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pixabay 무료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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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요즘에는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 잘 쓰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자신하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나 또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한 번쯤은 '잘 쓴 글이란 정말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다?‘, ’어휘력이 풍부하다?‘, ’전하려는 바가 논리 정연하다?‘, 왠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준은 지나치게 문장, 어휘, 구성과 같은 외양에 주안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글이 무엇을 어떻게 담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가 보자. 

여기서는 어느 정도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꼭 유려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글쓴이의 진심이나 목소리가 느껴지는 글을 보며, 꽤 잘 쓴 글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문장론을 잘 준수한 글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나 감동 혹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글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실제로 많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글을 잘 쓴다는 건, '어떤 언어에 능숙하다'라는 말과도 견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군가를 보고 '영어를 잘한다'라고 평가할 때, 처음에는 그 사람의 발음이나 억양, 어휘력, 전달력 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고 판단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말 영어를 잘한다'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어느 한 언어를 정말 잘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로 얼마나 폭넓은, 얼마나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 대화’만 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비즈니스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학술적인 혹은 전문영역의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당 언어에 더 능숙하고 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앞서 이야기한 '잘 쓴 글'과 마찬가지로 '좋은 언어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에는, 겉으로 드러난 가치뿐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도 중요한 것이다.

'잘 쓴 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시각도 있다. 내가 아는 인물 중에는 ○○전자의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다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람이 있다. 젊은 대표의 비전에 꽂혀 같이 한번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나와 처음 만난 사석에서, 같이 소주를 몇 잔 기울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전자에서 글을 잘 쓰는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에서도 여전히 글을 잘 씁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얼핏 보기에는 뭔가 허영심 가득해 보이고, 시각에 따라서는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저 높은 자신감은 잠시 차치해두고 말이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글의 가치는 '담고 있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한가?'이다.

○○전자와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필요한 글쓰기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글쓰기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서 글쓰기로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는 정말 많은 고심과 노력이 필요하고, 변화와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에서 필요한 글쓰기라는 큰 영역 내에서는 일정한 유사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분야를 달리하더라도 여전히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에게 또 하나의 정말 멋진 무기가 생긴 셈이다. 어느 정도의 문장력이 갖추어져 있고, 여러 분야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조금은 손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인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변만 보더라도, 한 소설가에게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부탁하는 경우를 곧잘 접하게 된다. 글을 부탁하는 입장에서야,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금방 써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 소설가의 얼굴은 무척 당혹스럽다.

상대는 '너 글 잘 쓰잖아, 왜 그렇게 생색을 내?' 하는 듯이 당연하게 손 내밀고, 소설가는 '이 글과 저 글의 다름'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 말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진 않다.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양쪽의 면면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무척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턱대고 글을 잘 쓴다고 말하기보다, '어떤 글을 잘 쓴다', '어떤 글에 익숙하다' 등으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곧잘 들여다볼 수 있고, 어느 날 누군가가 갑자기 찾아와 제안서를 내미는 오해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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