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식목일(4월 5일)이 다가옵니다.

한두세대 전만해도 식목일이면 초중고생들까지 동원돼 이산 저산 나무를 심었습니다. 삼림이 울창해지며 식목일도 슬며시 공휴일에서 지정해제됐지만 이즈음 기후변화는 또 다시 나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삼림의 대규모 훼손이 대기오염과 홍수 등 자연재해 빈발로 이어지고 있어서 입니다.  

나무는 '왕권의 상징'으로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밀리지 않는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대목으로  '뿌리깊은 나무'란 왕권의 튼튼한 기반을 이릅니다.

남간은 나무의 고어,남그에 주격조사(는)  합쳐진 말. 남그나므>나무로 변해왔습니다. 생소해 보이나 나막신(옛날 비올 때 신었던 나무로 만든 신)과 나막대기 등엔 남그,나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나막대기는 ‘나’가 탈락하며 막대기로도 불렸습니다. 나무 막대기라고도 했는데, 이는 초가집,역전앞과 같은 동의중첩어죠. ‘대기’의 ‘대’는 기다랗다는 뜻이고, ‘기’는 접미어입니다. 막대기를 더 줄여 막대라고도 했습니다. 막대(기) 모양으로 그래픽을 표현했다 해서 막대 그래프로도 불렸습니다.

나무=낭구. 소낭구(소나무) 참낭구(참나무) 밤낭구(밤나무) 뽕낭구(뽕나무)...낭구 역시 남그에서 분화된 말로 아직도 일부지방에선 '나무'보다 선호되는 표현입니다.

자료사진@오피니언타임스

제주도에서는 입춘 때 굿놀이를 하는 데 마지막 행사로 낭쉐몰이라는 걸 합니다.

“입춘이 되면 제주에서는 ‘입춘굿’이 펼쳐진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99년 ‘탐라국 입춘굿놀이’로 복원돼 전승되고 있다. 입춘굿의 피날레는 ‘낭쉐몰이’이다. ‘낭’은 나무를, ‘쉐’는 소를 이르는 제주말이다. 나무로 만든 소에 쟁기를 매달아 끄는 놀이이자 의례이다”(김준의 맛과 섬/조선일보 2020.1/29)

나무의 방언이면서 고어인 낭구가 ‘낭’으로 한번 더 축약돼 제주언어로 살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나무는 생활에서 없어선 안될 필수품(땔감)이었습니다. 땔감 구하러 가는 걸 시골에선 ‘낭구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도시인들에겐 “이게 뭔 말인가?” 생뚱맞게 들렸을 법한 표현이죠.

낭구할 때는 생가지도 꺾었지만 죽은 가지들을 먼저 잘랐습니다. 죽은 가지가 생가지보다 더 잘 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은 가지를 가져오는 행위는 산림감수(산림을 지키고 관리하던 공무원을 지칭)들이 상대적으로 용인해줬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죽은 가지들(나무에 붙은 채)은 ‘삭장구’(삭+장구) ‘삭정이’라 했습니다. 삭은 '삭았다’(말라 죽었다)는 뜻.  ‘장구’ '정이' 는 ‘낭구’에서 변화된 말로 삭낭구>삭장구>삭장이,삭정이를 거쳤다고 봅니다.

보리고개를 넘어야 했던 시절엔 밥먹고 나면 산으로 '낭구하러' 다녔습니다. 지게 지고 산에 올라가 삭장구 꺾고 솔가지를 긁어 한짐씩 지고 내려왔습니다. 나무를 전문으로 해서 내다파는 나무꾼이 생긴 것도 땔깜 마련이 그만큼 녹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이야기 속엔 이렇게 고달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얼마나 나무를 해다 땠으면 산이란 산은 민둥산 천지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70년대 전후 산림녹화 사업이 강력 추진되고, 연탄이 보급되면서 민둥산이 차츰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울창해진 산림은 ‘나무하러 간다’는 말이 이제 사어(死語나)가 됐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나무를 세는 단위로 ‘그루’란 표현이 있습니다.

“그루의 어근은 굴(글)로서 나무의 뜻을 지닌다.서까래 넉가래 가래의 어근 갈 역시 나무의 뜻. 등걸의 걸도 나무의 뜻을 지닌다” (국어어원사전/서정범)

등걸(나무를 베고 난 밑둥)의 ‘걸’이 ‘그루’에서 오고 ‘서까래’‘너가래’ 역시 형제어라는 학설입니다. 등걸이 나무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인 점으로 미뤄 밑둥그루가 둥그루>등걸로 변화됐지 싶습니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우리말, 낭구와 등걸...

한때는 귀하디 귀한 땔깜의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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