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미묘한 시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이 사망했으니, 안팎으로 불안하다.

우선 북한 내부적으로 권력승계 구도가 확실하지 않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이 후계자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힌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도 않다. 김정일이 사망한 다음 북한에서 김정은을 ‘영도자’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장에 불과하다. 국방위 부위원장 같은 직함도 갖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다. 북한의 권력체제가 봉건왕조와 거의 유사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셋째 아들이라는 위치는 불안하다. 첫째와 둘째가 언제든 모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처럼 첫째와 둘째가 확고하게 밀어주는 체제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가 불안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바깥으로 떠돌아 모반을 꾀할 힘은 없어 보인다. 대신 고모부 장성택 등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로 인한 파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외적으로는 핵실험으로 촉발된 미국 등 외부세계와의 갈등과 제재가 최근 변화할 조짐을 보일 뿐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남북한 관계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얼어붙었던 관계가 풀릴 듯 말듯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라고는 없는 상태이다. 김일성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 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기 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안팎으로 새로운 가닥을 잡힐 때까지는 또다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당장 아무것도 진전시키기 어렵고 새로운 것을 하기는 더더욱 곤란하다. 가장 손쉬운 남북한 스포츠 교류와 협력도 2008년 이후 단절된 상태이지만, 언제 재개될 수 있으리라는 기약도 없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애매하고 진공과도 같은 상태이다. 남북한 관계나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조금만 더 안정돼 있다거나 북한의 권력승계만이라도 확실해진 다음 김정일이 사망했다면 이처럼 불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안도하는 것은 국내외 반응이 비교적 침착하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한결같이 바라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새로운 권력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이 역시 섣불리 내다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흘러온 대세로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간다면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한 사이의 경제협력과 평화정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간다면 한반도는 예측불허 상태로 빠져든다. 위장 안에 들어있는 밤송이 같아진다.

어떤 경우이든 한반도는 이제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에게 더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대비를 요구한다.

첫째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끌기 위한 안정되고 확실한 대화와 교섭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교류협력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적대감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김정일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런 걸림돌이 없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적대감에는 충분한 이유도 있었다. 그렇지만 김정은에게는 그들의 자식이라는 죄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전과 같은 감정적 대응을 고수하기보다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북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안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세력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과거와 같은 감정적인 대응은 사태의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침착하게 북한 체제를 안정시키면서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끌고 나오지 못하고 더 거칠고 고집스럽게 만들 뿐이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무조건 강화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북한에 변고가 생긴다면 극심한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국내 금융시장의 동요는 그런 혼란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의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돼 대외신인도가 급전직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남한이 엄청난 규모의 통일비용을 홀로 부담해야 할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의 붕괴로 인해 대량난민이 발생하고 남한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태가 빚어질 경우 남한은 물론 중국도 긴장상태에 빠지고 한반도 주변에 다시 열강이 마수를  뻗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중국이 개입하는 사태가 우려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보수세력이나 진보세력 가리지 않고 모두 차분하게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정착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한반도의 안정은 다른 누구보다 우리 대한민국의 안정이요 이익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짊어지게 될 통일비용 부담을 덜어 줄 것이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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