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에는 한 번씩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초 단위 환산하여 타이머에 걸어둔다. 1년이 약 3153만 초이고,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15억 남짓한 시간이다. 물론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다 쓸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렇게 1초씩 줄어드는 타이머를 지켜보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든다. 15억은 꽤 큰 숫자라는 생각, 15억 원이라는 금액은 얼마나 큰 걸까라는 생각,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삶은 사실 유한한 것이었다는 생각 등.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가 일정한 시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재량껏 살아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남은 시간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진 않는다. 만약 통장잔고가 1초마다 1원씩 줄어든다면 굉장히 아까워할 테지만, 1초씩 사라져 가는 삶의 시간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이 제시한 룰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룰 속에서 살아갈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필연적으로 소멸할 운명을 타고났지만,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기세등등한 탓에 애써 고개 숙이지 싶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고 해도, 언젠간 돌아가야 할 운명임에도 말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이곳 지구를 방문한 여행자로서의 자신보다, 인위적인 사회적 역할 속의 자신을 우선하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우리 삶이 매 순간 줄어들고 있으니, 남은 시간만이라도 다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직장이니 인간관계니 하는 것들을 모두 던져 버리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유대 속에서 상당한 행복감을 느끼는 우리가, 모든 관계를 떠난다고 해서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돌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그 한정된 시간 동안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한다. 학교나 직장에 ‘가야 해서 가고’, 공부나 일을 ’해야 해서 한다‘라고만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삶을 소극적이고 위축된 자세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모든 행동은 '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기에 할 뿐이다'라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성을 분명히 한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의 질적 수준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호주나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 여행을 떠났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일정 시간 동안 힘든 일을 하면서도 삶의 활기를 쉽게 잃지 않는다. 일을 마친 뒤에 주어질 여가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낄 새로운 활동들을 고민하기에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일은 나의 여가와 경험을 위한 수단일 뿐, 삶 전체에서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삶을 돌아보면 어떤가. 아무래도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듯하다. 게다가 우리는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조금만 고민해 보아도 나의 모든 행동은 사실 '나와 주변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걸 알 수 있음에도 말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그냥 별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해내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의 방식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으로 만든다. 버티는 것은 언젠가 끊어지기 마련이고, 이미 부하가 심한 상태라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스스로를 꾹 눌러 참고, 심지어 약물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더라도, 무너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다.

최근 직업적 어려움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알려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말이다. 번듯한 직장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거기에는 수많은 인과가 엮어 있겠지만, 모든 인과를 관통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머지, 행복을 꿈꿀 수 있는 희망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고 한껏 기대하면서, 고단한 학창시절, 취준생활 겨우 버텨 왔지만, 정작 마주한 것 달콤한 결실이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이 가득한 직장생활이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생활을 평생 동안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는 살아갈 용기를 잃게 되는 듯하다.

하지만 삶은 힘들게 버텨낸다고 해서 마땅히 큰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당신은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 정도의 행복은 가져도 좋습니다'라고 정해주면 좋겠지만, 여행자로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의 작은 행복일 뿐이다. 삶의 끝에는 달콤한 과실이 아니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삶은 말 그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불과하고, 행복은 그 외부에 있지 않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무언가를 해내고 난 뒤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의 작은 행복들의 누적이다.

만약 지금 스스로의 행동과 선택이 행복이 아닌 불행을 향해 있다고 판단된다면, 잠시 현재의 행동과 선택을 멈추고, 시도해보지 않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그 행동과 선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때로는 그 가능성의 극히 일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살아간다.

사진 논객닷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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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먼 곳을 여행할 때, 힘들다고 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몸이 힘들면 일정을 조정하고, 마음이 힘들면 종일 숙소에서 누워 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여행을 잘 보내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힘들다면 얼마든지 잠시 쉬어도 좋고, 원래 계획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방문해 봐도 좋다.

여행을 끝내는 것만이 힘든 여행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닌 것이다. 이 지구를 함께 여행하는 수많은 어려운 젊음들이 더는 벼랑 끝에서 원치 않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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