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채연의 물구나무서기]
[오피니언타임스=송채연]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즈음, 당시 한 달 용돈은 교통비를 제외하면 약 이만원 정도였다. 그런 내게 고양이 사료는 너무 비쌌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종이컵에 가득 담아 튀김가루까지 얹어주던 오백 원짜리 컵떡볶이를 수십 번 참고 지나치고,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몰래 까먹는 재미도 포기해가며 한 달 용돈을 꼬박 모아야 가장 싸고 양이 많은 포대사료를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동네 길고양이들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간식을 참으면 되지만 쟤들은 밥을 못 먹는 거잖아, 하고 여중생의 왕성한 식욕을 참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모르겠다. 유혹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렸을 때에는 엄마 몰래 부엌에서 육수용 멸치나 참치 캔을 찾아 내어주고는 사료를 주지 못해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떼쓰고 징징대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우리 집 일원으로 맞이하기에 걸림돌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있던 동생의 피부는 동물 털에 민감했고, 아빠는 완강했으며 엄마는 야속하게도 정 키우고 싶다면 네 돈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거나 핸드폰에 담아둔 동물 사진 폴더를 이따금 열어보는 것이었다.
당시 내 꿈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동물교감전문가)였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웃었지만 나는 꽤나 진지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읽던 책에서 가르쳐준 동물과 교감하는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책에 의하면,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모르고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에 서로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감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매 야자시간마다 눈을 감고 친구네 집 강아지나 길고양이들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순수했다고 할지 멍청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와 그들 사이에 소통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내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가봐~ 자책하기도 했다.
시간이 몇 년 더 흘러서 교복을 벗게 되었다. 부모님의 관리 아래 경제적 활동을 하던 과거와 달리 아르바이트나 일을 하면서 직접 그 노동의 산물을 얻게 되었다. 물론 대학생 신분이기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여건이 될 만큼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원하는 옷을 사거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길고양이에게 포대사료에 든 투박한 짙은 고동색 알맹이 한 사발이 아닌 츄르(정식 명칭은 챠오츄르로, 경계심 많은 고양이도 일분 만에 들러붙게 만든다는 마성의 고양이 간식)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한 생명쯤은 책임질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 간절했던 소망들이 떠올랐다. 늙어서, 병들어서, 여건이 안돼서 혹은 그냥 유기되는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기에 더욱 신중했던 것 같다. 일월 말, 겨울이지만 그다지 춥지 않던 날에 고슴도치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피부병 때문에 얼굴에 곰팡이 딱지들이 몽글몽글 앉아있던 아이였다. 작고 귀여운 고슴도치들 사이에서 유난히 이 아이만 몸집이 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이 생겼다.
코를 치켜들고 여기저기 킁킁대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가시뭉치를 보며 이 아이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새로이 느껴보는 부담감이자 책임감, 그리고 설렘이었다. 고슴도치의 수명은 대개 사오 년 정도이며 반려인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십 년 정도까지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 테다. 처음이라는 핑계 하에 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이 이 아이에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벌써 동동이가 우리집에 온지 약 두 달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에는 인기척에 숨기 바쁘던 아이가 그새 무럭무럭 자라나 양손으로 겨우 받칠 수 있을 만큼 커버렸다. 얼굴을 온통 뒤덮던 곰팡이 딱지들도 말끔히 사라졌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동동이의 입양을 도와준 친구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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