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학 전 서울신문 전무

[논객칼럼=곽진학]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초췌하고 야윈 한 노인이 긴 병원 복도를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중증질환자로 진단을 받아 무서운 터널 속의 검사를 받기 위해 힘든 걸음을 옮기던 그는 이제 영혼마저 잿빛으로 시드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창밖에는 여리고 잔잔한 빗물이 빛과 어둠을 헤매고 있었고 갑자기 쏟아진 천둥 같은 통곡은 절망에 갇힌 내 가슴을 요란스럽게 두드렸다.

나는 누구며 이 순간 나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허공을 가로질러 칠흑 같은 미로를 찾아 헤매는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생명과 죽음은 아득한 먼 곳에 서로 이별해 산 것이 아니라 꽃과 벌처럼 내 육체의 등걸에 함께 뒹굴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무심코 지난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긴 장마에도 대학(병원)의 캠퍼스는 여전히 싱그럽고 풋풋했다. 젊음이 있고, 꿈이 있고 자유가 있어 그런가? 그들의 꿈은 현실의 땅 위가 아니라 별이 빛나는 하늘을 응시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것일까? 배낭을 메고 후줄근한 옷을 걸쳤지만 그들의 모습은 더욱 빛나고 진지해 보였다. 부러웠다. 우산을 펴고 비에 젖은 벤치에 풀석 주저앉아 짙은 먹구름에 꼭꼭 묻어 놓았던 내 삶을 낱낱이 쏟아 내었다.

@오피니언타임스

온갖 새들이 노닐다간 나무들도 나와 같으리라.

헛 살았다.

스쳐지나간, 잃어버린 세월이 무척 아쉽고 야속하다.

가만히 있어도 서럽고 눈물이 난다. 살아온 날보다 헤어질 날이, 다가오는 것 보다 떠나는 것이 더 가까워 그럴까?

자식들이 귀찮아하는 잔소리도 그만두어야겠다. 이제 모두 잊고 다 내려놓아야지.

삶의 부족이나 결핍에 대해서도 거북해 말고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세기, 문명과 등진 캄캄한 산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다녔다. 당시 흔치 않은 일이다. 전답과 곡식을 팔아 학비를 보내주시면서도 단 하루, 단 한 번도 지체한 일이 없었다. 그런 부모님께 손 한번 덥석 내밀지 않았고 그 후 홀로되신 어머님께도 문안편지 한번 쓰지 않았다. 얼마나 억울하고 괘씸하셨을까? 정말 불효하고 '터무니없는' 자식이었다.

은혜는 강물에 새긴다고 하였던가?

언젠가 고향 인근 지방으로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뵈었다. 그때 이미 병색이 완연하셨다. 아무 내색 않으시고 그래도 자식이라 반가워 눈물짓고 헤어질 때 통곡하신 어머니셨다.

아내에게는 늘 까칠하고 삭막한 남편이었고 형제들에게도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못한 변변찮은 맏형이었다.

좋은 분들을 만났다. 어떻게 이런 분들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돌아보면 먼 길을 달려왔다.

내 인생을 두 단어로 집약하면 후회와 감사다. 후회는 나를 소멸시키는 과정이었고 감사는 나를 새롭게 빚어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더 무엇이 필요하며 부족하단 말인가?

감사하며 선하게 사는 것이다. 아무것도 탐(貪)할 것 없다. 건강하게 가족들과 오손도손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축복이고 행복이다. 팔십을 살아온 후회스러운 내 고백이자 결론이다.

힘든 치료과정이 그래도 순조롭다. 삶의 고통을 아는 자, 병든 자만이 정직한 기도를 할 수 있는가 보다.

무쇠도 혼자 우는 아픔이 있다고 하던가?

얼마나 더 살지 묻지 않기로 했다.

여름은 멀쩡한 노인들을 병나게 했는데 높푸른 가을하늘은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줄지?

폭풍이 그친 바다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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