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혁명은 언제나 뜨거운 것이다. 석탄에 불을 붙여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이 영국 산업혁명의 시작이었고, 프랑스에선 민중의 가슴에 뜨거운 불이 붙어 시민혁명을 이뤄냈다. 그러나 여태껏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빙하처럼 차가운 혁명의 움직임이 북극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된 북극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픽사베이

제일 먼저 접근하고 싶은 북극의 테마는 자원이다. 자원의 보고라는 이름에 걸맞게 북극에는 미개발 원유의 25%와 천연가스의 45%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한국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8번째 북극 탐사에 나섰다. 아라온호는 일명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는 가스하이드레이트라는 새로운 자원 채취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혁명의 길을 찾는 데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불현듯 딜레마 하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자연에 들어선 문명이 새로운 자원의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기존의 자원을 소모시키고, 그 소모의 부유물을 북극에 흩뿌려 온난화에 더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말이다. 더욱이 앞으로 자원 발굴의 규모가 커져 공급지가 만들어지고 유통경로가 형성된다면 쇄빙선뿐만 아니라 화물선 또한 우후죽순으로 발굴지에 들어서서 환경을 더 오염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극에 대한 탐구에서 읽어낸 그 딜레마는, 또한 같은 탐구의 과정을 통해 작게나마 해소될 수 있었다. 빙하가 녹음으로써 새로운 바다가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북극항로’의 등장인 것이다. 적재물의 특수성으로 인해 항공기가 아닌 선박을 통한 물류의 이동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배편으로 가는 최단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통한 길로 2만200km의 거리와 약 4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향후 확장될 북극항로를 이용한다면 거리와 시간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쇄빙선뿐만 아니라 무수한 화물선의 물류 이동경로 또한 짧아지면서 그에 따른 에너지 절감이 이뤄질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온난화가 늦춰지고 빙하가 더 이상 녹지 않는 균형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극해를 통해, 개발과 환경 보호는 대립되는 것만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는 가치라는 기대를 조심스레 걸어본다.

2013년 10월, 한국 최초로 북극항로 항해에 나선 스테나폴라리스가 얼음을 깨고 쇄빙선을 따라 항해하고 있다. 북극항로가 개발되면 세계 물류경제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해양수산부

이제 환경 테마로 넘어가보자. 한국에서 한파를 맞아 영하 15도의 강추위를 겪고 있을 때 북극의 탐사대원들은 영상의 기온 속에 생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뭇 놀라운 사실이다. 또한 북극이 무려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180여 종의 꽃도 피어난다는 사실은 생명의 용틀임을 느끼게 한다.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법인데, 사람 손 닿지 않는 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히 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무리는 아닐 듯싶다.

북극 동물의 경우 북극곰만을 떠올리는데, 흔히들 서식할 거라고 생각 못 하는 여우나 토끼, 레밍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서식 여부는커녕 이름과 존재 자체를 몰랐던 클리오네는 북극이 자원뿐 아니라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유빙의 천사’ 클리오네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북극, 그 생태에 대한 탐구 과정을 통해 환경 보호라는 당위성은 단순히 활자를 넘어 생생한 경험으로 체득된다.

마지막으로 찾은 테마는 안보였다. 요즘 세계는 러시아의 동향을 강조한다. 일찍이 북극을 군사적 요충지로 인지한 그들은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국제정세의 변화가 그 무대를 북극으로 하여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도 북극으로의 영역 확장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지만 비단 그 이유를 군비 경쟁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북극해의 확장은 예정된 일이다. 항로는 개척될 것이며 세계의 물류가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러시아가 단순히 개별국가로서의 양적 군비증강만 바라는 게 아니라 북극항로를 위협하는 각종 해상 테러를 대비한 음적 증강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세계화를 이뤄가고 있는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요충지 북극. 우리는 개별국가로서가 아니라, 일부 국적을 망라한 반평화집단으로부터 북극을 보호하는 총체적인 글로벌 안보의 확립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경쟁이 아닌 상생의 관점에서 북극 안보 확립의 길이 한국의 집단지성으로부터 나오길 소망해 본다.

북극의 여러 테마를 탐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도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막연하게 하얗다고 인식되는 북극이 실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이 글이 북극이라는 프리즘으로 자원과 환경, 안보라는 다양한 테마를 비춘 것처럼 말이다. 빙하가 하얀색이나 푸른색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회색을 띠기도 한다는 사실은 탐구를 끝낸 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는 이 회색빛 빙하에서 이정표 하나를 찾는다.

‘개발 아니면 보호’라는 양극단의 눈을 버리고 회색빛 빙하에 비추어 북극을 보자. 상생과 혁신이라는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가치가 해수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곳, 그런 황홀한 빙산의 일각을 마주할 수 있는 북극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탐구해야 할 진정한 극지다.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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