충만한 삶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담배 가게라는 극적 배경이 받쳐주는 서사적 공간성과 사랑의 사연은 한 폭의 감동적인 스크린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송창식의 격정적이고도 익살스런 창법이 노래 효과를 한층 생동감 있게 증폭시켜 갑니다. 이 노래의 가사전개 과정에서 담배라는 물질은 건강의 이해(利害)와 관련된 해석이나 반응들과 전혀 관련을 맺지 않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카메라의 앵글이 서서히 이동해가며 비추어주는 영상효과가 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개성적으로 이끌어갑니다.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짧은 머리 곱게 빗은 것이 정말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 기웃 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때기
앞집의 꼴뚜기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만화 가게 용팔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선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하시라 작전개시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담배 하나 사러가서
가지고 간 장미 한 송이를 살짝 건네어 주고
그 아가씨가 놀랄 적에 눈싸움 한판을 벌인다
아라라라 그 아가씨 웃었어

하루 종일 가슴 설레며 퇴근시간 기다렸지
오랜만에 말끔히 차려입고 그 아가씨 기다렸지
젊잖게 다가서서 미소 띠며 인사를 했지
그러나 그 아가씨는 콧방귀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
그 아가씨 발걸음소리 맞춰 뒤따라 걸어간다
틀려서는 안 되지 번호 붙여 하나 둘 셋
오 위대할 손 나의 끈기
바로 그 때 이것 참 야단났네 골목길 어귀에서
아랫동네 불량배들에게 그 아가씨 싸였네
옳다구나 이때다 정의의 기사가 나가신다
아자자자 하늘빛이 노랗다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지금은 그 전보다도 백배는 예쁘다네
나를 보면 웃어주는 아가씨 나는 정말 사랑해
아라라 나는 지금 담배 사러간다

-송창식의 ‘담배 가게 아가씨’(1986) 전문

하지만 담배테마 노래가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허무적 성격과 그 보편성은 21세기로 접어들어서도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윤종신의 노래 ‘담배 한 모금’은 장항준 감독이 2002년에 제작한 코미디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삽입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김승우, 차승원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청년기세대의 갈등과 고뇌를 코믹하고도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증폭시켜서 자존감, 존재감의 평정을 꾀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부산행 열차와 승객을 인질로 납치한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고통과 억압, 불평등과 부자유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한국청년들의 아픔과 절규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여기서 담배란 매개물(媒介物)은 삶의 고통과 억압을 축소하고 해소시켜주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합니다. 흡연에만 의존해서 힘든 시간을 소모적으로 버티어가는 청년의 태도는 몹시 불건강하지만, 삶의 평정과 균형을 회복하려는 그들에게 있어서 담배는 일견 유익한 물질로 떠오르기도 하네요. ‘담배 한 모금 저 하늘에 뿜는 순간/ 다 용서할께 다 잊어줄께/ 나를 짓누른 자들아’로 서술되는 부분에서 담배는 과거시간의 불쾌한 기억을 망각하는 도구, 혹은 미래시간에서의 은근한 상황반전(狀況反轉) 및 그 촉매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얻어 피운 한가치 담배 속에 내 하루 시작되고
그 한 모금이 내뿜는 연기 내 하늘을 덮네
끊으라는 어머니 잔소리는 고마운 삶의 의미
예 그래야죠 줄여봐야지 다짐해 보지만
내 하루는 나의 세월은 날 내버려두질 않아
매 맞는 나의 청춘 짓밟힌 자존심을 단 하나 달래주는 건
참다 참다가 뒤돌아서서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담배 한 모금 저 하늘에 뿜는 순간
다 용서할께 다 잊어줄께
나를 짓누른 자들아
혹시 내일이 되면 입장 바뀔지 몰라
내 하루는 나의 세월은
날 내버려두질 않아
매 맞는 나의 청춘
짓밟힌 자존심을 단 하나 달래주는 건
참다 참다가 뒤돌아서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담배 한 모금 저 하늘에 뿜는 순간
다 용서할께 다 잊어줄께
나를 짓누른 자들아
혹시 내일이 되면 입장 바뀔지 몰라
입장 바뀔지 몰라
입장 바뀔지 몰라

-윤종신의 ‘담배 한 모금’(2002) 전문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담배테마 노래는 흔히 개인의 삶이 봉착하는 허무, 좌절, 우울, 비탄, 고뇌 따위를 스스로 순조롭게 여과시키거나 조절하지 못할 때 그저 손쉽게 습관적으로 가까이 활용하는 도구로써 단조롭게 등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그 도구의 성격 자체가 지극히 소모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힘겨운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시대별로 출현했던 여러 담배테마 노래들 가운데서 1939년 이난영의 ‘담배집 처녀’와 1986년 송창식의 ‘담배 가게 아가씨’에 그려진 사랑의 구도를 다시금 흥미롭게 대조해봅니다. 무려 47년이라는 시간적 거리로 분리되어 있던 두 작품은 삶의 낙천성과 회화성이라는 특이한 구도와 가능으로 부드러운 통합에 도달합니다. 거의 반세기라는 시간의 상거(相距)가 있지만 우리에게 그 정서가 전혀 낯설지 않으며 즐겁고 행복한 비교를 하도록 오히려 우리를 부추기고 유도합니다. 그 비교와 대조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지요.

전자(이난영 노래)는 담배 사러 오는 청년을 짝사랑하게 된 담배집 처녀의 애타는 광경을 담았고, 후자(송창식 노래)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즉 무관심한 담배집 처녀에게 환심을 얻고 싶은 청년의 애타는 갈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작품의 구도와 모티브는 서로 유사하면서도 담배집이라는 독특한 매개공간을 통해 거기서 미묘하게 소통되던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대중문화사의 소중한 해석학적 자료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담배와 담배노래 이야기를 한참 쏟아놓다 보니 오래된 앨범의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옛 추억 한 토막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매우 특이한 재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님께서 미군들이 쓰던 포탄의 탄피 아랫도리를 잘라 직접 만든 것으로 가운데를 망치질로 뾰족하게 튀어나오도록 만들고 담배를 비벼 끄기 편리하도록 재떨이의 가장자리를 손질한 것입니다. 재질은 포탄 제작에 흔히 쓰이는 노란색 중석(텅스텐)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6‧25전쟁 시절 어디선가 주워온 불발탄의 화약을 쏟아내고 빈 껍질로 만든 물건이었지요. 그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인마살상용 포탄을 재떨이로 모습으로 바꾸게 한 아버님의 아이디어와 재치는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도구를 평화의 도구로 바꾼 아버님의 위력에 새삼 경탄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던 중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 재떨이가 내내 그리운 것은 어쩐 일일까요?

자, 이쯤에서 여러분께 제안해 봅니다. 먼저 귀여운 콧소리로 애교스럽게 불러가는 이난영의 ‘담배집 아가씨’를 우선 한 차례 들은 다음, 무대 위에서 기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담배 가게 아가씨’를 기운차게 엮어가던 송창식의 격정적 창법을 잇달아 비교 감상해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아득히 흘러간 우리의 청춘시절과 근현대 민족생활사의 희로애락들이 추억의 스크린 위로 마치 한 폭의 영화필름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갈 것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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