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00억원 상당의 사재출연을 선언했다. 꼼수 없는 깨끗한 출연이다. 공동체 상생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라고 당부했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안 원장의 사재출연 발표는 시기적으로 절묘하기도 하다. 비록 그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실행한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한 시기는 참으로 잘 선택된 것 같다. 그가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은 공존하고 따라서 단정하기가 아직은 이른 시점이다. 바로 이럴 때 사재를 내놓겠다고 밝표했으니,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것 같가.
 만약 극가 실제로 정치에 뛰어들어 선거에 나서거나 지원하게 될 경우에는 이처럼 사재출연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그럴 생각이 없다면 불필요한 억측을 피하기 위해 정치판에 들어갈 여지가 없을 때 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내년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말이다.

그런데 안 교수는 바로 이 시점에서 사재출연을 발표함으로써 후자는 아님을 보여준 듯하다. 사실 지금은 그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는 아니다. 우선 여당과 야당 사이에는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냉엄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해 쇄신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당이야 그렇다 치고, 야당도 지금 다소 복잡하다.
야권 통합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제 막 시동이 걸린 상태이고, 민주당 내부에도 통합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좀더 진보적인 정치세력은 별도의 정당을 꾸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안철수 원장이 설사 정치에 진입한다고 해도 지금은 들어가서 뛸 공간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안 원장은 현재의 야권에 더 없이 필요한 존재가 돼 있다.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안 원장의 힘은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야권은 끊임없이 안 원장에게 손짓하고 있다.

그런 손짓에 안 원장은 이번에 사재출연으로 우회적인 화답을 보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본인이 분명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보다 더 무거운 몸짓으로 자신의 의지를 과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설사 그런 뜻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이번 결정을 지켜보는 많은 시민들은 그를 정치쪽으로 한 발 더 밀어넣을 것이다. 결국 안 원장은 정치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모양새가 됐다.

전망도 밝다. 최근 나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그가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여당의 후보로 가장 유력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멋진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서 야권이 분열되지 않고 세결집만 잘하면 전망은 더 밝아진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은 안 원장 자신이 해야 된다. 결심을 하더라도 그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선택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여전히 미지수이고, 앞으로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 원장은 이미 그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 어쩌면 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운명의 여신이 그를 그 길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운명적으로 그 어떤 길로 끌려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반드시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도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경우 운명의길이라고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안철수 원장도 바로 그런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한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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