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올해 공무원 9급 응시자수는 22만명, 7급은 6만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공무원 시험은 비일반적인 사교육 시장을 만들었다. 공무원 기숙학원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생과 달리 외부 통제를 받지 않는 성인이 본인의 자제력만으로 공부에만 매진하기는 쉽지 않다. 공무원 기숙학원은 그 점을 포착했다. 기숙학원은 학생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해준다. 사소하게 낭비되는 시간까지 모두 통제해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 대가로 학생들은 비싼 학원비를 지불한다. 기숙학원은 시험이라는 목표에 최적화된 학생을 찍어내는 효율적인 공장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 기숙학원 열풍은 형평성 측면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낳았다.

지난해 8월 경기도의 한 기숙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대부분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불평해도 체제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자본주의는 노력한 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과 달리, 다른 스펙을 배제하고 시험점수로만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력만 평가받는 공무원 시험은 서민들에게 몇 안 남은 공정한 신분상승 사다리다.

그러나 기숙학원은 공무원 시험의 공정성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사교육의 정점인 기숙학원에는 기존 학원이나 과외와 명백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최근 인터넷 강의 활성화로 학생들이 받는 교육 격차는 크게 줄었다. 교육 평준화 시대에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노력이란, 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노력은 자제력, 인내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기존의 학원들 역시 학생들의 욕망을 제한하고자 자습실, 스터디 등의 관리를 두었지만 선택권은 학생들에게 있었다.

반면 기숙학원은 휴대전화, 인터넷 사용 금지, 이성 대화 금지 등 학생들이 지키기 어려운 규칙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학생들은 학원의 룰을 따르거나, 학원을 나가야 한다. 덕분에 기숙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자제력을 발휘하기 쉽다. 학원생들과 비 학원생들의 성적 차이는 학원 수업의 유무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격차는 그들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수험생 책상 한쪽에 “나는 할 수 있다”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포커스뉴스

문제는 기숙학원에 모든 학생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영등포 공무원 기숙학원의 학원비는 4개월에 약 560만원이다. 웬만한 대학교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 이 학원비는 중산층, 하류층 집안의 성인이 매달 지불하기에 부담되는 비용이다. 공무원 시험과 같은 전문직업 시험은 하류층과 상류층이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는, 몇 안 되는 계층이동 사다리다. 하지만 기숙학원은 학원생과 비 학원생과의 차이를 명백하게 가른다. 기숙학원생과 비 기숙학원생의 공부 환경은 학교 재학생과 자퇴생만큼이나 다르다.

우리는 이미 재산, 지역, 인종 등 환경적인 요소가 노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지난 ‘사법고시 존폐’ 논란에서 보듯이, 대중들은 전문직업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공무원 기숙학원생과 기숙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 간 격차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상품화에 길들여진 사회는 돈을 더 지불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입시에서 겪는 극심한 온도 차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입 기숙학원, 공무원 시험 기숙학원을 넘어 이제는 의전원 기숙학원과 토익 기숙학원까지 급증하고 있다. 정치인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입을 모아 대입에서 사교육을 규제하고 공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사교육이 판을 치고 공교육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공무원 입시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제도적인 해결책들로 사교육 시장을 잡기란 요원하다. 수요가 있는 한 사교육은 어느 분야에서도 형태를 바꿔 나타날 수 있다. 제도적 규제가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사교육비가 부족해서 사교육에 반대한다는 생각으로는 부족하다.

전문직업 시험 준비생들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계층이동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멈춰 서서 의문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보상의 필요조건으로 노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부합하는 ‘시험’을 옹호한다. 하지만 학원 수업을 넘어, 생활 태도까지 돈에 의해 결정된다면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이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우리의 공정함에 간섭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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