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운명이나 인연은 믿지 않지만 낭만은 믿는다. 그런 낭만에 부응하듯 예비신부와 나의 생일은 10월 21일로 같다. 마침 올해 그날이 토요일이라 아예 결혼기념일로 정해버렸다. 이번 대선에선 볼 수 없었던 단일화가 우리 두 사람의 기념일 달력에서 시원하게 이뤄졌다. 그날 하루의 의미는 세 배로 깊어지고, 앞으로 들 기념비용의 지출은 삼분의 일이 되었으니 이 낭만의 선택이 백년해로의 가능성에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리라 믿어본다.

우리는 과감히 결혼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가족, 친지만 불러놓고 하는 작은 결혼식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의미한 소모가 싫어서였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 고민 심지어 다툼조차 아까웠다. 다툼도 결국 부부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감정의 교류인 만큼 고작 30분짜리 행사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더욱이 금쪽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달려와 줄 고마운 인연들에게 잘 살겠노라 하는 단 한 번의 형식적인 맹세보다 진행형의 ‘잉꼬니즘’을 오래오래 보여주는 것이 더 진실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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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다른 이들의 결혼식에 여러 차례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수군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화두는 늘 하나였다.
“여기는 밥 잘 나오나?”

식사에 더 관심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와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이들이지만 그들의 발을 움직인 메커니즘의 민낯은 사실 질기고 질긴 한국식 연(緣)에 있다. 가깝지 않아도 꼭 얼굴 도장은 찍어야 한다는 요란한 규범 탓에 마음은 딴 데 가고 몸만 온 하객들이 식이 진행되는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영화 예매를 하고 바삐 카톡을 해대는 진풍경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번지수 잘못 찾은 하객과 누군지 몰라도 일단 인사하고 보는 신랑이 열렬히 악수를 나누는 촌극도 다반사다. 왜 이래야 할까? 진실된 축하를 받고 싶던 혼가(婚家)와 편안한 주말을 원했던 하객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불필요하게 소모되고 있다.

유별난 결혼문화도 문제다. 한국은 살포에 가까운 청첩장 배포를 해서 무제한으로 하객을 받지만 일본의 경우 참석 여부를 묻는 회신용 초대장을 보내어 꼭 참석하겠다는 인원만 받아 식장을 꾸민다. 받으면 가야 한다는 압박과 공식이 일본엔 없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신부보다 꾸민 채로 가면 민폐로 여기지만 일본은 하객을 결혼식을 빛내는 한 사람으로 여겨 화려하게 꾸미고 가는 것이 예의로 받아들여진다. 하객에게 동등의 존중을 표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하객이란 애초에 주인공이 정해져 있는 곳에 들러리로 서는 것이 당연시되는 을의 참석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차츰 시대가 변하면서 작은 결혼문화가 발전해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뭇 연예인들의 검소한 결혼식이 연일 이어지고 아예 스몰웨딩 전문업체까지 생겨나면서 스몰웨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 탓에 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결심하기 전, 나 또한 작은 결혼식을 고려해 보기도 했다.

보통의 예식장은 최소 100명~200명이 기본 수용인원으로 그만큼의 식대를 지불해야 예약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작은 결혼을 표방한 한 업체가 제시한 기본인원은 50명가량이었다. 단순히 인원 규모만 보면 작아진 것이 맞았다. 대신 그만큼 1인당 식대 비용이 크게 오르고, 여러 부대비용이 추가로 발생되도록 계약하는 조건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작음의 의미는 다소 달랐다.

단순히 사람 수만 줄어들고 규모가 작아지는 것은 스몰웨딩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결론과 함께 나는 스몰웨딩의 의미는 내가 진실로 하고픈 결혼, 우리가 행복한 결혼이라고 못을 박은 후 미련 없이 식을 버렸다. 덕분에 심적, 물적 부담이 줄었고 아낀 돈과 시간으로 차근차근 미래를 그리고 있다. 30분이 아닌 30+ɑ년을 그리는 일은 가히 뜨겁고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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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욕심내서 작음의 미학을 폭넓게 쓰려 한다. 예식만이 아니라 모든 인척과의 관계도 날씬해질 필요가 있다. 부르는 호칭조차 생소하고, 한 손의 손가락으로 촌수를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의 작은 생활사와 경조사까지 챙기는 일은 호들갑과 유난의 협연이자 좀 더 비약하자면 당신들 자식에 대한 월권일 수도 있다.

나의 배우자가 평소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불편한 자리에 의무적으로 앉게 되는 일이 싫어 미리 부모님께 “친척들 작은 일들까진 못 챙겨요”라고 선전포고를 해 놓았다. 반대로 예비신부에겐 나 또한 먼 인척과는 필요 이상의 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예비 처가가 워낙 대가족이고 끈끈한 탓에 다소 섭섭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나의 결혼관을 찬찬히 설명하자 이해와 존중으로 답해주었다.

표면은 지독한 실용주의로 보일지언정 내면은 두 사람의 울타리를 견고히 하려는 예비 가장의 첫걸음이다. 우선은 둘을 먼저, 아니 때로는 대책 없이 다소 무책임할 정도로라도 둘만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 온전한 둘의 삶을 지키는 것이 배우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좋은 결혼의 시작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모든 관계로부터, 심지어 핏줄로부터도 침범될 수 없는 ‘둘의 작은 공간’을 일구어 내는 일이 진정한 스몰웨딩의 실현이다.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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