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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날씨 맑음[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김연수 | 승인 2018.04.17 09:09
충북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13일 세월호 추모 메시지를 학교 정문에 매달며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충북도교육청

[논객닷컴=김연수] 이번 4월 16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비의 부재는 어쩌면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는 대답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니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벌써 4년’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은 나이였는데 나는 어느새 그들보다 한 뼘은 더 자라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렇듯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힐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울음으로 가득했던 날이 지나고 이듬해 봄 전국 대학교들에서 열리는 수많은 백일장에 참가했다. 이름 모를 대학교에서 원고지를 채워나갔던 것은 오직 대학 입시를 위해 수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백일장 시제로 세월호가 등장했다. 그때마다 느끼는 불편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백일장 심사위원들은 대체 무슨 의도와 생각으로 세월호를 시제로 낸 것인지 궁금했다. 백일장은 보통 짧으면 한 시간 반 길면 세 시간 동안 진행된다. 이 시간 안에 세월호가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며칠을 고민해도 쓸 수 없을 것 같았고 쓸 수 없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만처럼 여겨졌다. 입 밖으로 한 번 꺼내기조차 쉽지 않은 단어를, 사건을, 말을, 그 수많은 이름을 타인의 손에 무책임하게 던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것도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운 어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던 몇 해 전 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같은 의문을 품은 채 4월을 보낸다.

다루는 전공이 시와 창작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4월 16일마다 추모 글과 추모 시들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고 이후 생존자 및 유가족들의 글을 읽으며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슬픔에 공감했던 것과는 결코 비례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시인분은 본인이 사건의 학생인 것처럼 시를 쓰길 부탁받았고 그 시를 쓰는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술로 버티며 지새운 날도 많았으며 악몽에 시달린 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은 마치 자신인 것처럼 시적 화자가 되는 게 얼마나 미안하고 죄책감 느끼는 일이었을까. 담담한 말투였지만 깊게 묻어둔 슬픔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영원할 것 같았던 슬픔이, 그날의 사건이 조금씩 잊혀갔다. 각자의 일상이 바쁜 만큼 타인의 아픔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끔 낯선 이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이 무감각했던 가슴께를 툭 치고 간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남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저 노란 리본이 빛이 바래면 어쩌지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일 년 중 한 번쯤은 돌아봐 주길 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내년 오늘도 맑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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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ide040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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