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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愛馬)의 목을 쳐라[이수진의 소중한 사람]
이수진 | 승인 2017.09.12 14:30

[논객닷컴=이수진] 김유신이 대의를 위해 소중한 말의 목을 벤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신을 모시는 신녀, 혹은 기생이었다고 전해지는 천관녀를 사랑하여 자주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제 막 화랑들을 이끄는 낭도가 되어 집안을 번성의 길로 이끌 것이라 여겼던 아들의 일탈을 걱정한 어머니 만명부인이 이를 만류하자 결국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어느 달 밝은 밤, 김유신은 술에 취한 그를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갈 만큼 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던 애마의 목을 쳐내고야 만다. 그것도 문만 열면 버선발로 달려 나와 저를 반겨줄 바로 그 애인의 집 앞에서.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일화를 읽고 느낀 바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천마가 불쌍하다. 두번째, 이런 비극적인 사랑이라니, 아이고 슬퍼라. 김유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을까? 그는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나는 이 양반처럼 사랑조차도 끊어낼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을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베고 있다. ©SBS

생각해보면 나쁜 사람이었다. “제가 돌아서 집으로 향하면 그만이지 왜 죄 없는 말의 목은 자르는가? 차라리 제 사지의 일부를 상처 내어 결심을 공고히 할 것이지.” 이렇게 씩씩대면서도 나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 보다 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없을 것이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던 말의 목을 벨 때 그의 심정이며, 사랑하던 여인의 문 앞에서 돌아서야만 하는, 벼랑 끝에서 제 의지로 추락하는 것과 같았을 그 고통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 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과 애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제가 할 수양에 집중하여 언젠가는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대의(大義), 개인적인 감정을 따지기보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그 나름의 굳은 의지 또한 동경의 이유가 되어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었다.

그의 사랑에는 희생이 담겨있었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고 우리가 주인공인양 안타까운 까닭은 김유신이 대의를 위해 단장(斷腸)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사랑을 포기한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비겁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라고 스스로의 욕망을 비겁하게 변명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그 사랑을 놓은 것은 철저한 자신의 의지였다. 자발적으로 택한 비극은 더 고통스럽기에 아름다웠다.

반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랑들도 많았다. 어릴 적 어른들 틈에 보았던 옛날 영화에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매우 가난해 많이 배울 수 없었던 여주인공이 장차 법관으로 임용될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고 추운 겨울날 두 손 호호 불어가면 짠 빨강 목도리를 그 남자의 하숙방 앞에 두고 나오면서 미래를 기약한다. 그러나 결국 남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멀리 떠나버린다. 빨간 목도리는 오해에 오해를 거듭한 끝에 젊은 법관에게 출세를 약속하며 협박하던 권력자의 딸이 만든 것으로 변질된다.

이런 비극적인 사랑이라고 해봐야 옛날 고리짝 전설이나, 신파영화들 뿐일 지도 모른다. 요즘은 남들 의식 안하고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망이 사랑으로 포장돼 다른 이의 인생을 파괴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등학생 성관계 교사다. 초등학생을 꾀어내 성관계를 가진 선생은 그 둘이 서로 사랑했노라고 말했다. 당신과 같은 나이, 삼십대가 되려면 가치관이 열두 번은 더 바뀔 테고, 좋아하는 이성의 조건도 백번은 더 달라질 아이였다. 고작 세상에 태어난지 십년이 조금 넘은 어린 것 위에서 네가 채운 욕망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중학생, 고등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경찰관 역시 그들이 서로 사랑하여 교제했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보호관찰을 하는 너를 따랐을 미성년자를 햇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몰래 숨어야하는 그늘진 곳으로 끌고 들어간, 수치와 부끄러움을 배우게 한 그런 만남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탐욕 또는 범죄에 불과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욕망이 사랑으로 불리워선 안 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를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행동들이 충동 혹은 우발적이라고 포장돼 면죄부를 받는다. 그들은 어쩌면 구치소나 교도소에 누워 여전히 제가 비극적인 사랑을 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희생이다. 어떠한 관계든 상대방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비로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을 파괴하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디 사람의 길을 가기를. 대의(大義)를 따라, 정도(正度)를 걸어가게 되기를 빌어본다. 자신의 욕심보다는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가지 않아야 하는 길을 만났을 때, 그 갈림길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목을 칼로 쳐내고서라도 되돌아가야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당신의 욕망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있는가?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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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4th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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