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상의 일본기업문화탐구 19-교토의 마이센도 부채

일본사람들은 아직도 부채를 많이 씁니다. 일본에는 부채의 종류도 참 많죠.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쥘부채가 있고, 여름용 부채가 따로 있습니다. 여름용 부채는 디자인이 시원하고 가벼운 소재를 쓰죠.

또 가정집의 장식용 부채가 따로 있고,히노키 소나무 즉 편백나무로 만든 부채를 따로 구분합니다..또 차를 마시는 다회를 할때 쓰는 부채도 따로 있습니다. 이 경우의 부채는 그림이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 그 특징이죠.

다도의 정신이 소박,검소이므로 부채도 거기에 맞도록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 절에서 의식을 지낼 때 쓰는 부채도 있습니다.

헌데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시대에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알려면 휴대폰에서 가르쳐주는 시간이 더 정확하죠. 말하자면 시계는 이미 시간을 가르쳐주는 기능은 상실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계회사들이 모두 망했어야 하는데 망하기는 커녕 억대의 고가 시계들이 오히려 중흥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즉 손목 위의 예술로서 시계는 악세사리 혹은 부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죠.
이것이 손목시계의 개념의 진화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부채가게에 갔을 때 첫 번째 던진 질문도  “요즘도 부채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돌아가고,최소한 선풍기라도 있는 시대에 그까짓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죠. 그러나 회사 측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부채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필요없는 물건이지만, 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부채를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가는 5천원도 안됩니다. 대나무 쪼개서 거기에 창호지 한 장을 붙이면 되니까요? 이렇게 만들면 2,3만원 밖에 못받죠.

그런데 그 2,3만원짜리 부채의 창호지에 당대 일류화가의 풍경화가 그려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림을 그려넣은 순간,그것은 2만원짜리가 아니라 2천만원짜리, 아니 그 이상이 됩니다. 이것이 예술의 측면입니다.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적인 측면은 상실했지만, 대신 예술의 측면을 살리므로 부채라는 무용지물을 고가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사람들 중에 잘 사는 집엘 가보면 거실에 길이가 2-3미터에 달하는 대형부채가 걸려있고, 그 앞에 수억원짜리 닛폰도 즉 일본 명장의 칼이 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부채나 닛폰도가 모두 기능적으로는 모두 필요없는 물건입니다. 요즘 총이나 대포가 있는 시대에 닛폰도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부채도,닛폰도도 모두 일본인들의 정신의 상징입니다. 바로 그 부채를 들여다보면 금박,은박,자수가 놓여져있고, 거기에 일본의 풍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부채들은 값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합니다.

또 기업체의 접견실 같은 곳에 가도 수억원짜리의 대형부채가 걸려있는 것을 종종 보게됩니다. 또 일본의 일류호텔에서는 에어콘이 빵빵 돌아가고 있는데 부채를 꺼내서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신사나 아주머니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쥘부채로 길이가 20센티 정도 밖에 안됩니다.

호텔의 커피숖에서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고 있는 사람을 보게되면 웬지 멋과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 부채들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도 아름다운 원화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비록 작은 쥘 부채이지만 누군가 당대의 명장이 그린 그림이 그려져있는 것이죠. 이런 경우 그 부채의 가격은 수천만원짜리입니다. 하나의 예술품이죠. 부채가 기능이 아닌 예술로서 승화되어,자신의 부와 권위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 전국에는 수백 개의 부채가게가 여전히 성업 중입니다.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부채가게를 꼽으라면 서기 791년에 창업하여 1200년 역사를 가진 교토의 마이센도(舞扇堂)일 것입니다.
마이센도 역시 부채를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벌써 망했어야 됩니다. 즉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결국 작년 말에 도산했는데, 부채 역시 에어콘이 나오면서 망했어야하는 산업입니다. 그런데 망하기는 커녕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마이센도는 ‘신감각의 부채를 늘 ’발신(發信)‘하는 곳’이라고 스스로를 평합니다. 즉 부채산업은 기능적으로만 가면 망하니까, 예술로서 가야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의 이념도 감성창조입니다. 감성창조는 실용적이면서도 선물했을 때 받는 사람이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죠. 선물받는 사람의 만족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그려진 그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즉 부채의 기능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성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디자인이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니쥘부채인데요. 펼쳤을 때 폭은 20센티 즉 딱 한뼘이며, 상하는 10센티 반뼘으로 여성들의 핸드백 속에도 충분히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부채로서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채로서의 효과는 분명히 있죠. 그러면서도 최첨단 분위기의 디자인을 그려넣어 부채가 아니라 마치 악세사리처럼 꺼내서 펼쳐들었을 때 깜찍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죠. 10,20대 여성들에게 아이디어로 승부한 것이죠.

마이센도가 판매하고 있는 부채 ‘회선’의 경우 부챗살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위에 소나무 혹은 대나무, 벚꽃, 봉황, 단풍 등을 그려 넣는데 개당 가격은 최하 9만4500엔부터 15만7500엔 정도이니 최하13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가 됩니다.

또 종이부채의 경우도 부채에 각종 금 · 은박으로 그림을 그려 넣고 나름대로 풍류, 백죽 등 이름을 붙여 판매 하는데 이 역시 개당 3천엔에서 1만엔 정도를 호가합니다. 부채는 여성용과 남성용이 다르죠.
여성용 부채의 경우 그림이 곱고 화사하며 남성용 부채의 경우 그림이 장중하고 무겁습니다. 이 부채 역시 가격이 개당 3천엔에서 3만엔 사이죠. 마이센도는 그 부채를 교토 내에 8개의 지점과 전국의 유명 백화점에서도 판매하고 있죠.

몇 년전부터 마이센도는 교토 기온지점에서 부채만들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신청자에 한해 90분코스로 부채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해주죠. 물론  2100엔 정도의 돈을 받지만, 점차 잊혀져가는 부채문화를 살리고, 그 아름다움을 직접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또 호텔 등에 단체로 여행온 관광객이나 수학여행 온 중고교생들을 위해서 숙소인 호텔이나 여관까지 강사가 부채재료를 가지고 찾아가 가르치기도 합니다.

상당히 적극적인 마켓팅이죠. <고객님이 만족하시는 그 순간이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이다.> 즉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디자인을 다듬고 다듬겠다는 말입니다.

마이센도의 가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우리가 아무리 부채를 잘 만들었다고 해도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는 얘기죠. 마이센도는 그렇게 1200년간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고집으로 시대의 요구와 동떨어진 제품을 만들었다면 아마 그들은 1200년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대와 고객의 니즈에 맞춰준다는 개념의 진화, 그리고 거기에 자신들만의 기술을 더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지금까지 일본 최고의 부채가게로 살아남았을 것입니다./논픽션 작가, <일본의 상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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