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사람]

“암행어사 출도야!”
옳거니! 속이 시원하다.
춘향이를 괴롭힌 변사또는 벌을 받겠구나.

그래야지.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고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춘향이를 성희롱 및 협박, 감금한 변 사또는 옥살이를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암행어사 이몽룡이 짠하고 나타날 적에 왜 우리 속이 뻥 뚫렸을까. 그건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변사또가 마침내 그가 지은 죄 만큼의 벌을 받을 받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만약 변사또를 저 멀리 귀향 보내거나 옥살이시키지 않고, 변씨의 업무가 과중하여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인 바람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면 어땠을까. 그저 몇 개월 정직(停職)시킬테니 푹 쉬다 다시 사또로 복귀하라고 했다면...

“뭣이라고!!!”

고을 사람들은 이런 판결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변씨 뒤에 혹은 그를 보호해 주는 권력가의 비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 허무맹랑한 처벌을 내린 이몽룡과 변 사또 사이에 뒷거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구설이, 의혹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참혹한 일을 당하고도 가해자가 정당하게 처벌되지 않는 춘향이의 처지가 불쌍해 이렇게 가슴을 쳤을 것이다. ‘저 불쌍한 것. 내가 다 원통하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고전 중에 고전 춘향전에도 권선징악이 있고 정의가 살아있다. 그러나 요즘 사회를 보면 범죄자가 설치고 이들을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불편한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법원의 양형규정도 피해자의 고통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 11살 초등학생을 살해한 범죄자가 감옥 안에서 자신의 기사를 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범죄자는 기사 내용 중 자신을 ‘살인마’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명예와 인권을 운운하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또한 성범죄,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교도소 안으로 성인물을 반입해 저들끼리 돌려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범죄자들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지는, 인권이 살아 있는 그곳은 과연 교도소가 맞는 걸까?

법원의 판결도 일반인의 눈에는 이해 불가일 때가 많다. 살인의 잔혹함과 그 죄상이 명백하게 드러나, 절대 사법부의 오판일 리가 없는 이들에게도 ‘사형’은 집행되지 않는다. 무고한 피해자의 인권을 말살하고, 마지막 숨이 끊기기까지 고통을 주었을 사형수들을 동정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형수들의 인권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보다 더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쌓여간다. 정당한 대가를 치루지 않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자신의 아이를 발로 차고 방치해 죽여도, 음주운전으로 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화목한 가정을 파괴해도 그저 몇 년에 불과한 징역살이에 그치는 사회.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사법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 그런 경험들이 모이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억울함이 쌓일 것이다. 마치 변사또가 잠시 징계를 받고 다시 되돌아온 것처럼...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단죄하지 못한 범죄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감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xxx신상, xxx사진 등이 그것이다. 아직도 죄 값을 치루지 않은 친일파들의 명단이나, 십년도 더 지난 성폭력 가해자들의 얼굴, 여아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가해자의 예상 출옥년도가 인터넷을 떠다닌다. 피해자가 내 피붙이인양 원통한 마음과,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불안감이 만든 풍경이다.

처벌받지 않는 변사또를 향한 민중의 궐기일까. ‘가해자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서 우리 고을 말고도 다른 고을에까지 이 사실을 널리 퍼뜨려야지. 변사또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다니도록,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벌이라도 받도록 해야겠다. 동네 한 가운데서 조리돌림은 못하더라도 사회적인 처벌은 받도록 해야지 암!, 춘향아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라. 우리가 있다!’

범죄자가 그 죄질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믿을 수 있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그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그의 신상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 공평하고 정당한 사법의 정의가 실현되는 날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민중들이 궐기에 나서기 전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법 조항 개정과 법 집행이 이뤄지면 좋겠다.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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