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엄마는 식물을 참 좋아한다. 꽃은 금방 죽어버려서 싫고 화초가 좋단다.어릴 땐 이해할 수 없었다. 푸르죽죽하니 멋없는 것들이 집을 온통 차지한 채 있는걸 보자니 답답했다. 엄마는 즐거움도 주지 않는 저것들을 위해 분갈이를 하고, 햇살이 예쁘게 스며드는 날에는 그 무거운 것을 기어코 창가에 옮겨두고 흙에 물을 채웠다.어느 날 내 손바닥을 채 넘지 않던 것들이 꽤 큰 화분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훌쩍 커 버린 것을 보니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 아래에서 커간 것은 나와 내 동생뿐이 아니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지난달 홍콩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여행 가기 직전에 바꾼 터라 이주도 안 된 것이었다. 누군가가 훔쳐 간 것임이 유력했다. 화가 났다. 나는 허전한 마음을 끌어안고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곧바로 유심을 새로 발급받으러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괜한 오기가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핸드폰 없이 한번 지내보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핸드폰을 갖게 된 이래로 처음이었다.수년간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것이 없으니 온통 불편함 뿐이었다. 어딘가 모르는 장소에 가려면 전날 저녁에 가는 법을 찾아 다이어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 당시 한 달 용돈은 교통비를 제외하면 약 이만원 정도였다. 그런 내게 고양이 사료는 너무 비쌌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종이컵에 가득 담아 튀김가루까지 얹어주던 오백 원짜리 컵떡볶이를 수십 번 참고 지나치고,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몰래 까먹는 재미도 포기해가며 한 달 용돈을 꼬박 모아야 가장 싸고 양이 많은 포대사료를 살 수 있었다.그렇다고 동네 길고양이들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간식을 참으면 되지만 쟤들은 밥을 못 먹는 거잖아,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서울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지역주민과 장애인 학부모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5일 열린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지역주민들에게 특수학교 설립 찬성을 호소하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여론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이기주의와 님비(NIMBY)현상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설립 반대 주민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원인제공자는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구 을)이다.김성태 의원은 과거 총선을 앞두고 ‘강서 르네상스’ 공약을 통해 특수학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꽃 키우는 법에 대한 서적이 있다. 책에 적혀있는 대로 적정 규격의 화분에 씨앗을 심고, 일정한 양의 물을 정해진 주기에 따라 공급하고 온도를 맞춰주면 꽃이 잘 자라날까. 정해진 형식에 맞춰 모든 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씨앗이 반드시 완연한 한 송이 꽃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손톱보다 작은 꽃에도 제각각 고유한 성질이 있다.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과는 다르게 그 씨앗 하나를 위해 물의 양과 횟수, 햇빛의 쐬기를 조절해주는 세심함이 없다면 금방 시들거나 죽어버리는 것도
작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름이 또 찾아왔으니 내가 이곳에서 일한지 일 년이 넘었다. 면접에 덜컥 붙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던 스무 살의 내가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웃기도 많이 웃었고, 서러워 운적도 있었다.나의 첫 정식 아르바이트였다. 사실 일일 알바와 같은 단기 근무는 이전에도 종종 해본 적이 있었지만, 계약서를 쓰고 정식 파트타이머로서 고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첫 근무날, 명찰을 받고서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명찰에 박힌 이름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서로를 알기 위해 흔히 직장이나 학교, 학과 따위를 묻곤 한다. 어느날 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자 “와~ 봉사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라고 누군가가 말을 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익숙한 데자뷰였다. 이따금 내가 사회복지학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착하거나 희생적이라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학과 친구는 예전에 알바를 했을 때 겪었던 불편한 경험을 털어놨다. 당시 사장은 정시 퇴근하려는 친구를 붙잡고 매일 십분~이십분씩 일을 더 시켰다. 보수
짐 정리를 하다 벽장 속에서 빛바랜 노트 뭉치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시절 쓴 일기장이었다. 엄마는 참으로 꼼꼼한 분이었다. 유년의 기록들을 쉬이 버리지 못하고, 내가 나중에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모아둔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학교에 일기를 써 가는지 모르겠다. 나 때는 반 아이들 모두가 일기를 썼다. 일기장 페이지마다 담임선생님이 찍어준 도장이 남아있었다.또박또박 큼직한 글씨체에 담긴 사연을 읽고 있자니 어린 내가 눈앞에 서있었다. 나는 내가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잃은 것도 있었다. 바람에 개미가 날아갈까 걱정하는
