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작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름이 또 찾아왔으니 내가 이곳에서 일한지 일 년이 넘었다. 면접에 덜컥 붙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던 스무 살의 내가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웃기도 많이 웃었고, 서러워 운적도 있었다.

나의 첫 정식 아르바이트였다. 사실 일일 알바와 같은 단기 근무는 이전에도 종종 해본 적이 있었지만, 계약서를 쓰고 정식 파트타이머로서 고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첫 근무날, 명찰을 받고서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명찰에 박힌 이름 세 글자는 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작게나마 무엇을 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이리라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여러모로 의미가 큰 역할이었다.

©픽사베이

매장은 생동감 그 자체이다. 매장을 찾아온 손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다. 그들은 신난, 약간은 설레는 표정을 하고 있다. 어린 손님은 방방 날뛰며 함께 온 어른의 옷가지를 길게 늘어트린다. 열심히 재잘거리며 아이스크림 유리에 그 작은 손가락을 뻗어댄다. 성인 손님은 꽤나 점잖은 표정이다. 그래도 나는 체면이라는 가면 속에 숨은 설렘과 같이 소소한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다. 길게 늘어진 대기 줄 속에서 손님을 응대하느라 내 볼은 발갛게 달아오르는데, 이것도 꽤나 마음에 든다.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의미있게 느껴진다.

매장 테이블 일곱개가 가득 차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묻혀버리고 손님들 제 각각이 내는 고조된 목소리가 이를 대신한다.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말하지만 웅성이고 재잘이는 그 살아있는 소리는 꽤나 아름답게 들린다. 내가 손님에게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하고 아이스크림을 건네면 그들도 ‘감사합니다, 고생하시네요, 힘내세요.’하고 소소한 선물 같은 말들을 건네고 간다. 말의 힘을 알고 나서부터, 나도 식당이나 어디에 가면 꼭 '감사합니다.'하고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을 전하고 온다.

울었던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일년 중에서 제일 바쁜 때는 해가 바뀌는 연말인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사러 온다. 바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아르바이트생이 모두 모여도 일손이 부족하기에 나 역시 크리스마스에도, 12월의 마지막 날에도 근무를 했다. 매년 가족과 다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제야의 종을 보며 새해를 카운트했었는데 이번 새해는 나 혼자였다. 그것마저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의식할 새 없이 맞이해버렸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걷고 있는데, 지나오는 술집이나 가게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신없이 보낸 하루와 오분만에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은 피자조각이 생각났다.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고, 새벽바람은 너무 추웠다.

또 다른 하나는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중년 남성이 왔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내가 포스기를 두드리는 내내 그는 실실 웃으며 두 눈으로 나를 열심히 훑었다. 그 노골적인 눈빛에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내 외모를 칭찬하며 나이나 학교 따위를 물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자 ‘이것 가지고 왜 그래.’하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내 시급을 물었고, 자신과 자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중년 남성의 벌건 볼과 두 눈과 입이 미웠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을 푸는 내내 손이 덜덜 떨렸다. 사장님은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단호하지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다. 돈 벌려면 이 정도는 모른 척, 능청스레 웃으며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 거였다.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다. 일 년 내내 동상으로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울타리 안에 있을 적에 사회는 정말 차갑고 쓰다고,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당신들이 보석을 찾지 못한 거라고, 내가 찾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현실은 정말 딱 그만큼이었다. 대신에 나름대로 찾아낸 것이 있다.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빛나는 큐빅일까. 그래도 이것 또한 빛나기에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믿고 싶다.

나는 지금 사회와 타협점에 서 있다. 이 속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면서도 얻어낸 전리품이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손님 응대가 점점 자연스러워진다던가, 신입 아르바이트생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 한층 성장했음을 느낀다. 여전히 작년과 똑같은 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또한 좋은 사장님, 아르바이트생 동기들, 손님들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