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저녁이 맞나, 저녘이 맞나? 들녘은? 새벽녘, 해질녘은?

간혹 헷갈리는 표현들이죠.

저녁 들녘 새벽녘 해질녘이 표준어이고, 저녘은 비표준어로 돼있습니다. 그러나 저녁 역시 본래 ‘저녘’이 말뿌리이며, 때(時)가 아니라 방위(方位)를 나타냈던 말이란 게 정설입니다.

“낮이 밤으로 바뀌면서 어두어지는 시간을 저녁이라 하는데...(저녁은) 방위를 나타내는 공간개념의 어휘로 황혼시간을 가리키는 시간개념을 형성하는 예... 저녁은 해저녁의 준말이고 이는 다시 해질녘으로 풀이된다. 저녁의 저는 해가 진다는 뜻의 져(落) 또는 저물녘(暮)이 줄어든 꼴의 말이며, 녁이라는 말은 해가 동녘에서 떠서 서녘으로 진다는 말에 나오는 동녘(東便)이나 서녘(西便)에서처럼 방위를 지칭하는 녘이라는 말의 옛 표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방위를 나타내는 녘이 때를 나타내는 말로 바뀌어 해뜰녘이니 해질녘이니 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최창렬의 어원연구)

저녁이란 말이 애초 해가 지는 쪽(해질녘/해저물녘), 즉 방위를 나타냈다가 시간개념으로 바뀌었다는 학설입니다.

해질녘@동이

따라서 저녘이 한때 표준어였으니 ‘저녘’이라 한들 과히 틀리다 할 게 없습니다.

(해)질녘/(해)저녘에서 질녘>지녘/저녘>지녁/저녁으로 변해왔지 싶습니다. 애저녁(애+저녁/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이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 ‘애지녁’으로 불리는 데서 볼 수 있듯 ‘지녁’ 역시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동틀녘 같은 표현도 애초 동트는 쪽을 뜻하다 시간개념이 녺아든 뒤 주로 시간개념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물론 동녘(서녘 남녘 북녘)이나 들녘(산녘 강녘)처럼 ‘녘’이 방위개념으로만 쓰이기도 합니다. 이 때의 ‘녘’은 동쪽의 ‘쪽’이나 동편 서편할 때의 편(便), 여편네 남편네의 편(便)과 쓰임새가 같다 하겠습니다.

‘이녁’(듣는 이를 조금 낮추어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가리킬 때도 쓰죠. 상대를 지칭하는 이녁의 ‘녁’ 역시 녘이나 상대를 뜻하는 쪽, 편과 같습니다. 그 점에서 녁과 녘은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녘(時)과 뜻이 비슷한 ‘무렵’ 또한 시간개념이지만 녘과 다르게 방향어로는 쓰이질 않습니다. 해질녘이나 해질 무렵. 해뜰녘이나 해뜰 무렵 등은 표현이 자연스럽지만 ‘메밀꽃 필 무렵’과 달리 ‘메밀꽃 필 녘’이란 표현은 부자연스럽죠.  때를 의미하는 녘의 사용범위가 무렵보다 제한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녘이 태생적으로 방향어였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때와 방향을 애써 구분하지 않고 혼용했던 흔적은 또 있습니다. 조상들은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의 12지를 시간(時)과 방위(方位)에 대응시켜 함께 썼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선 12지보다 다소 지칭하는 범위가 넓은,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같은 시간개념어를 주로 썼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해시계 물시계를 발명해가며 어린 백성들의 생활에 과학적 시간개념을 도입하려 했지만 민초들은 시간을 얼추 나타내는 어휘들을 사용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꽤 세부적으로 나눠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벽사이’로 해가 막 들어온다는 뜻의 새벽은 해 뜨기 직전이며, 새벽보다 이른 시간을 꼭두새벽이라 했습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아침과 낮(점심) 사이는 새참이라 해서 중간시간을 어름했습니다. 낮 중에서도 한가운데를 대낮(한낮)이라 했고 저녁(해질녘) 바로 직전은 이른 저녁이란 뜻에서 애저녁, 저녁 때가 지나면 밤이라 했습니다. 이후 밤이 매우 깊었을 때는 오밤중이라 불렀죠.

꼭두새벽 새벽 이른아침 아침 낮(대낮/한낮) 애저녁(초저녁) 저녁 밤 한밤중(오밤중) 등등으로 하루의 생활시계를 맞췄던 겁니다. 근대식 24시엔 못미치지만 상당한 정도로 시간대를 쪼개 활용한 지혜가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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