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세상]

순돌이
                                           주태균

오학년이지만
학년에 비해
쪼그마한 키

늘 외톨박이로
혼자 공기놀이를 하다 말고
움츠린 어깨 너머로
고추잠자리 친구 되어 주고,

받아쓰기 0점 받았다고,
구구단 못 외운다고,
변소 청소는 늘 순돌이 것.
반 친구들과 거리는 멀지만

이 마을 어디에쯤
산딸기가 익고
냇가 돌 밑 어디에쯤에
씨알 굵은 붕어가 사는지
훤히 알고 있는 순돌이.

돌담 초가집에
가려진 세상에 사는 순돌이
산새가 친구고,
들풀이 친구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이따금 초등학생 사촌동생이 집에 놀러온다. 학습지나 방과 후 학교 숙제를 가지고 우리집에 들어선다. 순돌이라는 짧은 시도 혼자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어 내게 물어보는 바람에 읽게 되었다. 나는 동생에게 변소, 돌담, 초가집 등 어려운 단어들을 설명해주었다. 동생은 아직 어려서 시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시를 읽는 내내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순돌이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려졌다. 예쁘고 자연친화적인 단어들로 말을 꾸민다한들 순돌이가 혼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화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멀리서 순돌이를 바라보며 묘사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오래도록 지켜봤다면 순돌이 곁에 좀 있어주지, 움츠린 어깨 좀 펴주지 하는 마음도 품게 되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배를 깔고 누워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내 사촌동생에게도 이런 시련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12년의 학교생활이 모두 끝났으니 걱정이 없었다. 순돌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보며 자랐다. 돈독한 친구 사이는 편안하고 따뜻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온종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관계란 소름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겉과 속이 다르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일삼는 것이 일상이다. 홀수일 때 한 명이 금방 낙오되는 일은 상당히 빈번했다.

©픽사베이

남자 아이들은 대게 일종의 과시욕으로 주먹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금방 뒤돌아 잊고 축구공 하나만 던져주면 금세 같이 뛰어논다. 여자아이들은 다르다. 선생님께 들키면 골치가 아파지니 귓속말, 수업시간에 몰래 주고받는 쪽지, 필담 등으로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귓속말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만에 하나 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쉽다. 한 번 등지면 평생을 안 볼 것처럼 굴고 무리지어 다니며 서로를 헐뜯기 바쁘다.

오죽하면 몇몇 아이들은 장난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을 돌아가며 왕따시킨다. 살아온 방식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각자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은 서로 이해하며 풀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미성숙한 아이들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다. 그저 목적도 없이 상대를 향해 날을 세우고 손가락을 겨눈다. 그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맑게 웃는 동생이 불편한 일을 겪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이 깊어졌다.

사실 이 걱정은 요즘 뉴스를 뜨겁게 달군 여중생들의 폭력 사건이 한 몫을 했다. 잔인한 10대 여중생들은 피해학생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리고 무릎 꿇렸다. 이미 힘의 세계를 맛본 아이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소리내어 웃던 밝고 명랑한 10대는 더 이상 없는 것만 같다.

학창시절 학생부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곤 했다. “학교 안에서 아주 왕이라도 된 듯 군림해봐야 소용없다.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있으니 아직은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머지않아 사회에 나가면 너희들을 지켜줄 울타리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때 혼나던 아이들은 마냥 코웃음을 쳤다. 그 뿐만 아니라 꼰대질이라며 침을 뱉고 나지막한 욕설로 정적을 채웠다. 뉴스 속 여중생들은 내 기억 속 아이들보다 나이가 더 어렸다. 대체 누가 어린 아이들한테 그런 것을 가르쳤을까.

한편으로는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닐까 싶다. 피해학생이 폭행당하고 골목길을 질질 끌려가는 것을 몇 명의 어른들이 목격했다. 그러나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은 우리 사회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순돌이나 뉴스 속 피해학생이 끝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 축 처진 어깨와 힘없는 걸음걸이를 볼 때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 앞을 걸어가는 이름 모를 아이가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몰려 있을까봐 마음이 쓰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겐 순돌이처럼 친구가 되어줄 산새도 들풀도 고추잠자리도 없다. 그러니 부디 넓은 어깨와 씩씩하게 걷는 어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길, 밝고 명랑한 10대들의 웃음을 지켜주길 바란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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