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영화 <밤쉘>은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큰 관심을 모았다. 보수적인 미국 방송국 폭스 기업에서 벌어진 실화 성희롱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실제 인물들의 싱크로율을 높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외 정치계, 예술계, 체육계 등에서 성희롱, 성폭행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폭로되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유명 영화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 국내 여러 배우 등 연예계에서 높은 신임을 받던 유명인들과 관련된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계 외에도 문단, 예체능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청렴결백해야 할 정치계 인물들마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밤쉘>은 여주인공이 겪은 성희롱, 부당한 일을 바탕으로 거대한 미국 기업 내 인물을 상대로 혼자 소송해 승소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폭스 기업을 이끌어 큰 발전을 이룬 대표적 인물 ‘로저’가 바로 그 소송 상대이다. 그는 TV=시각 매체라며 방송을 더욱 자극적으로 연출하여 시청률을 올리고자 한다. “치마는 짧게 구두는 높게, 카메라는 다리가 보일 수 있게 풀숏으로 잡아라”라고 소리친다. 그의 고함 덕분에 짙은 화장을 한 채 발뒤꿈치가 까져가며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 직원들이 종종 걸음으로 폭스 기업 내를 돌아다닌다. 예쁘게 치장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바비 인형을 연상시킨다.

로저는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여직원들에게 성공을 빌미로 비상식적인 것들을 요구한다. 주인공은 이런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악행을 막기 위해 긴 시간 계획을 세우고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그녀는 그를 성공적으로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그 덕분에 폭스 내에서는 이런 악습이 끝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저처럼 누군가의 부푼 꿈을 놀잇감 삼아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의 행보는 가까운 곳에서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났음에도 묘한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실제로 나와 주변 지인들이 겪은 농담조의 말들은 우리를 종종 불편하게 했지만 반박하거나 크게 대응할 수 없었다. 그들의 손에 우리의 성적이, 승진이, 사회생활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회식 자리에서 한 직장 상사가 “A같은 아내가 있으면 집에 일찍 들어갈 것 같다” 혹은 “(A의) 남자친구가 잘해주냐” 등의 언행을 일삼았다. 해당 자리에서 적절하지 못한 질문을 하면서도 그는 당당했고 오히려 질문을 받은 당사자만 곤란해졌다. 안부를 물어보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반문한다면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의 연애사에 관여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지 묻고 싶다.

그 외에도 한 교수가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이번에 추석 연휴가 긴데 남자친구와 여행가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례가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추석 연휴를 잘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남자친구가 있는지,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의도를 비쳐 어떻게 답장해야 좋을지 한참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런 식의 농담이나 언행이 불편하다는 표현을 내비칠 수는 없다. 지금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흐리는,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센스 없고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밤쉘 역시 유머러스함으로 치장한 위와 같은 농담들에 관해 비판하고 꼬집는다. 이런 농담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서일 것이다.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화가 진행되고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건 분명 큰 변화이다. 이제 더 이상 쉬쉬하고 묵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밤쉘은 또 다른 문제를 언급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과정을 영화 안에 담아냈다. 중년 여성이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서거나 바지를 입고도 폭스에 출근하는 여직원 등을 보여주는 등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자신의 민낯을 공개하는 할리우드 여배우, "동안 외모는 모두 다 보정의 힘"이라고 말하는 이효리의 발언들 역시 정형화된 미모, 미적 기준에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전부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론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미적 기준을 등장시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로 인해 조금만 볼살, 뱃살이 쪄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굶는 10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 아이들은 올리브영 립제품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있는 그대로가 예쁜 시기임에도 모두들 마르고 예쁜 모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말과 행동 등을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장을 덧칠해도 부족하게 느껴지던 내 학창시절이 있기에 누구보다 아이들의 불안감을 잘 안다. 하지만 각자 불리는 이름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 자유롭게 뛰어 놀고 개성있게 자라나 크고 작은 꿈을 꾸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이니 부디 누구든 무리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잃는 일이 없길 바란다.

단시간에 극적인 변화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인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천천히 합심해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민낯이어도, 조금 통통해도, 얼굴이 까무잡잡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자연스럽고 멋지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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