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린의 작은 음악상자]

인도의 시인, 사상가 타고르 ©픽사베이

인도의 위대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타고르는, 우리에게 ‘동방의 등불’과 ‘기탄잘리’로 잘 알려져 있다. 동방의 등불은 일제강점기 중 그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시이다. 조국인 인도의 영국 식민지화 상황을 대한제국의 일본 식민지화에 투영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수탈이 악랄했던 1920년대 문화통치기에 발표되어 한민족을 감동시키고 독립의 희망을 갖게 했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종교시다. 그의 미학 세계와 종교적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 ‘동방의 등불’

우리가 집중할 것은 ‘기탄잘리’이다. 기탄잘리는 백 개 이상의 시들이 모여 한 권을 이루는 방대한 양의 작품이며,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갈어로 쓰여 나중에 타고르 본인에 의해 영어로 번역됐다. ‘신에게 바치는 송가(기탄잘리, 벵갈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에게의 감사, 삶의 기쁨, 찬양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에서도 제 69번째 시, ‘Stream of life(삶의 조류)’는 쓰여진 후 몇십년이 지난 오늘날, 음악으로 재해석되어 전 세계에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의 Pandemic Studios(판데믹 스튜디오)에서 게임 제작자로 근무하던 Matthew Harding(매튜 하딩)은 ‘Destroy All Humans!(디스트로이 올 휴먼즈, 인간을 몰살해라!)’라는 새로운 게임의 개발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학살하는 게임을 제작하는 데 자신의 2년을 썼다는 것을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게임 회사에서 퇴사한 후 세계 일주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여행을 동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게시했는데, 배경 음악으로 미국의 작곡가 ‘Garry Schyman(게리 슈먼)’이 타고르의 ‘삶의 조류’를 각색하여 만든 ‘Praan(프라안, 삶)’을 삽입했다.

미국의 게임제작자 매튜 하딩이 세계여행을 하며 만든 유튜브 영상. 배경음악으로 타고르의 ‘삶의 조류’를 각색해 만든 ‘Praan(프라안, 삶)’을 삽입했다. 타고르가 빚은 삶의 찬가는 유난히 괴로운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더욱 감동적으로 들린다. 사진을 누르면 영상으로 연결됩니다. ©유튜브

매튜 하딩의 동영상은 2008년에 ‘Where the heck is matt?(도대체 맷은 어디에 있지?)’라는 이름으로 게시됐고, 순식간에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세계 각국의 특정 장소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매튜의 모습이 나올 뿐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매튜의 비디오에 열광했다. 화려하고 유명한 도시들은 물론, 광활한 자연 풍경이나 낙후된 지역의 마을에서도 똑같이 밝은 미소로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로운 사막에서 혼자 춤을 추기도 하고,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때로는 동물들과 춤을 추기도 했고, 수십 명의 사람들과 무리 지어 춤을 추기도 했다. 장소가 어디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마치 생명이 살고 있는 곳은 어디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삽입곡 ‘프라안’도 덩달아 사람들이 즐겨 듣게 되었다. 심지어 이 음악은 동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웹툰 중 하나인 ‘블랙 마리아’는 외계인과 지구인 경찰이 지구에서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명랑 만화이다. 블랙 마리아 제 5번째 에피소드, ‘Be my baby(비 마이 베이비)’ 1화에서는 외행성인 리셉션이 열리는 자리에서 토성인 가수들이 나와 ‘프라안’을 부른다. 작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굳이 ‘프라안’을 골라 만화 안에 삽입했다는 것은 이 노래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 행성 사람들끼리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는 노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벵갈어로 쓰여진 ‘Praan’ 가사 원문과 영어 및 한국어 해석 ©김채린

실제로 벵갈어로 가사가 붙여졌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듣는 이는 얼마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음악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호소력 짙은 가수 ‘Palbasha Siddique(팔바샤 시디크)’의 목소리도, 희망찬 멜로디의 반주도, 마치 음악은 언어의 장벽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듣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전달된다. 또 다른 요소는 아마 가사에서 나오는 생명의 아우라일 것이다. 타고르의 문장은 유독 신성하고 경건하다. 마치 성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가사에는 우리가 언어를 몰라도 느낄 수 있는 밝은 아우라가 가득하다. 마치 ‘블랙 마리아’에서 행성을 뛰어 넘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듯이, 그리고 매튜의 비디오를 본 우리가 전율을 느꼈듯이.

우리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감사하는 법, 삶을 소중히 하는 법을 잊었다. 더 많이 바라고 더 많이 좌절하며 삶을 도중에 끊어 버리기도 한다. 그건 우리의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시간과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매튜의 비디오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준 문이 되었고, 게리 슈만의 멜로디는 감정을 동요시키는 매개체가, 타고르의 가사는 삶의 사소하고 쓰라린 부분에도 감사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메시지가 되었다. 유난히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가, ‘프라안’의 가사처럼 ‘기쁨으로 폭풍을 헤쳐 나가’ ‘선율에 춤출’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김채린

 노래 속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숨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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