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앞 조형물=우달 칼럼니스트
롯데월드 앞 조형물=우달 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우리가 생활하는 건축물 주변에는 ‘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조형물들이 꼭 있다. 아파트 단지의 화단이나 직장 빌딩의 한 귀퉁이에는 그럭저럭 값이 나가 보이지만, 정작 사람들의 눈길은 끌지 못하는 ‘그것’이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것의 정체인 ‘공공미술’과 그 배경인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공공미술은 공원에 있는 조각이나 벽화처럼,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혹은 전시하는 미술양식을 의미한다. 공공미술의 개념은 영국의 미술감독인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부유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작품 감상 기회를 일반 대중에 확장하여, 누구나 공평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미술작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1950년대 초부터 공공건물 건축비의 0.5퍼센트에서 2퍼센트를 건축물에 설치하는 미술품 비용으로 쓰도록 법제화했다. 누구에게나 일상 곳곳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들에게는 더 많은 창작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국내에서는 연면적 10,000제곱미터 이상 건축물을 신·증축할 때 건축비용의 1%를 미술작품을 설치하거나 설치비용의 70퍼센트를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해야 하는 ‘건축물미술작품’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건축주는 준공검사를 통과하려면 반드시 건축물에 미술작품 설치비용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많은 건축주들이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업무의 효율성과 비용의 최소화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어떤 미술작품을 선정해야 하는지’의 기준이 모호하고 ‘어떻게 설치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없어 각종 폐해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미술시장의 총 거래금액 4,482억원 중 건축물미술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3.7%로 1,064억 원에 달한다. 건축물미술작품 시장이 연간 1,000억 원대로 커지면서 오로지 수익 창출의 목적으로 몰려든 브로커들이 시장에 난무하기 시작했다. 대중과 작가를 위한 공공미술은 사라지고 ‘거대 사업’만이 남은 것이다. 

대부분의 건축물미술작품은 건축주와 작가, 미술작품 대행사가 모여 직거래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적으로 건축주의 판단에 따라 작품이 선정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갑인 건축주 위주의 이중계약, 리베이트, 세금 탈루 등 각종 편법이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 가격은 억대를 호가하지만, 정작 작가들이 받는 금액은 5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일부 작가는 재료비 수준의 금액만 지급받고, 작품성을 배제한 채 일차원적이고 판에 박힌 작품만 양산하기도 한다.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미술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세워진 조형물들은 설치한 다음에도 문제다. 건물주의 관심 밖에 놓인 이 제품들은 관리 소홀로 인해 금세 노후화되고 결국 도심의 흉물로 변모한다. 변질된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마땅히 문화적 감수성을 누려야 할 시민들이다. 이들은 생활권 도처에 놓인 시각 폭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볼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현 건축물미술작품 제도는 건축주에게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수많은 예술가를 좌절시키며, 시민들에게 미술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을 남긴다. 어느 누구도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2019년 5월 28일 경기도는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키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미술작품의 공모제를 의무 시행했다. 또한 건축물미술작품 심의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심의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작품 선정, 특정 작가의 독과점 등의 부조리를 근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화된 심의제도를 적용한 2019년 9월 이후 심의 가결률은 크게 낮아졌다. 1월에서 8월까지는 336건 중 210건이 통과되며 62.5%의 가결률을 보였지만, 9월부터 11월까지는 106건의 17%인 18건만 통과되었다. 특히 10월에는 심의에 상정된 33건의 작품 중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건축주는 높은 심의의 벽을 넘어 미술작품을 설치를 하기보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납부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발한다. 높은 부결률은 설치 미술작품의 수를 감소시켜 작가들의 창작활동과 생계를 위협하고, 건축주에게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출연을 강요하여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이 또 다른 폐해를 낳으며,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의 도입 취지가 또 한 번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에 이어 전국의 각 지자체에서는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모제’ 전환을 추진하거나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술작품 공모제의 풍선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정책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와 지역 예술계의 특성을 반영한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시의회, 시공무원, 예술인, 건축주, 주민단체 등 각 이해 당사자의 입장을 나눌 수 있는 공청회 등이 선제적이고 주기적으로 열려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공미술의 성공여부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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