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련의 그림자]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온지 4개월이 넘었다. 입시 대학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싫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게 벌써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겨울이 다가왔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많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워킹’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

이제까지 한 아르바이트

일본에 온지 3주 후에 라멘집 알바를 시작했다. 운좋게도 첫 면접에 합격해서 이틀 뒤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 사원 한명이 계속해서 조롱하기 시작했다. 일이 중학생수준인데 쟤는 왜 못하냐, 대놓고 내 얼굴과 다른 알바생의 얼굴을 비교하는 등 점장한테 계속 불평을 했다. 처음엔 일본어를 잘 못알아들어서 나를 욕하는 게 맞나 싶었는데 너무 대놓고 말해서 알아듣게 됐다.

게다가 월급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8100엔을 줘야하는 달에 3000엔 부족하게 넣어주고, 다음달 월급엔 7500엔이나 부족했다. 실수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그러니 날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괜한 오기로 더 버텨보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만뒀다. (참고로 8월에 부족하게 넣어준 돈을 11월에 받았다...)

간코 돈카츠 / 무인양품 난바점 ⓒ 최혜련

그 뒤로 구한 돈카츠 아르바이트는 라멘집과 다르게 정말 모두 상냥하고 친절했다. 일도 차근차근 알려줘서 어려울 것도 없었고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 통역해줄 일도 많아 가게에 필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일하는 사람들도 베트남, 중국, 홍콩 등 국적이 다양하며 일본 젊은 친구부터 아주머니들까지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일 끝나고 같이 술마시러 간적도 있고 점장님도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를 잘 챙겨줘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똥차가고 벤츠 만난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 알바 하나로는 생활비가 부족했기에 카케모치(두탕)를 해야했다. 그래서 여러 곳 면접을 보다 기회가 닿아 무인양품 난바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기뻤던 것도 잠시 워킹홀리데이의 이면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먼저 원래 워킹홀리데이는 세금을 20퍼센트 부과한다. 앞서 돈카츠집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는데, 무인양품은 대기업이라 정확하게 세금을 떼갔다. 그래서 950엔 시급이 760엔 꼴이 됐다.

일단 이 문제로 의욕이 사라지고, 거의 면세 카운터에만 있다보니 일본어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려서 내가 중국워홀을 온건가 싶을 정도였다. 이것과 더불어 이런저런 문제가 섞여 우울증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것은 ‘네가 원해서 간거잖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라는 말을 들을까봐서였다. 억지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 나날이 반복됐다. 이런 태도 때문일까, 결국 계약연장에 실패하고 나는 다시 반백수가 되었다.

외국인노동자의 차별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역시 외국인노동자는 자국민에 비해 한계가 있다. 좀 더 단순노동 위주로 맡기고, 중요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돈카츠 알바의 경우에도 나에게 계산을 맡기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일한지 1년 넘은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계산을 시키지 않는다. 제일 좋다고 느낀 알바에서도 이런 은근한 차별이 나타난다.

그래도 외국인보다 자국민이 신뢰가 있고 그들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이런 문제는 이해가 되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것에 대한 조롱은 힘들다. 아무래도 일본어가 서툴다보니 티가 나게 되는데 그걸 알고 바로 반말을 하는 손님, 어버버거릴때 대놓고 비웃는 손님도 있었다. 특히 라멘집에서 일할 때 점장과 사원의 조롱이란...

처음 겪어보는 일이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참다보니 동백꽃이 낙화하듯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세금 20퍼센트를 떼는 것은 서럽기까지 하다. 사원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인데 세금을 내도 돌아오는 혜택도 없다. 심지어 환급받기도 어렵다고 하니 월급이 들어와도 슬픈 기분이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돈도 벌면서 일본어 배우고 여행도 하고 1석3조네! 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랬을까. 일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했던 아르바이트는 주 업무가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에서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에서 홀리데이만 쏙 뺀 나날들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또 처음 겪어보는 임금체불과 해고는 타지생활을 지치게 만들었다.

도톤보리 강가 ⓒ 최혜련

그럼에도 조금 더 버텨보고자 하는 것은 처음이 주는 설렘이 크기 때문이다. 오사카의 중심 난바가 일상이 된 것과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일, 스스로 집을 구하고 월세를 내며 가구를 장만해 집을 꾸미거나 한국과 비슷하면서 다른 일본을 여행하는 이런 일들이 마치 아이가 처음 세상을 보듯 신기하다. 그래서 9번 힘들더라도 1번의 설렘으로 조금만 더 있어 보자고 외치게 된다. 그렇기에 워킹홀리데이는 내게 스스로 준 선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훗날 워홀은 내가 조금씩 성장하게 된 청춘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최혜련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회가 되길 바라며 씁니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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