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영의 창(窓)]

휴학하고 오랜만에 대학교에 들렀다. 학교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고향에서 보내고 대학 기숙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날 밤 느꼈던 낯설음이 생각났다. 돌아보면 스무 살 이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짧은 기간 동안 새로운 인연과 새 장소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제 인턴 생활을 하며 또래보다 늦은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직장에 들어와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다 보니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은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고보면 관계맺기에 있어 함께 머무르는 공간은 참 중요하다. 그동안 나의 우정은 공간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 됐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학교가 달라진 친구들과 소원해졌다. 심지어 학년이 올라가 반만 달라져도 이전 반 친구들과 예전처럼 지내지 못했다. 씁쓸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은 늘 새로운 장소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며, 그들에게 마음 쏟는 게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그러고보면 매번 환경에 따라 인간관계가 달라졌다. 매일 야자를 같이 도망가고 미래를 함께 걱정하던 고등학교 동창들은 반년에 한 번 보기가 어려워졌다. 대학교 남자 동기들도 대부분 군대, 교환학생, 휴학, 취업준비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뭄에 콩나듯 만나는 사이가 됐다. 동창들이 있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새 직장은 대학교에서도 먼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친구들과 나의 공간은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하지만 요즘들어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1년에 한 두번 만나거나, 카톡만 주고받는 사이일지라도 그들과 나 사이의 우정이 변함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생각이 바뀐 뚜렷한 계기는 없다. 멀리 있는 친구라도 마음에 품을 수 있을 만큼 내 시야가 넓어진 탓인지, 아니면 삶이 복잡해져 새로운 사람을 사귈 여유가 없어진 탓인지. 어쩌면 카카오톡과 SNS라는 현대 문물의 발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의 관계가 공간에 좌우됐다면 이젠 그보다 추억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바쁜 일상은 오히려 나를 추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즐거웠던 기억, 가끔씩 봐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친구들, 사소한 것에 함께 울고 웃던 순수했던 기억들. 지금 내 휴대폰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남아있다.

물론 이런 관계가 평생 유지되진 않을 것이다. 좋은 관계가 지속되려면 서로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잠깐 타오르고 꺼져버리는 화톳불같은 우정이 아닌 은은한 열을 내뿜는 숯처럼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나에게 소중하며 꾸준히 신경써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오피니언타임스=오승영]

 오승영

경희대학교 재학 중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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