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 당시 한 달 용돈은 교통비를 제외하면 약 이만원 정도였다. 그런 내게 고양이 사료는 너무 비쌌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종이컵에 가득 담아 튀김가루까지 얹어주던 오백 원짜리 컵떡볶이를 수십 번 참고 지나치고,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몰래 까먹는 재미도 포기해가며 한 달 용돈을 꼬박 모아야 가장 싸고 양이 많은 포대사료를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동네 길고양이들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간식을 참으면 되지만 쟤들은 밥을 못 먹는 거잖아, 하고 여중생의 왕성한 식욕을 참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모르겠다. 유혹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렸을 때에는 엄마 몰래 부엌에서 육수용 멸치나 참치 캔을 찾아 내어주고는 사료를 주지 못해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픽사베이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떼쓰고 징징대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우리 집 일원으로 맞이하기에 걸림돌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있던 동생의 피부는 동물 털에 민감했고, 아빠는 완강했으며 엄마는 야속하게도 정 키우고 싶다면 네 돈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거나 핸드폰에 담아둔 동물 사진 폴더를 이따금 열어보는 것이었다.

당시 내 꿈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동물교감전문가)였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웃었지만 나는 꽤나 진지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읽던 책에서 가르쳐준 동물과 교감하는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책에 의하면,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모르고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에 서로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감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매 야자시간마다 눈을 감고 친구네 집 강아지나 길고양이들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순수했다고 할지 멍청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와 그들 사이에 소통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내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가봐~ 자책하기도 했다.

시간이 몇 년 더 흘러서 교복을 벗게 되었다. 부모님의 관리 아래 경제적 활동을 하던 과거와 달리 아르바이트나 일을 하면서 직접 그 노동의 산물을 얻게 되었다. 물론 대학생 신분이기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여건이 될 만큼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원하는 옷을 사거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길고양이에게 포대사료에 든 투박한 짙은 고동색 알맹이 한 사발이 아닌 츄르(정식 명칭은 챠오츄르로, 경계심 많은 고양이도 일분 만에 들러붙게 만든다는 마성의 고양이 간식)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한 생명쯤은 책임질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 간절했던 소망들이 떠올랐다. 늙어서, 병들어서, 여건이 안돼서 혹은 그냥 유기되는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기에 더욱 신중했던 것 같다. 일월 말, 겨울이지만 그다지 춥지 않던 날에 고슴도치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피부병 때문에 얼굴에 곰팡이 딱지들이 몽글몽글 앉아있던 아이였다. 작고 귀여운 고슴도치들 사이에서 유난히 이 아이만 몸집이 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이 생겼다.

코를 치켜들고 여기저기 킁킁대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가시뭉치를 보며 이 아이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새로이 느껴보는 부담감이자 책임감, 그리고 설렘이었다. 고슴도치의 수명은 대개 사오 년 정도이며 반려인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십 년 정도까지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 테다. 처음이라는 핑계 하에 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이 이 아이에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벌써 동동이가 우리집에 온지 약 두 달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에는 인기척에 숨기 바쁘던 아이가 그새 무럭무럭 자라나 양손으로 겨우 받칠 수 있을 만큼 커버렸다. 얼굴을 온통 뒤덮던 곰팡이 딱지들도 말끔히 사라졌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동동이의 입양을 도와준 친구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