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닷컴=우달 칼럼니스트] 온 세상이 '강자' 투성이다. 각종 정치 사안이나 사회 문제, 경제 정책 전반에 걸쳐 ‘강경책’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오래된 통치법을 부르짖는 이들이 전에 없이 크게 늘었다. 드러난 현상에만 초점을 맞춰 날붙이를 휘두르고 나면 일단은 속이 시원하기 때문일까.난데없이 치명상을 받은 상대는 더 이상 찍 소리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날붙이를 든 손을 움직이는 게, 보기 싫은 상
내게는 늘 ‘식사 시간이 3시간쯤 돼야 한다’고 말하며, 프랑스인의 삶을 동경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프랑스인들도 요즘은 바쁘다며 우리와 다를 게 없다고 답하지만, 그 친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꽤나 강력한 것이어서 매 끼니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한적한 평일 오전, 나와 앞으로도 수많은 끼니를 때워야 할 친구를 위해 이제 막 문을 연 브런치 가게를 방문했다. 정말 점심식사를 3시간 동안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오븐에 구운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 버터 바른 빵, 한 무더기의 샐러드가 큰 접시에 담겨 나오는 플래터는
침대에 누워서도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시간과 날씨를 알려주는 애플의 '시리'나 우리의 취향을 늘 앞서 제안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해졌다고 한들 이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의를 봐주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올초에 등장한, 1조 개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최첨단 AI로 무장한 '챗GPT'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가치판단' 행위를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우리 기계보다 너희 인간이 나은 게 대체 뭔데?'라고 따져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누구나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 적어도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길 꿈꾸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묵묵히 중소기업 한 구석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기업 종사자 중 80%가 중소기업, 8%가 중견기업, 12%가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하니 대부분은 대부분이다.재미있는 건 현실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비율이 거꾸로 뒤집힌다는 점이다. 너도나도 '저 초봉 5000인데 기본은 되나요?', '이번 성과급은 몇 백 퍼센트 예상합니다'와 같은 자랑글이 넘쳐난다. 물론 자랑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쓸 테니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2020년 10월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된 이래로 약 2년 3개월 만에 마스크가 벗겨졌다. 2023년 1월 20일 자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면서, 우리는 다시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회용 마스크로 자신을 지키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만나는 사람들마다 요즘 경제가 참 어렵다고들 말한다. 이 말만큼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연일 높아져 가고, 우크라이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요즘에는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 잘 쓰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자신하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나 또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한 번쯤은 '잘 쓴 글이란 정말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다?‘, ’어휘력이 풍부하다?‘, ’전하려는 바가 논리 정연하다?‘, 왠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준은 지나치게 문장, 어휘, 구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약 3년 간 다닌 잡지사의 일을 관두고, 최근 두 달 새 두 번의 이직을 했다.이제 만 나이로도 서른이 넘은 터라,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철없던 이십 대 중반에는, 부푼 꿈을 안고 가슴속 뜨거움만으로 소설가가 되겠다고 틀어박혀 있었다. 변화의 이십 대 후반에는, 비어 가는 잔고를 보며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이라면 타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삼십 대 초반인 지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돈도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됐다. 어차피 반복되고 고달픈 직장 일이라면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문화예술계에서도 ‘프로슈머Prosumer’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물결에서 등장하는 이 말은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비전문가이지만 생산활동에 관여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프로슈머는 제품을 다루는 산업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예술계 내에서도 곧잘 쓰이는 모양새다. ‘문화민주화’로 정책기조가 잡힘에 따라 전문예술인과 비전문예술인 간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비전문예술인은 예술활동을 생산함과 동시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3년째 우리를 괴롭히던 코로나19가 주춤했지만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겹치며 또 다른 모양의 칼날이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독 활황을 띠고 있는 의외의 시장이 있다. 바로 ‘미술품 거래 시장’이다.지난 3월 서울 SETEC에서 열린 2022 화랑미술제는 177억 원(2021년 72억 원), 4월에 열린 2022 BAMA(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는 250억 원(2021년 65억 원), 5월에 열린 2022 아트부산은 746억 원(2021년 350억)의 매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예술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예산은 2020년 6조 4,803억 원에서 2022년 7조 3,967억 원으로 1조 원 가까이 늘었고, 부산광역시 문화 및 관광 예산도 2020년 3,733억 원(전체 예산의 3.85%)에서 2022년 4,783억 원(전체예산의 4.3%)으로 1,000억 원 넘게 증액됐다. 하지만 예술인들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이번 글에서는 문체부에서 발간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우리가 생활하는 건축물 주변에는 ‘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조형물들이 꼭 있다. 