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해마다 ‘고추여행’을 다녀옵니다. 마른 고추를 생산지에서 사 직접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어 먹는 일입니다.

“사내놈이 뭔 짓이냐?”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텃밭에서 직접 고추 길러서 태양초 만들어먹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일전에 소개한 단양 산야초세상(다음카페)의 샐비아선생님도 유기농으로 재배해서 직접 말린 태양초로 고추장 만드십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태양초 만드는 일! 쉽지 않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뒤집어줘가며 몇날며칠 말려야 합니다. 아침에 널었다가 저녁엔 덮고, 비라도 오면 서둘러 거둬야 하고...보통 정성이 아니죠.

그럼에도 베이비부머들 옛날 생각해서 “100~200평 텃밭에다 고추 심어서 태양초 꼭 만들어 먹고야 말겠다”고 하면 말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이상 시도하기 어렵다는 말씀드립니다. 

고추가루 그런대로 괜찮은 것 먹어야겠다면 고추 생산지에 가서 건조기에서 깨끗히 말린 고추를 사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건조기에서 말린 빨간 고추 ©동이

동이네도 강원도에서 생산된 고추(건조기에 말린 것)로 매년 가루로 만들어 먹습니다. 현지 고추방앗간에서 직접 빻아오니 적어도 가짜 고추가루를 먹을 일은 없습니다. 물론 주로 김장용이죠.

고추는 병치레를 많이 하는 작물입니다. 텃밭농군에겐 쉽지 않은 종목이죠. 역병 풋마름병 탄저병 흰가루병 점무늬병 시들음병 무름병 모자이크병 등등 고추병명만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때문에 몇 년전부터 동이는 텃밭에 풋고추용 몇그루 빼고는 안심습니다.

물론 초보땐 고추 좀 따서 태양초 만들어 고추가루 해먹어보겠다고 몇차례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히 실패... 부지런하지 않은데다 얼마 되지 않는 고추농사 짓겠다고 분무기다~ 농약이다~ 사는 일도 번잡스러워 포기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관리 안한 탓도 있지요.

대신 고추가루는 좀 깨끗한 것 먹자~ 뭐 이런 ‘아집’이 발동해 강원산 고추가루를 만들어 먹게 된 겁니다. 고추 수확철이면 지인들과 함께 고추여행을 떠납니다. “올해 몇근 살테니 준비해주세요~” 미리 부탁하죠. 그러면 고추 건조기에다 깨끗히 말려주십니다.

고추 꼭지를 따고 깨끗한 행주로 닦고 있는 동이네 ©동이
고추 말리는 중 ©동이

함께 간 지인들도 깔끔을 떠는 편이어서 건고추를 한번 더 닦아 시장방앗간으로 싸들고 갑니다. 사실 건조기에 넣을 때 한번 세척하기때문에 꼭지만 따고 그냥 빻아도 되지만 위생관념들 탓인지 ‘마른 고추닦기’를 관행처럼 해옵니다.

올해는 김장 말고도 메주를 띄어 장을 만들기로 했으니 고추가루 용처는 더 늘게 됐습니다.

고추닦는 일은 고통스럽죠. 맵습니다. 근처만 가도 재채기가 쉴새없이 나니까요. 사실 이런 일은 예전에 주부들이 다 했던 것인데 이제는 세월이 변해 ‘남자도 할 수 있는 일’이 돼버렸습니다.

역전 방앗간은 한철맞아 하루종일 기계 돌리고 있더군요. 동이네 일행만 50근이나 빻았습니다.

이렇게 고추가루 만들어 먹는 걸 보고 주위에서 한마디씩 합니다.

“기름값 들여가며 뭐 강원도까지 가서 고추가루를 만들어 먹고 그래? 그 돈으로 그냥 여기서 사먹지~~”

마른 고추값과 고추빻는 값, 왔다갔다하는 차 기름값 감안하면 아주 비싼 고춧가루죠.

맞습니다.

그러나 여행이란 게 그렇듯 볼거리 먹거리도 한몫하니까요. 동강의 풍광을 보며 고추방앗간 앞 올갱이 해장국집이나 시장통 메밀전병집 들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합니다. 메밀전에 막걸리 한사발~ 쫙~~ 그 넉넉함이 고추 못지 않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작은 신뢰라고나 할까. 덤이라 생각하고...고추여행은 내년에도 지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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