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올 여름도 펄펄 끓었습니다. 40도 가까이 치솟는 무더위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죠.

예부터 한여름 더위가 시골집 부엌의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과 수증기를 닮았다해서 가마솥더위라 불렀습니다.

한옥의 부엌엔 가마솥이 하나씩 있습니다. 평소 밥해먹는 솥이 부뚜막 가운데 있고 그 옆에 가마솥이 있죠.

가마솥은 가장 큰 솥으로 재질인 쇠가 검어서 가마(검다)+솥이 됐다고 합니다. 시골에선 메주콩을 쑤거나 동네잔치할 때면 가마솥을 썼습니다. 가마솥에 앉히는 쌀의 양이 꽤 돼 누룽지 또한 많이 생겼죠.

©픽사베이

“하늘천(天) 따지(地)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천자문 첫 구절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을 빚대어 학동들이 즐겨부르던 동요구절입니다. 훈장 선생님이 천자문 공부시키면 장난기가 발동한 학동들이 ‘하늘천 따지’까지 잘 따라하다 ‘검을현 누루황’ 대목에 가서 ‘가마솥 누룽지’로 바꿔 부르곤 했습니다.

가마솥의 검은 빛(玄)과 누룽지의 누른 빛(黃)을 재기발랄하게 대체한 개사(改詞)였죠.

천자문은 ‘땅이 누렇다’하고 학동들은 ‘누룽지가 누렇다’고 읊었으니 그 시절 땅 색깔이나 누룽지 색깔이나 동급이었던 겁니다.

누룽지 옛말은 ‘눌은 티’. 누룽지(누룽+지)의 ‘지’는 부수러기를 뜻하며 ‘티’가 구개음화를 거쳐 ‘치’ ‘지’로 바뀝니다. ‘눌은 부수러기 밥’이란 뜻이죠.

누릉은 눌은>누른에서 오고 ‘눌’ ‘누른’은 ‘누르다’ ‘눌르다’ ‘눋다’의 ‘누르’ ‘눌’ ‘눋’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눌러 앉다’ ‘눌러 붙다’의 ‘눌러’도 같죠.

가마솥 밥은 ‘솥 바닥에 눌러붙어 노릇노릇해지면서 누런 색’을 띠게 됩니다. 이 문장에 동원된 ‘눌러붙어’ ‘노릇노릇’ ‘누런색’이 다 형제어인 셈이죠.

누룽지 색이 ‘누른 색’으로 불리고 모음조화로 ‘노란색’이 탄생한 게 아닌가. 노란색은 다시 노랑색으로 가고.

노릇노릇 누룻누룻 누렁 누렇다 노른(자) 노르스름 누루스름 노린내 등등도 어미(母)가 같겠죠.

‘누룽’ ‘누른’에서 ‘누렇다’ ‘누르다’ ‘눌러붙다’ 등 형용사와 동사까지 생겨났음이 분명합니다.

이천 쌀 문화 축제에서 ‘가마솥 누룽지 나누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축제 추진위 제공

우리나라를 비켜간 태풍 5호 노루. 우리나라가 낸 태풍후보 이름 중에서 채택된 이름이라죠. 성질이 온순한 노루처럼 한반도를 제발 비켜 가달라고.

이 노루란 동물의 이름 역시 털색깔이 ‘누렇기’에 노루라 이름지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노랗다’란 말이 노루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만, 앞서 언급한 누룽지나 누르다 등등의 단어 생성구조로 볼 때 색깔때문에 노루로 불렸을 거라는 게 합리적 추정이죠.

놋쇠의 색깔이 ‘노랑’이고 ‘놋’이 ‘누르다’로 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누루다’의 어원인 ‘눋’ ‘놋’자체의 색깔이 노랗다는 것이고, 거기서 색깔과 동작까지 유래됐다는 겁니다. 나름 일리있는 분석이라고 봅니다.

그러해도 전래동요로 부르던 가마솥의 ‘누룽’지나 천자문의 ‘누루’황은 말뿌리가 같다고 여겨지죠.

땅 색깔이 노란 색(黃)을 띠고 가마솥 누룽지와 비슷하게 보여 어린 나이에도 ‘모어(母語) 연상작용’을 일으켰지 싶습니다.

솥바닥에 눌러붙은 누룽지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였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어릴적 누룽지 한덩이 받아먹으며 뛰놀던 추억들이 한둘씩 있을 겁니다.

요즘엔 누룽지가 두뇌발달과 항암치료, 면역력 향상에 좋다하여 웰빙 인기식품으로 떠올랐다죠. 특히 현미 누룽지는 백혈병 후유증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하니 가까이 해볼만한 먹거리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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