아파트 단지의 화단이나 직장 빌딩의 한 귀퉁이에는 그럭저럭 값이 나가 보이지만, 정작 사람들의 눈길은 끌지 못하는 ‘그것’이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것의 정체인 ‘공공미술’과 그 배경인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대해 알아보자.공공미술은 공원에 있는 조각이나 벽화처럼,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혹은 전시하는 미술양식을 의미한다. 공공미술의 개념은 영국의 미술감독인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작년 이맘때 즈음에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는 언뜻 보기에 어색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2092년의 우주선 안에서 김용의 무협소설 『영웅문』을 종이책으로 읽는 장선장(김태리)의 모습이다. 무협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웅문』을 읽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머나먼 미래에 우리가 과연 종이책을 읽을지는 의문스럽다. 이미 종이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 않으면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충분히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난관에 부딪힌 지면매체올 초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월간지의 사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저는 현시대의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음악‧미술‧연극 등 기존 오프라인 매체를 활용한 콘텐츠뿐 아니라, 특히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온라인 콘텐츠에도 마음의 끌림을 느낍니다. 현재까지는 여러 기술적 제약으로 완벽히 구현되고 있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창작자와 관람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질 문화예술 콘텐츠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코로나19가 언택트 시대를 연 이후, NFT(Non-Fungible Token)가 적용된 노래‧그림‧공연이 세계적인 열풍을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우달]문화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다. 만일 우리가 의식주를 충분히 보장받는다 한들 문화를 향유할 수 없는 삶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꿈꾸기 힘들다.인간이 꼭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우리 헌법에서는 이러한 문화향유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상 명시하는 이 권리가 실생활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혹은 일부 지역의 국민들에게만 한정하여 적용되는 듯하다. 이른바,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 격차에 대한 이야기다. ▲아비뇽에서 우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우달] #1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라는 구호를 기억하는가. 작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사망한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기 위한 인권운동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당시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마스크를 쓴 흑인 젊은이들이 손 소독제를 나누어 주며 구호를 외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때의 아픔을 잊기라도 한 듯 올해 3월 뉴욕에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흑인남성들의 무차별적인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백인의 폭력에 그토록 저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우달]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은 네거티브 공세에 들어갔고,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회는 더욱 각박해졌으며, 연일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무너져 내리는 자영업자의 수는 경제 현황을 대변한다.여의치 않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그간의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되기라도 할 듯 공약하는 후보자나, 연이은 백신부족 현상에도 접종 일정에는 차질이 없다고 말하는 국가수장이나,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가끔씩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평생을 읽는다 해도 그리 많은 책을 읽을 순 없으리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책을 놓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인간이란 사실 그런 존재다. 나는 말보다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상대에게 전하기 전에 충분히 가다듬을 수 있어 좋다는 핑계를 댄다. 글은 고칠수록 나아지고 시간은 나의 편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끝없이 인내하며 퇴고할 용기가 없고, 그 퇴고의 수준도 내가 알고 있는 영역 내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인간이란 게 사실 정말 그렇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만용을 부리지만, 실은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시트 우달]모든 게, 빠르게, 변한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며 평생 직업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더니, 어느 순간에는 핸드폰을 안 가진 사람이 없게 되었고, 이제는 그조차도 스마트폰이라는 소형 단말기로 모두가 연결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인간의 사고력이 빅데이터에 의해 가볍게 제압당했고,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버가 되었으며, 암호화폐니 양자 암호니 하는 것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건 단지 IT 부문에 한해 말머리만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눈이 휙휙 돌
[청년칼럼=우달]얼굴을 마주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낯선 이에게서 ‘당신은 과연 착한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곧장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에서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이 실제로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차치해두고 말이다. 때로 단정(斷定)은 삶의 큰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착한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냐’ 와 같은 반발심이 들거나 첫 만남에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지는 상대에게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 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