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요 며칠 장마철 호우가 계속됐습니다. 가뭄 끝 비임에도 언제 가뭄걱정했냐? 싶습니다. 변해버린 날씨 만큼이나 마음도 변덕스럽게 바뀝니다. 제발 비 좀 와라~했던 ‘기우제 심산’이 이젠 그만 내렸으면~ 하는 ‘지우제 생각’이 돼버렸으니까요.

장마는 옛말로 오란비(오래 내리는 비). 장(長)+마(雨밑에 林)를 풀어쓰면 ‘긴 비’가 되니 조상들이 오랜비>오란비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마의 장은 오래란 뜻의 장(長)이다. 마는 물이란 뜻으로 맏>말>마로 진화됐다.(국어어원연구/서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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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마’로도 변하지만 ‘무’ ‘므’ ‘미’로도 갑니다. 장마철에 동반하는 무더위(물기가 많은, 습한 더위)는 물더위에서 ㄹ 탈락된 것이고 무지개의 ‘무’, ‘미나리’ ‘미끄럽다’ ‘미꾸라지’의 ‘미’ 역시 뿌리가 물입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오란비와 반대되는 말은? 여우비쯤 되죠. ‘맑은 날 잠깐 뿌리는 비’를 여우가 시집가는 날 뿌리는 비라 이름붙였습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장대비(장대처럼 굵은 빗줄기로 세차게 쏟아지는 비), 모다깃비(뭇매치듯 한곳에 모아져 쏟아지는 비)라 했습니다. 요즘 기상용어로는 폭우나 집중호우쯤 됩니다. 호우주의보는 6시간동안 예상강우량이 70mm이상, 12시간 동안 110mm이상 일 때 발령되고 호우경보 기준은 예상강우량이 6시간동안 110mm이상, 12시간동안 180mm이상일 때입니다. 무척 많은 양의 비죠.

모다깃비(모다기+비)의 모다기는 모두 합쳐놓았다는 뜻. ‘모다치기’'모닥치기'로도 불립니다. 국물 떡볶이, 튀김, 김밥 등 각종 분식류를 한데 모아 내놓는 음식을 ‘모다치기’'모닥치기'라고 하니 각종 부침개를 한데 모아놓은 모둠전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모다기, 모다치기는 ‘모으다’가 뿌리로 보입니다. 모닥불(한 곳에 모아놓고 피우는 불)의 모닥이나 ‘모두 다’할 때의 모두, 연못할 때의 못 역시 같은 뿌리로 추정됩니다.

모다깃비와 유사한 비로 소나기(갑자기 쏟아지는 비)가 있죠. 황순원의 소설제목이기도 한 소나기는  쇠나기>소나기로 변화됐다는 게 통설입니다. '쇠'는 '몹시''심한'이란 뜻의 부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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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표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안개처럼 온다해서 안개비, 이슬비(조금 굵게 내리는 비), 보슬비(알갱이가 보슬보슬 끊어지며 내리는 비), 부슬비(보슬비보다 조금 굵게 내리는 비), 가루비(가루처럼 내리는 비), 가랑비(보슬비와 이슬비), 싸락비(싸래기처럼 내리는 비), 잔비(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 실비(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며 내리는 비), 발비(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 작달비(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 달구비(짓누르듯 거세게 내리는 비), 채찍비(굵고 세차게 내리치는 비), 바람비(바람이 불면서 내리는 비), 도둑비(예기치 않게 밤에 몰래 살짝 내린 비), 단비(꼭 필요할 때에 알맞게 내리는 비), 잠비(여름에는 바쁜 일이 없어 잠자기 좋은 비), 비꽃(한 방울 한 방울 비가 시작될 때 몇 방울 떨어지는 비) 등등… 이외에도 많습니다.지면관계상...

‘비’라는 단어 하나에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하는 민족이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죠. 비가 우리네 농경사회에서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는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있습니다. 47,640㎡ 면적에 소나기마을의 배경무대와 지상 3층 규모의 황순원문학관이 있고 소나기광장에는 노즐을 통해 인공적으로 소나기를 만드는 시설도 갖췄다고 합니다. 소나기를 맞아볼 수 있다고 하니 한여름 무더위도 날릴 겸 시원하게 맞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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