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이 만난 사람] 폴 써로우·브루스 채트윈 통해 여행문학 눈떠

건설업계 관계자가 대학 시절 여행기를 펴냈다. 주인공은 손창성 현대건설 대리. 스스로 기록 중독임을 인정하는 그는 2008년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의 추억을 완벽에 가깝게 책으로 재생해냈다. 사진은 워크캠프 때 손 대리ⓒ북랩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우리는 여행에서 수많은 추억을 쌓지만 흘려보낸다. 추억은 빛바랜 앨범 속 감상으로 남겨진다. 일부 사람은 여기에 반발한다. 이들은 감상에 그치지 않고 추억을 기록으로 재생한다.

현대건설 홍보실 언론홍보팀 소속 손창성 대리도 그런 인물이다. 그가 쓴 ‘아이슬란드에서 보름간 살아보기’는 2008년 여름 워크캠프(해외 봉사활동)의 추억을 복원한 책이다. 이 책엔 날짜, 시각, 심지어 분 단위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가 적혀 있다.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는 2008년 8월 6일에서 20일까지 진행됐다. 참가자는 손창성 대리를 비롯해 총 15명(남자 5명, 여자 10명)이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한국, 일본에서 온 워크캠프 멤버들은 보름간 아이슬란드 해안을 청소하고 함께 놀면서 우정을 쌓았다.  

‘대기업 사원이 어떤 방법으로 책을 쓸 시간을 확보했는지’  ‘10년 전 일을 상세히 되살린 비결이 뭔지’ 등이 궁금했다. 의문을 풀려고 지난 20일 손창성 대리를 만났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책 쓸 시간을 어떻게 얻었나? 회사가 협조해주었나?

“따로 시간을 내 책을 쓰진 않았다. 기록은 2008년 끝냈다. 책이 완성되기 전까지 회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개인 차원에서 책을 펴낸 거다. 회사와 무관하다.”

-2008년에 이미 책 낼 생각이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 책을 내려고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10년간 기록을 묵혀뒀다. 지난해 우연히 기회를 얻어 북랩 출판사와 계약했다.”

-작가에 대한 욕망이 있나?

“맞다. 탈락했지만 신춘문예에 응모했었다. 군 복무를 하면서 병영문학상에 도전하기도 했다.”

-굳이 아이슬란드를 주제로 여행기를 쓴 이유는?

“대학 재학 중이던 2008년 1학기 영문과에서 하는 여행 문학 강의를 들었다. 폴 써로우(Paul Theroux)와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이 쓴 작품들을 배우며 이런 장르도 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나도 한번 써봐야겠다고 여겼다. 아이슬란드는 여행 문학을 배운 후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여서 수업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여행을 꽤 많이 다녔다고 들었다. 파리, 런던, 빈 등 얘깃거리가 많은 도시를 소재로 쓸 마음은 없었나?

“파리, 런던, 빈 등도 가봤지만 거기선 사람과의 교감보다 도시 역사나 볼거리 등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구상하는 여행 문학과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내가 파리를 대여섯번 갔지만 어떤 명소를 구경한 사실만 있을 뿐 뭘 느꼈는지 기억이 없다. 사실 파리에 갔으면 에펠탑을 가거나 맛있는 요리를 먹어야지, 기록할 여유가 어딨나(웃음).”

-몇 시에 배가 고파 무엇을 사 먹었다는 것까지 적혀 있다. 평소 기록을 꼼꼼히 하는 습관이 있나?

“맞다. 일기를 써도 상세하게 쓴다. 오늘 몇 시에 누구를 만났고 왜 만났는지, 지하철은 어디서 탔는지 등을 모두 적는 식이다. 업무 메모 등 다른 기록도 그렇게 한다.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의 경우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어 하루 3~5시간을 기록에 할애할 수 있었다.”

-약간 기록중독 같기도 하다.

“솔직히 부인하지 않는다(웃음). 기록을 꼼꼼히 하는 습관은 대학생 시절 시작됐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잖나.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과거는 잊힌다. 기억을 되살리려면 기록해놔야 한다. 물론 필기에만 집착하진 않는다. 시대 변화에 맞춰 동영상도 배울 계획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과는 영어로 소통했나? 대화에 어려움은 없었나?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아이슬란드어를 쓴다. 다만 나를 비롯해 워크캠프 친구들은 모두 영어를 사용했다. 현지인들도 우리와 얘기할 땐 영어를 썼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현지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이슬란드든 유럽 다른 나라든 영어는 대부분 통한다.”

-일상 회화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영어에 능한 비결은 뭔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룩셈부르크에서 산 영향이다. 그때 영어를 익힌 덕택에 지금도 영어 대화에 어려움이 없다.”

-워크캠프에서 낯선 외국인들과 별 어려움 없이 어울린 것으로 보인다. 혹시 갈등 상황은 없었나? 

“다들 국적이 다르기에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없진 않았다. 일단 말이 안 통하면 힘들다. 일본인 친구 한 명은 영어가 서툴렀는데 나중엔 다들 무시했다. 다른 친구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었다. 단체 활동을 할 의욕이 없어 보였다. 자신도 파리가 너무 복잡해 아이슬란드로 힐링 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갈등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다툼까진 안 갔다.”

-워크캠프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누군가?

“한국인 K, 일본인 Y와 친했다. 외국에 나가면 같은 문화권끼리 통한다.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친해지고, 한국인이 없으면 일본인과 잘 지낸다. Y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K에게 하지 못한 말도 했던 것 같다.”

-여행기엔 로맨스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혹시 워크캠프에서 경험하지 않았나? 아니면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책을 재밌게 하기 위해 양념처럼 넣을 생각은 없었나?

“책에 워크캠프에서 로맨스를 실현한 프랑스 남자와 스페인 여자 에피소드가 나온다. 나하곤 무관하다(웃음). 일본인 친구 한 명이 내게 사랑한다고 한국어로 말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고맙다는 뜻이었다. 중요한 건 사실 아니겠나.”

-앞으로 여행기를 낸다면 어느 나라에 대해 쓸 예정인가?

“탄자니아다. 나라 자체는 유명하지 않지만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잔지바르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2015년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광활한 자연의 산, 초원, 바다를 담고 싶다.”

-킬리만자로 등반 난이도는 어느 정돈가?

“킬리만자로 정상은 5985m에 달하고 기압도 국내 산과 다르나 목숨 걸고 올라가진 않는다. 4박 5일 코스가 준비돼 있고 도와주는 짐꾼들도 있다. 그래도 정상 등반 성공률이 30%에 불과할 만큼 힘든 여정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여행 초보자가 알아둘 팁이 있다면?

“여행보험 가입은 기본이다. 소지품을 도둑맞았다면 바로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써야 한다. 여권 복사도 따로 해 놓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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