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청년칼럼니스트] K-pop 산업이 부흥할수록 개체수가 늘어가는 집단이 있다. '사생'이라는 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1세대 아이돌부터 시작한다.

집안에 침입한 사생팬을 선처해 돌려보낸 게 화근이었을까. 팬이라는 이름 아래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생들이 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만행에도 팬의 애정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아티스트들은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팬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유해 물질이 들어간 음료를 마셔 크게 다쳤던 사건도 있기에 팬과 아티스트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고민하게 된다. 아무런 보상 없이 무한한 애정을 전하는 것이 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식의 일이 계속 발생한다면 팬은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진 SBS 관련뉴스 화면 캡쳐

사생 문제는 늘 고질적이었는데, 몇 주 전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기막힌 기사를 접했다. 21세기, 2022년에 발생한 사생팬의 주거 침입 사건이었다. 주거침입이란, 집 주변을 적당히 머물며 스토킹하듯 따라다니는 것과 범위가 다르다. 거주하는 집에 직접 들어갔을 때를 말하므로 일상을 침범했다는 의미다. 주거침입을 당한 NCT의 해찬은 해당 가해자를 선처했으나 결국 예정됐던 해외투어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큰 충격으로 건강 회복에 힘써야 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내용이 조금 정리된 후 팬들에게 공지되었는데, 일련의 과정이 해결될 동안 내색하지 않고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외국 셀러브리티가 파파라치에 시달린다면 한국에서는 수많은 아이돌이 사생팬으로 몸살을 앓는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한 BTS의 RM이 탄 KTX 정보를 돈 받고 팔 정도이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해외투어로 비행하는 아이돌의 입출국 정보와 비행기 좌석을 돈 주고 사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덕분에 아이돌들이 장시간 비행에도 물 한 모금 마시기를 꺼리고 화장실조차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누군가를 좋아한다면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이 말이 되는 현상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전화번호 유출은 기본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요즘 대다수의 아이돌이 각자의 인스타그램으로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라이브 영상을 틀 때 고의로 전화를 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면 삽시간에 화면 속 아이돌의 표정은 굳고 갑자기 걸려 온 전화로 라이브가 강제로 종료된다. 아마 이 같은 행동은 해당 번호가 진짜 번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과 더불어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멋진 곳에서 잔뜩 반짝이는 그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이른 나이에 일반적인 사회 경험과 단절되고, 정해진 스케줄과 무대를 소화하는 일에 익숙한 아이돌들에게 사기당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예능에서 본 적이 있다. 금전적인 피해도 미연에 방지해야 맞겠지만, 오히려 사생활을 침해받아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일상을 지키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뉴얼이나 대처 방법을 강화하고 법적 처벌에 힘쓴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 다방면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나 위와 같은 문제로 아티스트가 피해를 보고 빛을 잃으며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될까 봐, 그런 일이 더 나아가 당연시될까 봐 걱정스럽다.

아이돌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은 팬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그릇된 만족감을 위해 희생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아직 이 업계를 완벽하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생팬은 결코 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연인 사이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기에, 좋아해서 그랬다는 말은 이해가 불가하다. 정말 좋아하면 보기만 해도 즐겁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는 게 혹여 뭇매를 맞을까 두렵기는 하나, 이 글로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가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제 좀 줄어들길 바란다. “제 기쁨을 당신께 보내드리니 부디 사랑을 주세요”라는 유명 드라마의 대사처럼, 각자의 기쁨이,사랑스럽게 웃을 수 있게 응원하는 팬 문화로 더 멋지게 자리 잡는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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