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함성과 아우성~
아우성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난리 부르스? 아! 우리의 성(性)?
유치환의 시, ‘깃발’이 떠오르는 이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중략)’

아우성은 아우+성(소리 聲).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려 지르는 소리’가 사전적 풀이죠.

한참 전 여성인사 구모씨가 ‘아~ 우리의 성!’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아우성이란 단어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만, 사전적 풀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우성이란 표현은 유치환 시인의 깃발에 등장한 뒤 많이 쓰여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주 쓰였을뿐 ‘아우’에 대해 설득력 있는 말뿌리 분석은 별로 없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유관순 열사의 독립만세 운동으로 가볼까요?

3.1운동이 일어나고 딱 한달 뒤인 1919년 4월1일(음력 3월1일) 유관순 열사는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칩니다. 병천 목천 천안 안성 진천 청주 등지에서 온 백성들과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이화학당에 다니던 열사는 독립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야 한다고 보고 3.1운동 직후 고향(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으로 내려가 다시 거사(음력기준 3.1운동)를 도모합니다. 아우내 만세운동에 참가한 인원만 3000여명. 당시의 인구밀도로 보면 엄청난 인파입니다.

아우내 장터의 태극기 물결과 지축을 흔드는 만세소리에 놀란 일본헌병들이 무자비하게 발포, 장터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해 19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열사는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이 거대한 함성이 울려퍼진 장터는 백전천과 갈전천의 두 물길이 아우러진다해서 ‘아우내장터’로 불리우다 한자 ‘아우를 병(竝)’ ‘내 천(川)’을 써 지금의 병천이 된 곳입니다.

동이는 아우내장터에서 울려퍼진 거대한 만세소리인 ‘아우내 함성’이 아우내성 > 아우성이 된 게 아닌가 봅니다. 아우내가 ‘아우르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어 이래저래 안성맞춤이지 싶습니다.

시인 유치환이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시어를 만들면서 유관순 열사가 이끈 아우내장터의 깃발(태극기)과 함성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그의 활동시기(1908년 7월14일~1967년 2월13일)로 미뤄 견강부회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건이 우리말이 된 사례가 없지 않습니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사보호조약(1905년)이 계기가 된 말이다.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을 을사년(乙巳年)스럽다고 했는데, 이것이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국어어원연구/서정범)

유관순 열사가 일제에 항거해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친지 어언 100년, 그러나 일제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일본 수상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소녀상 철거 요구, 역사 왜곡, 자위대 무력강화 같은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이 그것입니다.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부른’ 유관순 열사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아우내 장터 옆(병천면 탑원리) 고즈넉한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열사 기념관과 생가에는 요즘도 주말이면 참배객이 이어집니다.

열사의 기념관과 생가를 한번 둘러보고 아우내장터에서 국밥(병천순대국) 한그릇 맛보는 것도 이즈음 기억에 남을만한 역사기행이 될 것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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