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공무원시험 열풍, 무한 스펙 경쟁과 같은 사회현상부터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라는 신조어의 탄생까지 다양한 목소리의 진원지는 고용불안이다. 고용시장 침체는 그간 무수한 신문 지면을 통해 누누이 언급되며 시급한 의제로 떠올랐다. 청·장년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고용 불안의 원인을 짚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움직임 속에도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고령자, 결혼이주여성, 장애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의욕이 있음에도 고령이거나, 문화가 다르거나, 신체적 불편함이 있다는 이유로 고용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근로사각지대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부산시 동래구를 찾은 관광객들이 ‘이야기 할배·할매와 함께하는 기장포구길 체험’을 하고 있다. ©부산관광공사

그렇다고 이들을 단순히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은 구태의 행정이다. 이젠 그들만이 가진 특수성을 살려 특화된 일자리 사업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쁘게도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사례가 몇 건 있다. 추진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일부 지자체와 사회적 기업에서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부산시는 흰여울마을, 국제시장과 같은 관광명소에서 2인1조의 노년 스토리텔러 ‘이야기 할배·할매’ 사업을 운영 중이다. 고령자가 실제로 겪은 역사적 경험과 사실의 실감나는 전달을 일자리 사업의 재료로 변모시킨 것이다. 부산시가 갖춘 자연환경과 더불어 근현대사가 담긴 곳곳의 명소에 스토리텔러가 배치된다. 한 사람은 관광지와 역사의 설명을, 다른 사람은 인원 관리를 맡아 2~3시간 가량 관광객들과 함께 동행한다. 사투리가 섞여 다소 투박하더라도 정감 가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여느 가이드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고령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밀려난 이들을 지자체 차원에서 관광사업의 중심으로 재진입시킨 긍정적인 사례다. 전국 팔도에 관광명소 없는 곳은 없다. 다른 지자체도 부산시 사례를 벤치마킹한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고용시장에서 고령 차별도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지자체의 장애인 고용 지원도 눈길을 끈다. 경기도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해 커피전문점 ‘나는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인 ‘장애청년 꿈을 잡고’에서 그 관리를 맡고 있는데 최근 도의회에서 나온 제안으로 또 다른 사회적기업인 ‘서로좋은가게’와의 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인력 및 생산품 공급 지원이 상호간에 이루어졌고 업무협약을 통한 성과가 단일 사업추진보다 더 클 것으로 관측됐다.

지자체와 사회적 기업은 큰 틀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전담부서를 마련해 관내 사회적기업 현황을 정리한 일종의 풀(Pool)을 형성, 지속 관리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난해 11월 충북 영동군청 내 ‘꿈앤카페-레인보우카페’에서 근무 중인 장애인 바리스타 장현주(왼쪽)씨가 직업훈련교사 김현정 씨로부터 서비스 요령을 지도받고 있다. ©영동군

결혼이주여성의 고용 촉진정책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안동시는 결혼이주여성의 특수성을 살린 시책으로 계명대 교육대학원과의 양해각서 체결하고 다문화교육전문가 양성과정을 개설했다. 이주여성들은 수준 높은 수업과 현장견학 및 실습을 통해 다문화전문가로 거듭난다. 교육과정을 마친 수료생들은 관내 유치원 및 학교로 배치돼 국가별 문화 차이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주여성들이 더 이상 학생의 위치에만 있지 않고 직접 가르치는 자리에 나섬으로써 청소년의 다문화 이해를 돕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은 한국인과 다문화자녀 사이에 이해를 돕고 차별 해소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주여성들이 복지의 일환으로 일자리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자신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임받는 것이다.

근로의 의무는 4대 의무 중 하나다. 우리는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 일할 수 없는 여건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지자체와 사회적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재정비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과 근로사각지대를 줄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