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정말 평등할까? 말로 하기는 쉽지만 진심을 다해 실천하는 건 어렵다. 특히 유교사상이 오래 머문 한국은 평등과 거리가 멀다. 수평관계, 평등한 조직사회를 꿈꾸는 회사가 느는 추세지만 여전히 수직관계, 상하관계인 곳이 많다. 취업을 위해 관련 직종 경력을 쌓고자 시작한 인턴 생활을 하면서 특히 뼈저리게 느꼈다. 일을 하는 내내 나보다 3~4살 많은 동기 남자는 ‘00씨’로 불렸지만 나는 마지막 날까지 ‘00아’로 불렸다. 그렇게 불린 이유가 사장님이 나를 딸처럼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어린 여자이기 때문인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하지만 사장님께 저도 ‘00아 말고 00씨로 불러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그 외에도 회식 자리에서 양옆에 나보다 높은 사람이 앉을 때면 늘 난감했다. 특히 처음이고 대부분 초면인 경우에는 대체 오른쪽과 왼쪽에 앉은 사람 중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누구에게 물어볼 새도 없이 멀리서 건배를 외치면 양옆을 보고 눈치껏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 50:50 확률이 틀렸을 때는 정말 큰 낭패였다. 맞은편에 앉은 다른 직원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죠’라고 말해줬을 땐 고맙기보다는 틀려서 큰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가뜩이나 술도 약한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며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사람들은 이것도 사회생활의 연장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회포를 풀고 즐기자는 의미에서 마련한 회식이라기엔 계급상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내가 계속 눈치를 보고 맞춰야 하는 구조였다. 조금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외치는 시대에 걸맞지 않았다. 확실히 존댓말도, 회식 문화도 없는 외국이 훨씬 살기 편하고 평등하다고 느낄 것 같았다.

맨 처음 ‘꼰대’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써서 듣기 불쾌했는데 요즘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인턴, 학과 내에서까지 불평등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과 직면하고 쉽게 노출되다보니 ‘꼰대’라는 단어의 탄생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구는 ‘꼰대’들을 볼 때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돌이켜보면 2명 이상이 함께할 때 그게 아무리 친구사이라고 하더라도, 위아래가 은근하게 성립될 때가 종종 있었다. 정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드물다. 오히려 내 성향과 맞지 않는 타인과 함께 해야 할 때 최대한 상대 의견에 동의하며 맞추며 관계를 유지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어떤 무리나 인간관계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싶어 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심지어는 자신과 의견이 조금 다르다고 토라지거나 대놓고 따돌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각자가 평등한 사람이라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는 평등한 사회라기보다 평등해 보이려고 애쓰는 사회에 가깝다. 평등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타인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평등이 이루어지곤 한다. 학교든 회사든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쏟는 시간과 노력은 다르지만 똑같은 보상을 받는 일이 잦다. 대표적인 예가 팀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평등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누군가 희생당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부분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공평하게 구분하고 부족한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 그러면 야근, 초과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군대를 다녀온 남자 사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줄 때 여자 사원에게는 육아휴직과 더불어 출산, 육아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요즘 20~30대 여자들이 특히 결혼과 출산에 극도로 부정적인데 그것은 아마도 청춘을 바쳐 일군 커리어와 직업을 결혼, 출산, 육아로 한 순간에 잃는 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만해도 육아휴직 후 돌아오면 그 사람의 책상이 직장 내에서 사라져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저조한 출산율을 비판하기 전에 곳곳의 불평등한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희생 없이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두려움 없이도, 모두 평등하게 같은 걸 경험하고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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