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보러 가는 길.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 솨르르 몸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 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달이 자꾸 따라와요/이상국)

©동이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는 싯귀가 맘에 들어 적어 봤습니다.

‘시인의 달’은 베부세대들의 옛 추억을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냅니다. 시인은 ‘아버짓 적’이란 시어로 독자를 ‘아저씨네 마당’과 ‘이발소집 담’으로 안내합니다.

‘아버짓 적’이란 주인공의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때(시절)를 의미하죠.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제사지내러 가는 길에도 여전히 그 옛날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의 ‘그 달’이 이발소집 담을 비추고 있음을 영화 장면처럼 묘사해줍니다.

‘적’은 때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특정시점에 이뤄진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릴 적 내 친구’할 때의 ‘적’은 특정시점(어린 시절)을 얘기하지만 ‘해본 적이 있다’ 할 때의 ‘적’은 특정시점에 특정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나타내죠. 때와 행위를 포괄하는, 좀 더 진화된 표현으로 보입니다.

시제를 나타내는,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제’가 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의 ‘제’ 역시 때란 뜻이죠. 이제(지금 말하고 있는 바로 이때) 이제껏(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제야(이제 비로서, 지금에 이르러서야)도 같습니다.

‘언젠가’는 ‘언+제+ㄴ+가’로 풀 수 있죠. ‘언’은 ‘어느’의 준말. 따라서 ‘언젠가’는 ‘어느+제+ㄴ가’로 다시 분해됩니다. ‘제’를 ‘때’로 바꾸면 ‘어느 땐가’로 같은 의미를 띠게 됩니다.

어제는 어적의>어저긔>어제, 그제 역시 그적의>그저긔>그제로 변화됐다는 게 통설입니다. ‘적’이나 ‘제’나 한뿌리임을 알 수 있죠.

같은 논리로 그제는 그때를 뜻하는 ‘과거의 이제’라는 뜻이고 어저께, 그저께도 조어구조가 같습니다. 반면 오늘의 경우 온+알(날의 고어)로 쪼개보면 이미 ‘다가온’ 날이란 뜻이 됩니다.

‘이따가’란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이 아닌 일정시간 뒤의 시점이죠. ‘좀 있다가 하겠다’ ‘있다가 하겠다’가 한숨 고르고 나서의 시점을 뜻하는 ‘이따가’로 진화된 게 아닌가 합니다.

이따가가 시간적으로 단속(斷續)의 의미를 담고 있듯 이따금 역시 단속의 뜻이 있습니다.

이따금은 ‘있다가+금’의 합성으로, 여기서 ‘금’은 지금(이제)에서 차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한참 지난 후의 지금이라는 뜻에서 ‘있다가 지금’이 ‘이따가끔’으로, 이것이 다시 ‘이따금’ ‘가끔’(얼마쯤씩 시간을 두고)으로 진화한 게 아닌가. 가끔과 이따금이 동의어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하죠.

유사어로 즈음, 쯤( 무렵, 일이 되어 갈 어름, 때)이 있습니다. 이즈음(이때)이나 이때쯤, 그즈음이나 그때쯤에서 보듯 역시 때를 지칭합니다. 차이라면 지칭하는 시간대가 ‘때’보다 다소 폭이 넓다고 할까.

조상들이 때를 가르키는 말로 ‘적’  ‘제’ ‘금’ ‘끔’ ‘쯤’ ‘즈음’ '무렵'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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