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안의 동행]

[오피니언타임스=최선희] 옛날 우리 집 비디오테이프 장식장 안에는 ‘80년 광주 민주화항쟁 운동 실황’이라는 라벨이 붙은 테이프가 있었다. 어느 날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그 테이프를 꺼내 재생버튼을 눌렀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또 이런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도로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도로에 사람이 가득 차 있던 기억.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최루탄 냄새에 코가 간지러웠다. 그러면 ‘어?! 또 데모하는 구나’하며 거리로 나선다.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자욱해 눈과 코를 자극한다.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 매운 연기. 그 맵고 독한 연기에 민주주의는 가려져 있었다. 도로 위에는 둘로 편이 나눠진 집단이 대치했다. 한 편은 경찰이고, 다른 한 편은 학생이었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경찰도 좋은 사람이고 학생도 그냥 공부하는 좋은 사람인데 왜 싸우지?’어른들은 말했다. ‘최루탄 연기 때문에 우리 모두 이상해지고 말거야.’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어느 날 나는 열병을 앓았다. 아픈 나를 조급한 마음으로 안은 엄마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택시를 잡았지만 승차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기사아저씨는 겁에 질려 화를 내며 말했다. “미쳤어요? 내가 데모하는 동네에 가게?”

대학가인 우리 동네는 ‘데모하는 동네’였다. 주 3~4회는 학생운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으며 나는 평생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조금씩 어른들의 말을 엿들으며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하게 된다면 여자인 나는 격문을 뿌려야 하나.’

대학생들은 우리 집 앞에 최루탄 상자를 숨겨두고는 했다. 그때의 나에게 ‘대학생󰡑이란, 공부를 하며 더러는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민주화 항쟁에 참여한 이유로 범죄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싸웠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불행한가. 그렇게 꿈꾸던 민주주의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왜 종종 부끄러운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이따금 무국적자 혹은 이방인과 같다고 느끼게 된다. 미완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대치 중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불편한 장면을 살펴보자. 한국전쟁에 참전해 숨진 군인과 경찰 자녀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수당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10배 넘게 차이가 나 논란이 일었다. 국가보훈처는 “모친의 사망시점에 따라 차등을 둔 것”이라면서도 “문제제기에는 공감한다”며 해결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지원법을 개정하며 지난 1998년부터 ‘6․25 전몰군경자녀수당’을 신설했다. 이전까지 사망한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보훈 급여는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에게만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6.25 희생자에게 국가 예우를 갖추는 차원에서 유가족 나이와 상관없이 매월 지급돼는 수당을 신설한 것이다. 문제는 기존 보상금을 받던 모친의 사망시점에 따라 수당의 차등을 뒀다는 점이다. 98년 이전에 모친이 사망한 자녀에게는 약 100만원의 수당을 매월 지급하고, 98년 1월 1일 이후 모친이 사망한 자녀에게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단지 모친의 사망 시점이 다를 뿐인데 법 제정 시점을 기준으로 1만2300여명에 이르는 전몰군경 자녀들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후 유자녀회의 지속적인 주장에 국회가 응답해 지난 2015년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따라서 모친이 98년 이후에 숨진 유자녀들도 지난해 7월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98년 이후 모친이 사망한 경우 수당이 한 달에 11만원4000원에 불과하다. 반면 98년 이전에 모친이 사망한 자녀들은 10배가 넘는 120만원 가량을 매달 받고 있다. 불합리하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들이 이유도 없이 여전히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픽사베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 한국전쟁, 현충일, 6․29 제2연평해전이 모두 일어난 6월을 기억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시기다. 정부는 국민의 호국·보훈의식 및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각종 정부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6월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11일~20일)’,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 21일~30일)’으로 나누어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보훈행사를 추진한다. 

이는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추모와 감사, 화합과 단결과 같은 단어도 왠지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현충일에 조기를 계양한 집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고, 지치고 힘든 일상 속 현충일은 그저 쉬거나 놀러 나가는 휴일이 되어버렸다.

6월,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오직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꿈꾸던 세상은 지난밤의 꿈인 걸까. 그래서 눈을 뜨면 현실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그러하여 눈을 감고 외면하고 마는 것일까.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부터 달라지자’라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주변 사람들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입을 막으려 하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 완전무장한 자본주의와 사람들이 외면하는 민주주의 역사 앞에서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은 누가 기억해줄까. 

 최선희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