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봄에 씨뿌린 옥수수들입니다. 수확할 때가 꽉 됐습니다. 

국내 옥수수의 40% 가까이가 강원도에서 생산됩니다. 옥수수 수확철에 이 지역 산간지방은 말그대로 옥수수 물결입니다. 대체 이 많은 옥수수를 누가 먹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많습니다.

©동이

이번 동이의 전원농활(農活)은 옥수수 따기입니다. 정확히는 ‘옥수수 꺾기’. 잘못 꺾으면 옥수수대가 뚝! 부러집니다. 한손으론 옥수수가 달린 대 아랫부분을 꼭 잡고 다른 손으로 옥수수를 아래로 꺾는 게 요령입니다.

서서 하는 작업이라 비교적 수월하지만, 수확기가 한여름 삼복이어서 더위 자체가 적이죠. 특히나 옥수수 잎새들은 매우 까칠해 작업 땐 긴옷과 모자가 필수입니다.

수염이 마른 놈들만 골라 꺾어야 합니다. 책에는 옥수수 수염이 나온 지 25~27일쯤 지났을 때가 수확적기라고 돼있지만 날만 셀 수 없는 노릇이니... 수염 마른 녀석들 몸통 한번 만져보고 따는 게 요령입니다. 딱딱함이 바로 느껴지니까요.

이렇게 수염이 바짝 마른 놈들은 다 익은 겁니다. 덜 익은 녀석들은 수염이 쌩쌩하죠©동이

그런대로 올 옥수수 농사가 잘됐다~싶었는데 웬걸 그게 아니었습니다. 옥수수가 익는 걸 알고 멧돼지들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밭 한가운데 식사(?)하고 간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멧돼지 공습에 못이겨 급기야 경운기용 경광등을 밭 가운데 박았습니다. 저녁 어스름에 켜놨다가 새벽에 끄고... 경광등 효과가 있긴 하지만 ‘아침 저녁 출퇴근’하는 일이 보통이 아닙니다.

멧돼지가 옥수수를 쓰러뜨리고 알을 훑어먹은 흔적©동이
멧돼지 공습에 못이겨 경광등을 밭 가운데 박았습니다. ©동이

텃밭농군 입장에선 옥수수 처리도 사실 만만치 않습니다. 옥수수 많이 짓는 농가들이야 직접 수확하지 않고 밭에 심어져 있는 상태로 팔아 넘깁니다. 이른바 밭떼기죠. 업자들이 서울 농산물도매시장 등지에 출하조절을 해가며 바로바로 수확해 갑니다.

텃밭농군은 재배량이 많지 않아 밭떼기로 넘길 수도 없습니다. 자가(自家) 소비하고 친척이나 주위와 나눠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강원도에 와서 옥수수 그냥 따가라 해도 안옵니다. “더위에 기름 써가며 가느니 그 돈으로 앉아서 사먹겠다”는 반응들이죠. 맞는 말입니다. 양파자루 한망이면 한식구 실컷 먹는데 왔다갔다 기름 값이 더 들죠. 땀 뻘뻘 흘려가며 수확해서 양파망에 넣어 택배까지 해줘야 고맙다는 말 듣습니다. 물론 옥수수값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듭니다.

©동이

그렇다고 밭 놀릴 수는 없고... 한두해 묶혔다간 잡목과 풀이 우거져 묵밭되고 더 오래 두면 농지처분명령 나옵니다. “농사지을 의사가 없어보이니 빨리 매각해라!”는 법적명령이죠. 그렇게 되면 공사 더 커지는 겁니다. 그러니 되든, 안되든 뭐라도 심어야 합니다. 농자(農者)들의 운명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땀흘려 지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택배해주면 상대방 반응에 앞서 스스로 뿌듯한 마음 듭니다. 옥수수 생물(生物)로 500개 팔아봐야 기십만원 정도 될까, 말까죠. 농사로 돈벌기 쉽지 않다는 사실 확 느껴집니다. 누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는지...이해하기 어렵죠.

겉껍질을 제거하고 속껍질 한두개 남기고 찝니다. (위) 시장통 뻥튀기 ©동이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시절 산골에선 옥수수와 감자가 주식이었습니다. 요즘이야 옥수수차다, 뭐다 해서 다양하게 해먹지만 먹을 게 많지 않던 시절엔 그것마저도 언감생심이었죠.

한 세대전만해도 초등학교때 양은 도시락에 강냉이죽 배식받아 먹었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못먹었습니다. 시장통이나 마을 어귀 뻥튀기 기계에 줄서서 강냉이 튀겨먹던 일, 땅에 떨어진 강냉이를 주워 먹던 추억들도 아스라히 사라졌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그런 정서를 알 리 있습니까? 얘기해봐야 “더럽게 그런 걸 왜 주워먹었냐?”는 핀잔만 돌아올 게 뻔합니다.

요즘 나오는 옥수수는 대부분 찰옥수수죠. 가격도 착한 편입니다. 이즈음 강원도 갔다 올 기회있으면 길옆 옥수수 매점에서 한자루 사주십시오. 농촌살림 좀 도와준다 생각하시고...

*살림꾼들은 옥수수를 쪄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그때그때 해동시켜 먹습니다. 겉껍질만 까고 냉동시켰다가 쪄먹는 주부들도 있습니다.후자가 맛이 더 살아난다고 합니다. 아예 옥수수 알을 따서 냉동시켰다 먹는 방법도 있다고 하죠. ‘옥수수알 냉동’은 냉장고 부피도 줄여줄테니 시도해볼만 합니다. 옥수수 뿐 아닙니다.주부 10단들은 웬만한 산나물이나 밥까지 냉동해서 먹습니다. 냉장고가 여러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치, 찐밥, 찐옥수수, 삶은 산나물 등등...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