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 국문학 박사] 우리 국토개념은 일반적으로 분단이전의 상태, 즉 남북한이 하나로 통합된 상태의 영역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 상고시대의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북녘 삼천리, 남녘 삼천리, 도합 육천리가 한민족의 강토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저 유명한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주장이기도 하지요.지금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옛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습니다. 심지어 흑룡강 너머 연해주의 상당한 부분도 우리 민족이 말달리며 활을 쏘던 고토
[오피니언타임스=이 동 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한국의 근대시기는 식민통치와 맞물려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라의 주권은 이민족의 강압에 늑탈되어 백성들은 내 고향 내 집에 살면서도 나라 잃은 백성의 처량한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이러한 때에 우리 가요인들은 비록 일본의 레코드자본에 의존해서 음반을 제작생산하면서도 찍어내는 음반에 담긴 노래들은 식민지백성들의 가슴을 위로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가요작품을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가상한 것인지 모릅니다. 나라 잃은 시기에 우리 민족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이동순]한국가요사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 명성이나 활동의 내용이 상당히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자주 보입니다. 그러한 대표적 사례가 가수 최남용(崔南鏞, 1910∼1970)이 아닌가 합니다. 한번 유명가수로 고정된 분들의 이름은 줄곧 가요사에 등장하는데 최남용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 이토록 대중들의 기억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가수 최남용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1935년 10월 시인 김동환이 운영했던 당시의 인기대중잡지 '삼천리(三千里)'지가 실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이 동 순]시인 바이런(Byron, 1788∼1824)은 인간의 삶이 미소와 눈물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항시 넘실거리는 비극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삶을 지탱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의 경우 식민지와 분단의 가파른 시절을 통과해가면서 돌연한 비극성과 수시로 맞닥뜨리며 온통 넋을 놓은 채 무대책으로 견디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힘겨웠던 난세에도 미꾸라지처럼 힘든 정황을 벗어나 자신과 일가족의 이익만 챙기며 다른 사람들이야 어떤 고통
['국민가수, 트로트의 황제', '프로페셔날 대중연예인' 칭송을 받는 나훈아씨가 15년만에 KBS-TV 무대에 등장하여 우리국민들 삶에 에너지를 북돋아 주었다. 한편 짧은 시기이지만, '암울했던 일제식민지 시절' 대중의 마음을 치유했던 가수 이규남의 이야기를 싣는다=편집자 주] [칼럼니스트=이동순] 여러분께서는 '진주라 천리 길'이란 노래를 기억하시는지요? 낙엽이 뚝뚝 떨어져 땅바닥 이곳저곳에 굴러다니는 늦가을 무렵에 듣던 그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마치 칼로 도려내는 듯
[논객칼럼=이동순]한국가요사의 초창기에는 기생 출신들이 제법 많이 가요계로 진출했습니다. 그 까닭은 가수를 지망하는 사람을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딴따라, 풍각쟁이라며 천시하던 풍조로 가득했던 시절, 그 뉘라서 감히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나 꾸었을까요?그런데 1930년대 중반 경기도 부평의 어느 술집, 술상 앞에서 노랫가락을 특히 잘 부르는 작부(酌婦)가 있다는 소문이 서울 장안에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예나 제나 술꾼들은 재미난 술집을 찾아서 불원천리 더듬어 다니는 묘한 버릇이 있질 않습니까? 그 술꾼들로부터
[논객칼럼=이동순]겨울이 지나가고 대지에 따스한 봄기운이 감도는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노랫소리가 있습니다.'노들강변'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곡을 듣는 주변 환경이 낙동강이나 한강 주변이면 더욱 좋을 듯하고, 그 강가에는 물오른 버드나무가 파릇한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계절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요. 그냥 부르는 노래도 무방하지만 만약 장고 반주가 곁들여진다면 한결 이상적인 분위기라 하겠습니다. 노돌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나 볼가에
[논객칼럼=이동순]1지금으로부터 36년 전, 그러니까 1983년부터 나는 우리 민족의 영웅 홍범도장군을 테마로 서사시 작품 쓰기에 대한 결심을 하고 자료수집에 착수하였다. 이런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엄청난 난관이 많았으나 오로지 나의 조부 일괴공(一槐公) 이명균(李明均, 1863~1923) 선생의 유촉(遺囑)과 격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선조고(先祖考)께서는 1920년대 후반 경상도 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사건이었던 대한의용단 사건으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셨다. 그 과정에서 미결수로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났
[논객칼럼=이동순]제대로 기록된 역사가 없다면 우리는 그 시대의 실증적 정황에 대하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일본인이 만든 용어를 그대로 옮기기조차 역겨운 한일합방(경술국치, 1910) 이후의 경과에 대해선 각종 자료가 비교적 있는 편이나 그 직전인 20세기 초반 약 10년 동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자료가 없습니다.일제는 한반도를 그들의 식민지로 경략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가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논객칼럼=이동순]1. 대중음악인 탁성록오늘은 평범한 대중음악인의 삶을 살다가 아편중독을 거쳐 살인마로 변신했던 한 괴기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인류의 역사에서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불가해한 인간의 사례는 참 많고도 많겠지만, 진작 영혼과 인간성이 무참하게 망가져버린 탁성록(卓星祿, 1916~?)이라는 비루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새삼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와 숨 막히는 고통마저 느끼게 합니다. 역사는 그 건강성을 유지하도록 늘 관리해야만 합니다. 이를 망각하고 우리가 방심할 때 어떤 무서운 환