윤성희 작가의 단편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보물을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난 ‘나’와 Q, W, 여고생에 얽힌 이야기다.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도 속 보물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실패한 채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도 그들의 내면에 피는 꽃은 아름답다. 그들은 정녕 보물찾기에 실패한 걸까.주인공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운동을 한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산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국에 그들은 너무나 여유롭다. 오히려 보물찾기 필수품인 삽을 여정 도중 버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어렵
‘나 수강신청 망했어.’휴대폰으로 날아온 친구들의 문자 메시지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피시방으로 수강신청 전투에 나간 친구들은 패전병이 되어 돌아왔다. 안타까운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언가 위로할 수도, 위로해 줄 말도 없었다. 괜찮다고, 다음 학기 수강신청은 잘하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무책임했다. 나는 이들이 망친 이번 학기 시간표를 책임져 줄 수 없었다. 게다가 나 역시 수강신청에 실패한 상태였다. 수강신청을 해 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전
요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독 이삿짐센터 차량들을 많이 마주친다. 아파트 복도나 집 현관문에는 이사센터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크기의 전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겨울이라 썰렁하다고 애써 넘기기엔 이곳의 시간은 너무 쓸쓸하다.그만큼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하나둘 떠나고 있다는 뜻이고, 정말로 이 낡은 아파트가 허물어진다는 뜻일 테다. 왜인지 더디게 가는 이곳의 시간은 사라지고, 여느 곳들처럼 빠르고 바쁜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결국 이곳의 모두가 떠날 것이고, 아파트 뼈대를 이루는 굵은 철근마저 무너져 이곳의 시간은 찾을 수 없게
부모들은 모두 ‘내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에 극성이다. 서점에는 입시나 아이 공부에 관한 책들이 제일 좋은 책꽂이를 차지했으며,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초단기 속성학원, 예비 중·고등반, 방학특강, 1등급 만들기, 스타 특강 강사…’ 따위의 학원이나 과외 홍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사교육 참여율과 서울 지역의 사교육 참여율은 각각 68.6%, 74.3%라고 한다. 이처럼 학생 10명 중 7명은 학교 정규교육 외에도 사교육을 받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왕국
1. 열아홉의 동의어는 ‘고3’이다. 아침 일곱 시 수업부터 저녁 열한시에 끝나는 야간자율학습까지. 나에게는 지켜야 할 책상과 의자 한 쌍이 있었고, 감옥보다 작은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책상 한구석에 붙어있는 시간표에 맞춰 흘러가는 밋밋하고도 똑같은 일상.성인이라는 단어를 동경했다. 성인.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뜻이 정확하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열아홉의 나에게 그 의미도 어감도 완벽해 보였다. 마치 ‘미성숙’이라는 것과 멀고 대비되는, 완연(完然)한 의미로 들렸다.그렇게 나는 열아홉의 겨울을 지나 스무 살의 봄을 맞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약 16년을 교육받고 공부한다. 이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 끝에 ‘청년’이 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그런 꿈과 희망은 없다.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청년 실업률은 12.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는 일용직이나 임시직도 취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단 한 시간만 일했더라도 실업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현역군인이나 사회복무 요원과 같은 비경제활동인구도 통계에서 제외했고, 니트족(일도 하지 않고 일할 준비도 하지 않는 사람, NE
올해 6월 성 소수자들의 ‘퀴어축제’가 많은 논란 혹은 지지 속에서 열렸다. 최근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평등과 인권존중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비롯한 많은 성 소수자들을 존중하자는 의견을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회이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축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매년 여름에 열리는 한국 최대 성 소수자 축제로 올해는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퀴어축제 참여자들은 파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