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곽진학 칼럼니스트]  봄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메마른 나뭇가지도 하루가 다르게 생기가 돌고 살갗에 닿는 바람도 나긋나긋하다. 제주의 삼방산에는 유채꽃이 물결치고 장흥의 천관산에도 동백꽃이 곱게 물들었다고 한다. 나무와 풀과 꽃들은 동토(凍土)의 긴 인고 속에서도 꿈을 꾸며,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들은 쉼 없이 자생하고 성장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어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세상이 말리는 길을 굳이 떠나는 사람이 있고, 폭풍이 부는 눈길을 홀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절벽 고도에 간신이 매달려 있는 숨 가쁜 나무도 있고 물결 따라 쉽게 휩쓸려가는 두꺼운 얼음 조각도 있다.

고달픈 삶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 사람도 있다.

세상 무서워할 것 하나 없었던 한(漢) 무제(武帝)로부터 궁형(宮刑)을 당했던 사마천 (중국의 전한, BC 145?~ 86?). 국소마취(局所痲醉)도 없던 당시, 죽음보다 더 혹독한 궁형을 선택한 그는 사기(史記)를 집필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 않는다는 것과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자만이 꼭 역사를 일구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기(史記)'의 구석구석에 장사꾼과 아녀자, 심지어 도적과 백정이 듬성듬성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무와 풀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후 향기와 꽃을 나누어 주면서도 겨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잊어버린 듯이 지낸다.

정치가 제철을 만났다.

봄이 오면 꽃보다 정치가 먼저 날개를 편다. 대선도, 총선도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 실시되고 이번 여당의 전당대회도 내일, 모레 곧 열린다고 한다.

정치는 결별과 배척이 아니라 포용과 융합이 우선인데도 여전히 변화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탐욕과 앙금이 그대로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나의 목표와 욕망을 잠깐 내려놓고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는 통합과 배려가 요청되는 다급한 시점이다.

지난 정부는 이른바 '촛불혁명'에서 비롯되었다. 국민의 바람과 기대와는 달리,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지금도 깊은 상처와 고통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모두의 생계도 무척 버겁게 만들었다. 돌아보면 직접 민주주의나 광장 민주주의가 꼭 필요한 때도 있겠지만, 대표성과 지속성, 책임성이 보장될 수 없어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함을 느꼈다.

보수도 막상 따지고 보면 냉전 시대의 산물이고 외세에서 비롯된 이념이다. 보수가 경제적 자유와 법치주의, 애국심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지만, 변화보다는 전통과 세습, 반공과 친미, 그리고 성장을 우선시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수의 가치는 무엇보다 자기 헌신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와 자유'를 천명하면서 이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반지성주의를 정치 분열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자유를 사회 갈등과 양극화의 해소방안으로 선택한 것 같다, 이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강조하였다. 옳은 생각이다. 문제는 실천적 의지이다.

지난 정부의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기막힌 가치가 실천적 의지가 없어 선언적 의미에 그쳤고, 끝내는 한낱 언어의 유희가 되고 만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3.1독립운동 부조@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3.1독립운동 부조@사진 오피니언타임스 DB

3.1 절이다.

이날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태어난 날이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 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유관순 열사~

그날의 함성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3. 1절 기념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국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빛의 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

오직 우리만 제자리걸음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듯하여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겨자씨만 한 발전도 이루지 못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과연 누구에게 탓하여야 할까?

3.1절을 계기로, 우리 모두 자기 양심에 대해 겸허히 고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였으면 한다.

  곽진학
  곽진학

-전 서울신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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