[논객칼럼=이동순] 동서고금의 음반이란 음반을 모조리 수집하던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와 이런저런 방담을 나누다가 문득 가수 황금심(黃琴心:1922~2001)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지요. 그런데 선배는 대뜸 “그녀는 한국의 마리아 칼라스였어!”라는 충격적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누린 프리마돈나 가수로 그야말로 오페라의 전설이었지요.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미국 뉴욕에서 태
[논객칼럼=이동순] ‘고려인 문학’ ‘고려인 문단’이라는 말은 실제로 성립될 수 있는가?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석해보기도 전에 답은 이미 단호하다. 말하자면 불가능인 것이다.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의 영역은 너무도 광대하다. 고려인들은 이 넓은 지역에 풀씨처럼 흩어져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비교적 고려인이 밀집해 살고 있는 곳이고, 그 밖의 지역에서 고려인 문학인들은 너무도 외롭고 적막하게 살아가고 있다. 창작하는 습관을 이어가고 있지만 발표할 데도 없고, 창작
[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여러분께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기억하시는지요? 그 영화의 주인공, 미남 배우 장동건과 원빈이 함께 엮어 갔습니다. 그 영화에서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절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배경음악도 함께 기억하시는지요?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라는 재미난 가사로 펼쳐지는 소녀풍의 간드러진 목소리는 바로 박향림(朴響林)이라는 1930년대의 인기가수였답니다. 그녀가 불렀던 '오빠는 풍각쟁이'란 당대의 히트곡이지요.오빠는 풍각쟁이야이 뭐 / 오빠는 심술
[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 한국의 근현대사는 지난 20세기를 거쳐 오며 엄청난 격동의 시기를 통과하였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그 후유증, 이념의 선택, 파괴적인 전쟁 등으로 대표되는 격동과 파란은 그 시기의 문화를 제작 생산하는 담당층들로 하여금 심신의 절대적 안정을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심신의 안정은커녕 절박한 생존의 기로에서 허덕여야만 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친일에 관한 논란, 분단시대의 이른바 매몰에 관한 논의 등이 줄곧 문화인들의 평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다음 한국의 문화인들은 이민족 통치
[논객칼럼=이동순] 김해송(金海松)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한국가요사에서 싱어송라이터, 즉 작곡과 노래를 함께 겸했던 특이한 사람이 이따금 나타나곤 했었는데, 이 김해송이란 분이 바로 그런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사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긴 문화인들은 그 나라 국민들 기억 속에 오래 오래 기억이 되며 사랑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는 식민지와 분단의 엄청난 격동과 혼란 속에서 험한 세월의 풍파에 그 존재가 망실되어버린 인물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김해송이란 이름이 여러분께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도 바로
[논객칼럼=이동순] 숲을 거닐 때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숲은 얼마나 쓸쓸할까요? 인간 세상에서 숲의 새소리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가수가 부르는 절절한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새소리가 있어서 숲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가수들의 좋은 노래가 있어서 세상살이의 고달픔은 한결 반감되고 위로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강탈당하고 갖은 유린을 겪던 시절, 입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때에 이난영이 불렀던 노래 한 곡은 우리 강토를 깊은 슬픔과 격동 속에 잠기도록 하
[논객칼럼=이동순] 우는 소리가 마치 피를 토하듯 처절한 느낌으로 들린다고 해서 자규(子規)란 이름으로 불리던 새가 있었지요. 자규는 두견새, 접동새란 이름으로도 불리던 소쩍새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옛 선비들은 멸망한 왕조의 슬픔을 이렇게 새 울음소리에 견주어 표현했던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근대 가수들 가운데서 두견새의 흐느낌처럼 거의 절규와 통곡에 가까운 음색으로 노래를 불렀던 가수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험난했던 시기인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온몸으로 역사의 눈보라를 고스란히 맞으며 그 고난의 시기
[논객칼럼=이동순] 한국가요사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가수들로서 나이 여든이 넘도록 장수한 인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현재 가장 오래 생존하고 계신 인물로는 1920년생으로 99세를 넘긴 작곡가 손석우 선생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2019년 봄, 98세로 작고한 작사가 유호 선생이 있네요. 2012년 봄에 타계한 작사가 반야월(진방남) 선생은 96세까지 사셨습니다. 작곡가 이병주 선생도 93세까지 사셨으니 장수를 누리신 분입니다. 여성가수로는 2006년에 94세로 세상을 떠난 가수 신카나리아(본명 申景女;1912∼20
[논객칼럼=이동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種瓜得瓜 種豆得豆)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특정한 재주를 남다르게 지닌 가문이나 혈통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가수 김안라(金安羅, 1914∼1974)의 가계를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김안라는 1914년 함경남도 원산의 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 중의 둘째로 출생했는데, 맏오빠는 초창기 가요계의 중진이었던 김용환(金龍煥, 1909∼1949), 바로 밑의 아우는 '눈물 젖은 두만강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언제나 오려나-'눈물 젖은 두만강' 1절이 노래는 가수 김정구(金貞九, 1916~1998)의 대표곡 '눈물 젖은 두만강'(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오케 12094)의 한 대목입니다. 젊은 가수 강산에(1963~ )가 불렀던 노래 ‘라구요’의 도입부가 바로 이 노래가사를 대뜸 활용한 작품인지라 더욱 친근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옛 노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