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상의 일본기업탐구 15

오늘은 천년된 인절미 가게 이야기. 이 집은 서기 1000년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1013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바로 교토시내 북쪽 이마미야(今宮)신사 앞에 위치한 이치와(一和). 교토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이치와에 들러 인절미 떡을 먹으면서 “아, 내가 드디어 교토에 왔구나”하고 실감을 하게 된다는 유명한 가게이다. 그만큼 이치와의 인절미 떡은 교토에 온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맛봐야할 명물로 통한다.
 


필자가 이치와를 처음 방문했던 4년전 9월 1일, 교토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기온이 32도에 오를 정도로 아주 무더웠다. 우선 이마미야 신사를 이정표로 해서 찾아가는데 이마미야신은 질병을 퇴치하는 신이라고 알려져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신에게 인절미 떡을 바치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이치와에 당도하자 그 무더운 날에 여주인은 숯불을 끼고 앉아 인절미를 굽고 있었다. 손톱만한 인절미 떡을 대나무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굽는데 한 접시에 담을 12개를 굽는데 15분이 꼬박 소요되었다. 필자도 궁금한 마음에 얼른 사먹어 보았다.
 
숯불에 구운 인절미를 흰 된장과 조청을 섞은 소스에 찍어먹는 것이었는데 첫맛은 달작지근하면서 구수한 끝맛이 있었다. 사장은 무척 바쁜 듯 했지만 한국에서 찾아왔다는 저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해주었다. 현재 이치와의 주인은 하세카와 미에코(長谷川美惠子)씨로 24대 째.

그간 일본의 많은 명물 가게들을 다녀봤지만, 이치야는 참 특이한 원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일자상전(一子相傳)이란 제도. 이것은 한 자식에게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도 아들이 아니라 반드시 딸로 계승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음식장사이기 때문에 여성의 섬세함과 맛을 내는 솜씨가 남자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대신 아들의 경우는 가게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주재료인 쌀이나 숯을 납품받는 일과 가게의 개보수를 책임진다고 했다. 이렇게 아들과 딸의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 놓았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은 딸이다. 바로 옆에 5,60명 정도의 손님들이 앉아있어서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먹을 수 없는 아주 소박한 맛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감상을 얘기한다. 

봄, 가을의 수학여행철에는 전국에서 온 중고등학생들이 하루에 3천 명씩 들이닥치고 이마미야 신사에 행사가 있는 4월이면 전국에서 온 수만명의 참배객이 이 떡집에서 꼭 한접시를 먹고 간다고한다. 그런데 저렇게 숯불을 끼고 앉아서 꼬박 구워야하니 이거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가게를 하면서 힘들지 않앗느냐고 그랬더니 하세카와씨는 자신이 이일을 해오며 내가 언제까지 이 떡을 구워야 하나”란 말을 평생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날이 추우면 추워서 힘들고, 날이 더우면 더워서 힘들고, 손님이 없으면 없어서 힘들고, 손님이 너무 많으면 많아서 힘들고... 그 때마다 푸념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할머니도 한결 같이 내 조상들이 지난 1000년간 이 일을 해왔는데 내가 힘들다고 그만둔다면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어떻게 어머니의 얼굴을 대할 것인가... 하면서 자신을 다잡았다고 한다. 사실 그 어머니, 할머니들 역시 왜 이런 번민이 없었겠습니까.
 
가게 주인 하세카와씨에게 “그동안 돈은 많이 벌지 않았을까요”하고 물었다. 주인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떡 굽는 일은 종업원에게 맡기고 뒤에서 감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조상으로부터 땀과 눈물과 정성을 이어받았으므로 앞으로도 땀과 눈물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1000년을 더 이어가지 않겠는가”라고.
 
 


실제로 이치와는 천년된 가게답게 철두철미한 구석이 많다. 쌀은 일본 내에게 쌀맛이 가장 좋다는 네부타 마을의 일등급만 사용하고 숯 역시 고지현서 생산되는 특등급 비장탄만을 사용하는데 그 지역 비장탄 숯은 선물용 세트가 따로 나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1kg에 약 2만 3천원정도 한다. 이치와는 하루에 60kg을 써야하니까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셈.
그런데 이 숯으로 구워야 인절미 떡의 특유한 비린내가 사라지면서 최고의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가게에서 쓰는 보통 숯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1000년간의 비결을 담은 특제 흰 된장과 조청을 섞어서 소스를 바르게 된다. 그러다보니 제조원가가 비싸서 500엔짜리 인절미구이 1인분을 팔아봐야 마진율이 10%, 즉 50엔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결론을 낸다. ‘그래봤자 떡장사이지만 그래도 떡장사이다’라고. 남이 크게 알아주지 않는 떡장사일지 모르지만 천년간 조상이 내려준 전문기술을 가지고 제일 맛있는 떡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으니 계속 이 가게를 지켜가야 한다는 말이겠다. 하세카와씨의 차기 계승자는 현재 39세. 지금 집에서 자식들을 기르고 있는데 시간나는대로 나와서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

하세카와씨의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한 비법, 전략을 캐내려던 나는 그 천년의 인내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비록 인절미 한 접시이지만 1000년간 목숨을 걸어왔다는 떡 한 접시는 음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국보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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